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상대로 한 정부 손해배상청구소송
강정 외에도 쌍용차·한진중 희망버스 등 7건
강정 외에도 쌍용차·한진중 희망버스 등 7건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 등에 참여한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제기한 34억5000만원의 구상권 소송을 철회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부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악용’해 정부 정책 등에 반대하는 국민의 ‘집회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강정마을 주민 등을 대리한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정부의 결정에 대해 “지난 정부의 구상금 청구 소송은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게 압박을 주기 위한 보복성 소송이었다”며 “새 정부가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여 다행”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강정주민 옥죈 ‘보복 소송’…1년6개월 만에 멍에 풀렸다)
이번 소송 철회로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10여년 동안 이어져온 정부와 주민 사이의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집회·시위에 대한 정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아직 6건이 진행 중이고 1건은 집회 주최쪽에서 금액을 변제했다. 강정마을 건은 주민들의 반대 집회로 공사가 지연됐으니, 해군이 시공사인 삼성물산에 물어준 251억원의 일부를 돌려받겠다는 취지의 구상권 청구 소송이지만, 나머지 7건은 대체로 경찰 장비 파손이나 인력 부상, 정신적 피해 등을 거론하며 제기한 직접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다.
박래군 ‘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운영위원은 지난달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기업의 괴롭히기 소송 남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 발표문에서 각 사례를 정리한 바 있다. 여기서 박래군 운영위원은 “기업만 노동조합 파괴 수법으로 손해배상청구 및 가압류를 악용하는 게 아니”라고 꼬집으며 “기업과 국가의 손배·가압류 소송은 구체적으로 손해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보다는 기본권 행사를 제약하려는 목적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중대한 인권침해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발표문을 바탕으로 7건의 소송이 어떤 내용인지 하나씩 소개한다.
(▶토론회 발표문 바로가기)
(▶관련 기사: 법을 이용한 국가폭력 손배소, 계속하시렵니까)
1.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등과 개인 101명→16억7000만원(3심 진행중)
2009년 쌍용자동차가 당시 노동자 7177명의 37%에 해당하는 2646명을 정리해고로 구조조정했다. 이에 노동조합이 옥쇄파업을 벌이자 2009년 8월 4~5일 이틀동안 경찰은 헬기, 기중기 등을 동원해 군사 작전 같은 진압 작전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는 각종 장비와 헬기, 기중기 등이 파손되었다면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지부 조합원 등을 상대로 16억7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관련 기사 : 토끼몰이 진압…‘화약고’에 갇힌 쌍용차 노조)
항소심에서 11억6800만원의 배상 선고가 있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매일 62만원의 지연이자가 발생하고 있고, 조합원 67명의 임금과 퇴직금에 가압류가, 조합원 22명에 대해서는 부동산 압류가 이뤄진 상황이다. 당시 파업으로 94명이 구속됐고 300여명이 벌금 및 형사처벌을 받았는데, 여기에 정부로부터 손해배상까지 청구받고 있는 것이다.
