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 4층 CIP 라운지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동조합에 대한 국민 인식이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여운이 남았던 1989년 수준으로 다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촛불혁명’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등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2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노사관계 국민의식 조사’를 보면, 노조가 정치적 민주화, 불평등 완화, 경제성장, 물가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1989년엔 긍정적이었다가 2007년, 2010년에는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올해 다시 긍정적으로 되돌아오는 ‘유(U)자’ 형태를 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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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 대한 인식 변화 ‘유(U)자’ 형태 노조가 사회에 미친 영향은 ‘좋은 영향(긍정)’ 응답에서 ‘나쁜 영향(부정)’ 응답을 뺀 수치로 비교했다. 정치적 민주화에 미친 영향은 1989년 조사에서 긍정이 부정보다 50.3%포인트 많았으나 2007년 10.5%포인트까지 낮아졌고 올해 조사에선 49.9%포인트로 다시 올라갔다. 불평등 완화에 노조가 미친 영향도 1989년 64.1%포인트로 긍정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2007년과 2017년에 그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올해엔 62.2%포인트로 1989년만큼 다시 긍정 평가가 높아졌다.
노조가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은 1989년에 긍정적이었다가 2007년과 2010년에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2017년(35.4%포인트)에 역시 긍정적으로 되돌아왔다. 특히 노조가 물가안정에 미친 영향은 올해(14%포인트) 처음으로 긍정적으로 조사됐다. 연구를 진행한 정흥준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87년 민주화 항쟁 때 노조가 기여했던 것처럼, 지난해 촛불시민항쟁 등 사회적 변화 과정에서 노조가 역할을 했고 새 정부의 노동정책이 변하면서 노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수언론이 덧씌운 ‘귀족노조’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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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간, 노동자간 격차 해결해야 올해 조사만 놓고 봤을 때 언론의 노사관계 보도에 대해서는 불공정하다는 응답(41.6%)이 공정하다는 응답(15.2%)을 크게 앞질렀다. 소득 불평등 원인을 ‘귀족노조’와 비정규직·하청 남용에 따른 ‘경제구조’ 중에 선택하라는 질문에는 “둘 다 있다”는 응답이 54.4%로 가장 높았지만, 경제구조(28.6%)가 귀족노조(14.4%)보다 두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노동시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중소기업 간 격차와 정규-비정규직 간의 격차를 꼽았다. 또 새 정부의 노동정책 가운데 청년고용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기업 및 고소득자 증세를 선호했다. 반면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는 정책은 가장 낮은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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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과 실제 활동은 달라 노조의 실제 활동과 국민의 기대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은 노조가 ‘취약계층을 보호’(30.1%)하거나 ‘고용안정을 추구해야 한다’(28.8%)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의 활동은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에 집중했다’(47.4%)고 평가했다.
응답자들은 또 노조의 효능이 임금인상(59.9%)보다 고용안정(72.1%)이나 부당한 대우로부터 노동자를 보호(70.3%)하는 데 있다고 인식했다. 정 연구위원은 “비정규직이 퍼져 고용이 불안해지고 직장 내 괴롭힘 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국민은 노조의 본질적 역할이 달라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의 영향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전망은 2007년 48.2%, 2010년 40%, 올해 26.3% 등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보호 활동과 사회제도 개혁 활동에 대한 국민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뀔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기업 단위에 갇혀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사관계를 뛰어넘어 고용안정 등 노동자 일반의 경제적 이해를 논의하는 산별과 업종별 교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노동연구원이 8월 한 달간 일대일 대면조사를 통해 성인 1000명을 표본조사한 것이다. 응답자는 남녀 비율(50 대 50), 임금근로자 비율(64.5%), 노동조합 조합원 비율(3.2%), 정치적 성향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 연구팀은 같은 질문지로 1989년, 2007년, 2010년에도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