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토, 일요일 주말에만 렛츠런파크서울(옛 과천경마장)에서 마권을 판매해온 김아무개(52)씨는 지난해 말에 고용보험료 3년치를 한꺼번에 내야 했다.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라서 고용보험 가입대상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고용노동부가 갑자기 ‘의무가입자’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3년치 소급분은 한 달 월급(60만원)과 맞먹는 54만원이었다. 그러나 고용보험료를 내도 김씨는 실업급여(구직급여)를 받을 수 없다. 노동시간이 적어 고용보험법에 규정된 수급요건(18개월간 180일 이상 근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혜택은 주지 않으면서 보험료만 내라니 이게 무슨 사회안전망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부가 “실업에 두려움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고용보험 100% 의무 가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고용보험료를 내고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부터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법은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를 고용보험 적용 제외자로 분류하지만, 시행령에선 단시간 노동자 가운데 생업을 목적으로 3개월 이상 계속 노동을 제공하는 경우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실업급여 부정수급자를 조사하다가 한국마사회의 시간제 경마직도 생계를 목적으로 한다고 보고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대상자는 주2일 근무자(14시간40분) 4250명, 주1일 근무자(7시간20분) 1510명 등 5760여명이었다. 한국마사회시간제경마직노조는 “3년분 평균 납부액이 주2일 근무자는 54만원, 주1일 근무자는 46만원이라서 전체 소급분은 3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진병우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은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단시간 노동자에게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불합리한 시행령은 개정해야 한다. 또 고용보험료를 납부한 경우 반드시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대에서 7년간 청소노동자로 일하다가 지난 3월 계약 만료된 양아무개(67)씨도 고용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했지만 실업급여를 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4월 청소용역 업체가 바뀌었을 때 고용보험 승계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근로복지공단이 제대로 통보하지 않아, 회사도 노조도 1년 뒤에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회사와 노조는 65살 이상 청소노동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지 근로복지공단에 문의했다. 현행법이 65살 이상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는 경우 고용승계합의서 등을 제출하면 65살 이상도 고용보험에 계속 가입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회사는 관련 서류를 제출했고 공단 쪽에서 추가서류를 요청하지 않자 고용보험 승계와 징수가 정상적으로 처리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지난 1년간 청소노동자 14명의 고용보험료를 월급에서 공제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고용만 유지했을 뿐 퇴직금, 연차수당 등이 승계되지 않아 민법상 ‘고용승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65살 이상 청소노동자 14명의 고용보험 가입을 승인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 쪽은 “이 사실을 회사에 통보했다”고 주장했지만 회사는 “어떤 형태로도 불승인 사유를 (공단 쪽에서) 듣지 못했다. 전체 노동자(600여명)의 고용보험료를 통합 납부하기에 일부 노동자의 고용보험료가 징수되지 않는다는 것도 몰랐다”고 반박했다. 공단과 회사의 의사 소통 잘못 때문에 애꿎은 노동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양씨는 “지난해 그만뒀어야 한다”고 한탄한다. “종일 일해도 월 130만원밖에 못받는데, 실업급여는 120만원이나 나오지 않나.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실업급여 받으면서 새 일자리를 찾았어야 하는데….” 양씨는 지난 3월 퇴직한 뒤 5개월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최기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집행위원은 “수년 동안 고용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해온 65살 이상 노동자들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은 고용부가 고용승계를 좁게 해석하기 때문”이라며 “법·제도와 해석을 빨리 고쳐서 간접고용 노동자가 더는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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