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 기아자동차 공장 앞에 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을 촉구하는 노조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연합뉴스
31일 서울중앙지법이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통상임금을 잘못 계산해 발생한 법정수당 미지급분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1심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최종 결론이 어찌 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개별 재판부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리 나오기 때문이다.
신의칙 법리의 핵심은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범위에서 정기상여금을 뺀다’고 노사합의를 한 뒤에, 이를 깨고 기업의 경영상 위기를 불러오거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큰 액수의 법정수당을 청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중인 기업들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법정수당이 많이 발생하는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하태경 의원(바른정당)실의 자료를 보면, 2013년 이후 지난 6월말까지 통상임금 소송을 냈던 100인 이상 사업장은 전국 192곳으로,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기업은행·현대차·현대모비스·두산인프라코어·현대제철·효성 등 115곳은 여전히 소송이 진행 중이다.
대부분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업들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미지급 수당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신의칙’을 적용받기 위해 “회사의 경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마다 ‘경영상 위기’에 대한 판단을 달리 내놓고 있어, 심급에 따라 결과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숱하다. 아시아나항공·현대중공업·금호타이어는 1심에서는 신의칙이 적용 안 돼 노동자들이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신의칙이 적용돼 회사가 이겼다. 보쉬전장과 동원금속은 이와 반대 결론이 나온 바 있다.
소송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김홍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노동법학 60호>에 기고한 ‘정기상여금 통상임금 사건에서 신의칙 적용을 부정한 사례’에서 “신의칙 적용이 인정되기 위해서 회사 쪽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초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사정 등을 종합해 판단하는데, 판단기준이 매우 모호해 법원 판단이 자의적이라고 느끼게 된다”며 “노사 당사자가 신의칙 적용 여부를 미리 예측하기 어려워 법원의 판결을 받기 위해서라도 소송을 계속 지속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사회적 비용 낭비를 부르는 소송 대신 노사합의를 통해 통상임금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재판부도 선고에 앞서 “사건 판결 선고가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위 논문에서 “소송 동안 노사관계는 불안해지고 기업 발전을 위한 노사협력은 어려워진다”며 “임금협상 때 임금 인상분과 연계를 고려해 소급분 지급액을 결정하고 일괄지급하는 방식으로 노사간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기아차 노동조합이 소속된 금속노조의 경우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을 통해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한 뒤 여기서 발생한 돈을 재원으로 ‘일자리연대기금’ 출연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송보석 금속노조 대변인은 “재판부가 노사합의를 통한 분쟁 해결을 강조한 만큼, 현대·기아차그룹이 이번 판결의 의미를 새기고 공동교섭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논의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통상임금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송영섭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영세사업장은 소송을 내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고용노동부가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확립된 통상임금 기준에 따라 기업들을 지도하고 임금체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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