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명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이 ‘이주노동자 숙식비 강제징수 지침 폐기’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한낮 기온 섭씨 0도, 체감온도는 영하 5도로 뚝 떨어진 4일 정오께, 서울 명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선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위원장이 칼바람을 맞으며 1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날부터 오는 15일까지 2주간 서울·경기·충북·대구·부산 등 전국 9곳에서 ‘이주노동자 숙식비 공제지침 폐기’를 위한 전국 1인 시위가 시작됐다. 이번 시위에는 민주노총과 각 지역 이주노동자 단체들이 참여했다.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환경은 단지 ‘열악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형편 없다. 특히 일터의 특성상 바깥세계와 단절된 지방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참담할 지경이다.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는 냉난방이 안되고 비가 새기도 한다. 화장실은 숙소 바로 바깥에 엉성한 재래식 임시화장실이 고작이기 십상이다. 숙소엔 잠금장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사용자 등 주변의 ‘몹쓸 짓’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이런 숙소를 제공받는 대가로,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박봉에서 최대 20%까지 숙식비를 선공제한 임금을 받고 일한다.
4일 우다야 위원장의 1인 시위 현장에 따라나온 네팔 출신의 기솔 라마(34)는 경기 김포의 한 비철금속 재생용 재료 수집·판매업체에서 다른 이주노동자 2명과 함께 일한다. 숙소는 컨테이너 가건물. 그의 근로계약서에는 휴일을 뺀 월 20일 노동(하루 8시간)에 통상임금 126만원을 받기로 돼있다. 딱 최저임금이다. 식사는 점심 무료제공, 숙박은 ‘그밖의 임시 주거시설’을 근로자 부담으로 제공받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달 그가 손에 쥔 월급은 90만원. 고용주가 임의로 36만원을 공제했다. 턱없이 많은 돈을 떼이는 것 같은데, 구체적인 공제 내역을 라마는 알지 못한다. 급여명세서는 애초에 없고, 근로계약서에도 숙식비가 얼마인지는 명시되지 않았다. “일이 없다”며 근로를 시키지 않고 일당을 떼거나, 가산임금도 없이 휴일 노동을 시키기도 한다. 근로계약 위반, 즉 불법이다. 라마는 네팔 국립 트리부반대를 졸업한 뒤, 2015년 봄 한국에 고용허가제로 입국하기 전까지 현지 주간지 기자를 한 엘리트다. 그런 그조차도 한국의 이주노동자가 겪는 부당한 현실 앞에선 무력하기만 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 을 마련해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서면 동의를 전제로, 숙식비를 월 통상임금에서 최대 20%까지 사전 공제할 수 있다는 게 뼈대다. 숙식을 함께 제공할 경우 아파트, 단독주택, 연립·다세대 주택은 20%, 그 밖의 임시주거시설은 13%가 기준이다. 숙소만 제공하면 각각 15%, 8%다. 고용주들은 어김없이 최대치를 뗀다. 그래도 월 126만원을 받고 컨테이너 숙박을 제공받는다면 숙박비 부담은 1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라마는 이해할 수 없는 온갖 구실로 서너배의 임금을 떼인 셈이다.
국제 노동자의 날(메이 데이)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30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 숙식비 강제징수 지침 철회, 고용허가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이같은 임금 선공제를 놓고는 위법 논란도 있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제42조 제1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부는 그러나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동의가 있을 경우 선공제가 임금 전액지급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대법 판결(2001년 10월)을 근거로, 서면동의서를 작성하면 사전공제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숙식이 마땅치 않고 사업장 선택 자유도 제한된 최하위 ‘을’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유 의사로 숙식비 계약을 맺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 고용부의 현행 지침에는 이주노동자 숙박비 징수 기준만 있을 뿐, 숙소 실태에 대한 점검과 관리감독은 커녕 법정 기준도 없다. 이 때문에 이주노조와 인권단체들은 고용부의 지침이 사실상 또다른 방식의 임금 착취를 허가해 준 ‘숙식비 강제징수 지침’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지난 9월 이용득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4명은 이주노동자 기숙사의 구조·설비·설치장소·주거환경 등을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 기준에 맞춰 대통령령으로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과 외국인근로자고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이 법안들은 사용자(고용주)에게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숙박시설의 설치 및 사전 공지 의무를 지우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부 비용을 지원하며, 고용부의 관리·감독 책임을 강화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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