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도 임금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지역 조합원이 보내온 장미를 머리에 꽂고 밝은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관계자는 “추석에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조합원들을 위로하고, 장미가 시들기 전에 학교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지역 조합원이 보냈다”고 말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추석날 가족과 웃으면서 할 말이 생겨서 한시름 놓여요.”
고용노동부가 최근 파리바게뜨에 이어 일본 유리 제조업체 아사히글라스와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만도헬라)의 ‘불법 파견’을 잇따라 인정하면서, 이들 하청노동자의 고향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만도헬라 인천 송도공장에서 4개월째 파업 중인 이경민(31)씨는 “내가 선택한 길이 옳았다는 걸 집안 어른들께 설명할 수 있게 돼 한결 홀가분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만도헬라 작업복을 입고 만도헬라 사원증을 들고 4년간 만도헬라 공장을 출퇴근했지만 만도헬라 직원은 아니었다.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씩, 1년에 보름도 채 쉬지 못한 채 일해도 최저임금을 받는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만도헬라가 지휘·감독하니까 불법 파견이라고 짐작했어요. 몇몇이 노무사를 찾아가 조언도 구했는데, 그럴 때면 (만도헬라 소속) 팀장이 찾아와서 곧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고 달랬죠. 그렇게 7, 8년을 ‘희망 고문’ 당하며 지냈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은 그예 노조(금속노조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를 결성하고 파견법 위반으로 회사를 고소했다. 지난달 24일 고용노동부가 하청노동자 325명을 11월7일까지 직접 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했다. “파업하면서 돈을 까먹으니까 집안 어른들이 ‘다른 회사 알아보라’며 걱정을 많이 했어요. 불법 파견이 인정됐다는 소식에 좀 안심시더라고요.” 그러나 이씨는 교섭에 나서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을 대체인력으로 활용해 공장을 돌리는 만도헬라가 고용부의 시정명령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의 싸움은 오늘도 계속된다.
아사히글라스에서 2015년 6월 해고당한 송동주(34)씨는 대구고등검찰청 앞 농성장에서 30일 넘게 농성 중이다. 고용부가 ‘불법 파견’을 인정해 아사히글라스에 하청노동자 178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선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기 때문이다. “노조를 결성하고 한 달 만에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니 말도 안 됩니다.” 2016년 중앙노동위원회는 문자해고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지만, 회사가 낸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그 결과를 뒤집었다. 고용부가 이번에 불법파견을 인정했으니 관련 자료를 넘기면 검찰과 법원에서도 부당노동행위가 입증될 것이라고 송씨는 믿는다.
추석을 ‘길 위에서’ 보내지만 그는 기분이 “업 된다”고 했다. “2년간 싸우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으니까 답답했죠. 이번에 불법 파견이 인정돼 희망이 생겼어요.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좋더라고요.” 추석을 앞두고 어머니와 통화하며 달라진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해결의 실마리가 생긴 거냐”며 기뻐했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이길 수 있다고 확실하게 말했어요. 결혼한 조합원들도 처가 갈 면목이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명절 때 고향을 찾지 않던 조합원들이 이번엔 고향을 가겠다고 했다. 미혼인 송씨가 추석날 농성장을 지키기로 했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이수희(가명·24)씨는 추석 연휴 때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지만, 주변 시선은 사뭇 달라졌다.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4362명과 카페기사 1016명을 불법 파견으로 판단해, 11월9일까지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제빵기사의 열악한 근로환경이 알려지니까 친구들이 많이 연락했어요. 당연히 본사 직원인 줄 알았는데, 협력업체는 뭐냐고 묻기도 하고요. 아빠, 엄마는 잘 해결해서 다른 분야도 바꾸도록 하라고 격려해주시고요.”
달라진 여론과 달리, 달라지지 않은 회사가 이씨는 답답하다고 했다. 파리바게뜨 본사는 고용부 시정명령에 침묵하고 있고, 협력업체는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씨는“5천여명을 한꺼번에 직접 고용하기 어렵다면 노사가 해결 방법을 함께 논의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했다. “대화는 하지 않고 ‘우리랑 싸우자는 거지’라고 화만 내니까 안타까워요. 제발 회사 오래 다닐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3년 가까이 팽팽히 맞서다가 ‘상생의 길’을 찾은 삼표시멘트(옛 동양시멘트)는 만도헬라, 아사히글라스, 파리바게뜨 하청노동자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강원도 삼척시 삼표시멘트에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고 고용부가 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2015년 2월. 그러나 삼표시멘트는 오히려 노동자 101명을 집단 해고해버렸다. 하지만 회사와 노조는 지난 9월20일 해고한 하청노동자 39명을 10월16일부터 정규직으로 복직시키기로 최종합의했다.
김진영(41)씨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떠나간 동료들을 떠올렸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다들 생계가 어려워져 빚을 졌죠.” 결혼한 지 5년 만에 얻는 귀한 딸이 세 살이 되도록 해고자 신분이 계속되자 김씨의 고민도 깊어졌었다. “일당 받는 노가다 현장도 가봤어요. 근데 우리가 옳잖아요. 그러니까 이겨야 하잖아요.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가족을 설득했죠.”
하청노동자로 살아온 김씨는 원래 명절을 싫어한다. “정규직은 휴가비를 챙겨서 고향으로 떠나지만 비정규직은 남아서 일해야 했거든요.” 특히 해고된 뒤에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 고향 가는 길이 멀기만 했다. 정규직으로 복직하면 김씨는 가족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아내가 제주도를 한 번도 못 가봤어요. 고생한 아내,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그의 삶에도 소소한 행복이 다가오고 있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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