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노동자역사 한내’ 양규헌 대표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주제로 한 사진전에서 만난 양규헌 ‘노동자 역사 한내’ 대표. 한내는 노동자 대투쟁 30돌을 맞아 역사 기행, 전시회, 출판 등 3대 사업을 기획했다. “한내가 이번에 하는 사업엔 ‘87년을 복구해야 한다’는 저희들의 의지가 담겨 있지요.”
‘3개월 기록’ 정리해 같은 제목 책도 출간
“대투쟁 ‘노동자는 하나다’ 일깨워” 한내는 노동자의 역사를 수집하고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8년 설립된 단체다. 한내는 ‘거대한 강’이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백기완 선생이 지어줬다고 한다. 외부 지원 없이 회원 850명의 회비로만 운영된다. 상근자도 4명이나 된다. 회원 가운데 비정규 노동자가 20% 정도다. 회원은 어떤 혜택이 있느냐고 하자 양 대표는 “거의 없다”고 답했다. “회원들은 노동운동의 역사 자료를 소중하게 관리하고 보전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분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87년 7월5일 울산 현대엔진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었다. 당시 울산의 현대그룹 계열사들엔 노조가 없었다. 회사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자 현대엔진 조합원 1500명은 현대중공업 쪽을 향해 항의 행진을 했다. 그러자 사쪽은 노조 설립 확산을 우려해 인정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30년 전 전국의 노동 현장을 들끓게 한 파업투쟁의 시작이었다. 석달 동안 3300건의 파업이 있었고, 1200개의 신규 노조가 생겼다. 86년 말 103만명이었던 노조 조합원은 88년 말 170만명으로 늘었다. 노조 조직률이 2년 새 15.5%에서 22%로 6%포인트 이상 늘었다. 양 대표는 책에서 지역 중심으로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을 정리하고 성과와 한계를 짚었다. “(대투쟁은)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준비된 싸움이었죠.” 설명이 이어졌다. “대투쟁의 직접 계기는 6월항쟁이지만 앞서 1970년 전태일 분신 이후 축적된 민주노동운동의 역량과 5·18 광주항쟁 이후 노동현장으로 진출한 학생운동 출신의 의식적 활동 등이 합쳐져 대투쟁이 일어났다고 봐야 합니다.” 당시 그가 다니던 대우전자부품엔 민주노조가 있었다. 그는 노조 수석부위원장이었다. “풍물패나 노래패를 조직해 주변 파업 사업장 지원을 많이 다녔어요.” 양 대표는 2년제 대학을 다닐 때 업소에서 공연을 했을 만큼 드럼 솜씨가 수준급이다. 지금도 동료 활동가 등과 함께 질라라비 밴드를 만들어 공연 활동을 한다. “87년엔 대투쟁으로 임금이 두 번 올랐어요. 상당수 파업 사업장은 임금이 100%가량 오르기도 했죠.” 30년 전 그의 눈에 비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는 경남 창원 통일중공업 노동자들의 어용노조 퇴진 싸움을 꼽았다. “학생운동 출신 노동자들이 현장에 있었어요. 사쪽은 외부세력이라고 매도했죠. 당시 이런 논리가 조합원들에게 많이 먹혔어요. 하지만 통일중공업 민주노조는 ‘노동자에겐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다. 노동자란 계급만 있을 뿐이다’라며 확성기로 계속 방송을 했어요. 결국 승리했죠.” 경기 부천지역의 중소사업장 노조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른 지역과 달리 부천 쪽 노조들은 파업 공간에서 조합원들이 끊임없이 공부하고 토론했어요. 조합원 토론에 의해 사업이 결정되는 민주성의 원칙이 잘 지켜졌죠.” 민노총 전신 전노협 마지막 위원장
2008년 ‘한내’ 꾸려 850명 회비로만 운영
“문재인정부 비정규직 법부터 없애야” 그는 민주노총 전신인 전노협의 마지막 위원장을 지냈다. 위원장 시절인 94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 중앙위에 참석했다. “천여명의 참석자 앞에서 전노협을 소개했을 때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당시 한국 노동운동은 부러움의 대상이었어요.” 현재 노조 조직률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88년과 견줘 반토막도 안 된다. “전노협 때만 해도 자신의 꿈을 가지고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같이 싸우는 사람에 대한 동지애와, 단결력을 바탕으로 한 투쟁 동력이 있었죠.” 그는 지금을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국면으로 규정했다. “대투쟁 이후 권력과 자본은 노동자를 포섭과 배제의 대상으로 보고 분할 지배 전략을 쓰고 있어요.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등 노동자 90%는 배제 대상입니다. 여기에 노동운동 진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양 대표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의식이 생긴 걸 노동자 대투쟁의 주요 성과로 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얘기를 더는 하기 힘들다고 했다. 87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비정규직이 가장 미워하는 존재가 바로 정규직입니다. 또 비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 급여를 두배 받는 정규직은 그런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비정규직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죠.” 양 대표는 2002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를 만들어 고용 조건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이들을 위한 제도 개선 싸움을 해왔다. “노조가 일상사업을 통해 노동자들이 문제를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일상사업을 안 하니 현장 동력이 떨어지죠.” 일상사업? “우리 공장의 담 너머 노동자도 같은 노동자라는 점 그리고 비정규직의 본질에 대해 조합원들을 교육하는 것이죠. 그리고 노조 중앙 조직은 미조직, 비정규, 실업 노동자를 조직화할 수 있는 전략 마련에 좀더 집중해야 합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을 두고는 “고용 불안을 없애는 건 일리가 있다. 하지만 계약기간만 무기로 하는 게 아니라 임금도 정규직과 같이 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법을 없애야 합니다. 이 법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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