2.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등과 개인 5명→1100만원(2심 진행중)
2011년 노동자 400명을 해고하려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당시 그를 응원하기 위한 ‘희망버스’가 5차례 부산 영도를 방문해 조선소 안팎에서 집회를 열고 행진했다. 이때 ‘불법시위’ 등으로 경찰 무전기 등이 파괴되고 경찰관이 다쳤다면서 이명박 정부는 진료비와 위자료 명목으로 1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관련 기사 : 한진중공업 25년의 타임머신)
3.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등과 개인 4명→2200만원(1심 진행중)
2015년 5월1일 민주노총의 노동절 집회에 이어 세월호 시행령 폐기 등을 위한 범국민철야행동 집회가 진행됐다. 경찰은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차벽, 지하철 입구 봉쇄 등을 통해 막았다. 이날 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연행되고 다쳤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총 노동절 집회로 인해 약 1400만원의 재산상 피해를, 세월호 1박2일 집회로 인해 790여만원의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4·16 연대, 민주노총과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에게 약 2200만원을 청구했다. (▶관련 기사 : ‘노동절 집회 주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체포영장 발부)
4.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등과 개인 5명→9000만원(1심 진행중)
2015년 4월18일 서울시청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범국민 대회’에서 경찰은 경찰버스 477대를 동원해 6중 차벽을 설치해 행진을 막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으로 유가족과 시민들을 공격했다. 이에 시민들이 차량을 끌어내는 등 항의 행동을 하자 경찰은 차량과 장비 등 물적 피해와 경찰관들의 치료비 등 인적 피해 배상 명목으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4·16 연대 민주노총 등 모두 3개 단체와 박래군을 비롯한 5명의 활동가를 상대로 7800만원의 배상액을 청구했다. 또 경찰관 개인 40명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명목으로 각 30만원씩 1200만원을 청구했다. (▶관련 기사 : ‘세월호 집회’에 경찰 물대포·최루액 살포…유족 등 100명 연행)
5. 광우병대책회의 등과 개인 14명→5억1700만원(3심 진행중)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중 집회 참가자 일부에 의해 파손된 경찰 장비 등에 대해 정부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와 소속단체, 담당 활동가 등에 5억17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과 2심 모두 정부가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6.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등과 개인 6명→3억8700만원(1심 진행중)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서울시청 광장, 세종대로 일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노동개악 저지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주최했다. 당시 경찰은 대부분의 집회 신고에 대해 금지 통고했고 전시에 준하는 갑호비상령을 발령하는 등 집회 자체를 사전에 압박했다.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광화문 광장 일대에 3중의 대규모 차벽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날 경찰의 무리한 시위 진압 과정에서 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끝내 사망했다.
박근혜 정부와 경찰관 90여명은 민주노총과 한상균 위원장, 민주노총 집행부와 집회 참가자 일부를 상대로 물적 피해 3억2800만원을 포함 3억8700만원을 청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민주총궐기 관련 형사사건에서 1억4700만원을 공탁했고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관련 기사 : 콩기름·차벽 정부 맞서…10만명 광화문 격렬 충돌)
7. 유성기업 노조 등과 개인 11명→1억1100만원(4500만원 확정)
2011년 5월24일과 6월22일 파업 중인 유성기업에 경찰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127명이 상해를 입고 방패, 방석모, 우의 등 진압 장비들이 분실·파손됐다며 정부는 민주노총 충남본부, 유성기업 노동조합, 금속노조 충남지부, 충남 건설기계지부 등 노동조합과 조합간부 12명에게 경찰관 개인에 대한 국가부담 진료비와 위자료, 분실·파손된 장비 배상 명목으로 1억1100만원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국가에 1100만원을, 경찰관 127명에게 3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조합원들은 파업 등으로 1인당 많게는 71건에 달하는 송사에 휘말려 있었고 회사 쪽의 40억원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 중이라 노조는 항소하지 않고 1심 판결 금액을 변제했다. (▶관련 기사 : 유성기업 ‘충돌 격화’)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쌍용자동차에 농성중인 노조원들에 대한 본격적인 진압에 나선 경찰들이 2009년 8월5일 오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조립공장 옥상에서 농성중이던 노조원들을 체포하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제5차 희망버스 행사가 2011년 10월8일 오후 부산에서 열린 가운데 중구 남포동 광복로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연행하고 있다. 부산/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노동절 노동자대회에 참석했던 노동자와 416 세월호 국민연대가 주최한 1박2일 행동에 참가했던 시민단체 회원, 시민들이 2015년 5월1일 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려하자 서울 안국네거리에서 경찰이 차벽으로 가로막은 채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뿌리고 있다. 경찰은 버스 위에서 사진을 찍던 기자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물을 뿌리기도 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15년 4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민주노총, 시민 등으로 이뤄진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경찰과 대치하는 가운데 세월호 시행령 폐지와 조속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요구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경호 기자
2008년 6월10일 경찰이 바리케이트로 쳐 놓은 컨테이너 박스 ‘명박산성'. 박승화 기자
전남 보성에서 상경한 농민 백남기씨가 2015년 11월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있다. 쓰러진 백씨 위로 계속해서 강한 물살이 쏟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2011년 5월24일 오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유성기업 정문 앞에서 주간2교대 실행과 직장폐쇄 철회를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이던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아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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