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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마필관리사 잇단 자살…유족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 되도록 해달라” 오열

등록 2017-08-02 16:50수정 2017-08-02 22:03

5월27일 박경근씨 이어
지난 1일 이현준씨 세상 등져
부산경마공원서만 2명 자살
유족 “내 아들이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

노조 “고강도 노동·다단계 착취구조
마필관리사들 집단적 우울감 호소”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잇따라 두명의 마필관리사가 숨진 가운데, 공공운수노조가 마사회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2일 오전 국회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지난 1일 숨진 이현준씨의 어머니 이시남씨(사진 오른쪽 세번째)가 발언 중에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잇따라 두명의 마필관리사가 숨진 가운데, 공공운수노조가 마사회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2일 오전 국회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지난 1일 숨진 이현준씨의 어머니 이시남씨(사진 오른쪽 세번째)가 발언 중에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2일 오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같은 직장에서 두달새 잇따라 아들을 잃은 부모들이 나란히 섰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경마공원) 부산경남에서 마필관리사로 일하다 지난 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현준(36)씨의 부모와 지난 5월27일 “○같은 마사회”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 박경근(39)씨의 어머니였다. 이씨의 어머니 이시남씨는 “아들이 힘들다는 내색도 안 했지만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며 “(마사회가 노동조건을 개선해 죽는 사람이) 우리 애가 마지막이 되도록 해달라”며 오열했다. 박씨의 어머니 주춘옥씨는 “내 아들이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 하지 않았느냐. 마사회가 불성실하게 교섭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며 기자회견 중에, 또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통곡했다.

같은 직장에서 두 달 남짓한 시간에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씨는 숨지기 직전 아버지와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미전송 문자메시지를 휴대전화에 남겨놓은 것이 전부였지만, 그가 조합원으로 소속돼 있었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이씨가 인력부족에 따른 고강도 노동을 했던 점과, 박씨가 숨진 지 두 달이 넘도록 교섭이 결렬되는 등 희망이 없는 상황이 겹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필관리사는 경마에 출전하는 말을 훈련하고 관리한다. 말의 주인은 따로 있고, 마사회와 마방 임대계약을, 마주와 위탁계약을 맺는 조교사는 마필관리사를 고용한다. 마필관리사 입장에선 ‘다단계 고용’ 형태다. 이씨가 속한 ‘23조’는 조교사 1명에 마필관리사 6명으로 말 27마리를 관리했다. 부산경마공원은 마필관리사 1명당 3.16마리를 관리하도록 했으나, 이씨가 속한 조는 이보다 1.5배 정도 많은 4.5두를 관리한 셈이다. 특히 말을 훈련해야 하기 때문에 다칠 위험성이 상존(2013년 기준 전체 노동자 산업재해율의 22배)하는 상태고, 실제로 23조의 팀장이 일하다 다쳐 5개월 남짓 병가를 쓰면서 이씨가 팀장 역할을 맡아 업무 강도가 강해졌다 한다.

마필관리사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관리하는 말의 성적에 따라 마주·기수·조교사 등과 상금을 나눠 받는데, 부산경남경마공원만 유독, 임금에서 상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0% 정도로 높았다고 한다. 특히, 서울과 제주는 조교사와 마필관리사의 상금 분배기준이 정해져 있지만, 부산경남만 조교사가 알아서 마필관리사에게 배분하는 방식을 택했다. 조교사로서는 마필관리사를 적게 고용할수록 받을 수 있는 상금이 높아지는 셈이고, 마필관리사는 자신이 얼마의 상금을 배분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구조다. 마사회는 “선진경마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경쟁성 상금 비중이 높은 것”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지만 이번 2명의 죽음 이전인 2011년에도 이런 처지를 비관한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적이 있었다.

노조는 마필관리사들이 잇따른 자살로 인한 집단적 우울감 때문에 또다시 극단적 선택을 할까 걱정하고 있다. 이씨 역시 지난 30일 동료 박씨의 빈소를 지켰고 다다음날 목숨을 끊었다. 한대식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겉으로 내색은 안하지만, 마필관리사들의 마음상태가 어떤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며 집단적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가 작업중지 명령을 내려 경마라도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과 제주 경마공원 마필관리사들이 소속된 전국마필관리사노동조합 관계자도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문제점을 제기하고 사람이 죽고 있는데도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기 때문에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노조의 요청에 따라, 부산근로자건강센터에 심리상담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노조는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마사회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노조는 기자회견에서 “박씨의 죽음 이후에도 마사회는 여전히 책임회피에만 몰두해있다”며 “노동자 착취체제에 대한 해결 의지 없이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마사회 경영진은 퇴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와 마사회는 박씨가 숨진 이후 4차례에 걸친 교섭을 벌여왔으나, 교섭 데드라인으로 정했던 지난달 30일, 마사회는 교섭결렬을 선언하고 퇴장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노조의 요구와 마사회의 입장차가 커 결렬을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조 쪽은 “마사회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와 말 바꾸기로 유족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라며 “대외적으로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고 하지만, 노조와 조교사협회의 집단교섭 같은 기본적인 요구도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잇따라 두명의 마필관리사가 숨진 가운데, 공공운수노조가 마사회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2일 오전 국회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이 끝난 뒤, 숨진 노동자들의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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