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유성기업 노조파괴 혐의로 현대차를 기소한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차 본사 인근 고 한광호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의 분향소가 있는 천막농성장 주변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2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부당노동행위) 위반 혐의로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에게 징역 1년2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노조법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사용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지만, 기업 경영진이 부당노동행위로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된 것은 역사상 처음입니다.
유 회장은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고, 지난 8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2월로 감형됐습니다. 그리고 넉달만인 22일 대법에서 최종확정된 것입니다. 재판이 꽤나 신속하게 처리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범죄 발생일로부터 최종확정 판결까지는 무려 6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늦어진 걸까요. 그 사이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 고용노동부·검찰 봐주기로 확정판결까지 6년 반
유 회장을 비롯한 유성기업의 ‘범죄’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에 피스톤링 등을 납품하는 회사로 충북 영동과 충남 아산에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두 공장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지회가 있습니다. 지회는 단체교섭과정에서 주야 교대로 운영되던 것을 ‘주간연속 2교대’제로 바꾸자고 요구합니다. 지금 한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또 누구나 필요성을 공감하는 ‘노동시간 단축’ 요구였습니다.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합법적인 쟁의행위 즉 파업에 돌입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회사는 이에 맞서 ‘범죄’를 준비했습니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때마침 시행예정이었던 ‘복수노조’ 제도를 활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회사 주도로 회사에 우호적인 제2노조를 설립하고 이를 지원해주기로 계획합니다. 2011년 5월18일 회사는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공장 안에 있던 지회 조합원을 끌어내기 위해 경비용역을 동원해 다수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직장폐쇄가 장기화되면서 2011년 7월 지회는 복귀 의사를 밝혔으나, 회사는 한달 넘게 직장폐쇄를 유지하면서 노무수령을 거부했습니다. 그 사이 회사는 제2노조를 설립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회와 제2노조 조합원을 차별합니다. 복귀 뒤, 지회 조합원 27명이 해고됐습니다. 노조 설립의 뒤를 봐준 것은 회사였고 또 창조컨설팅이었습니다. 이 노조는 법원에서 “어용노조라 설립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옵니다.
회사가 했던 일련의 행위는 사용자가 노동조합 활동에 지배·개입하는 행위로, 노조법이 금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합니다. 원래 부당노동행위라는 것이 은밀히 진행되는 것이어서 증거를 잡아내기가 매우 힘듭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12년 9월 국회에서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자문한 문건이 공개됩니다. 지회는 유성기업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미적대기만 합니다. 검찰은 1년이 넘게 지난 2013년 12월 노조파괴 혐의를 제외한 뒤, 극히 일부만의 혐의로 ‘봐주기’ 기소합니다. 지회는 불기소 혐의에 대해서 기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대전고법에 재정신청을 냈고, 법원은 또 1년이 지난 2014년 12월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해서 기소하라고 검찰에 명령합니다. 그제야 제대로 된 재판이 이뤄진 셈이죠. 그러고 나서 또 2년이 지난, 지난 1월에서야 1심 판결이 나온 겁니다. 1심 재판에서 이미 ‘봐주기 기소’했던 검찰은 유 회장에게 징역 1년을 구형하는 데 그쳤지만, 법원은 구형보다 센 징역 1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항소심에서 일부 혐의가 무죄로 판단돼 감형됐지만, 유죄와 실형 판단은 유지됐습니다.
■ 1심도 안끝난 창조컨설팅, 헌재로 가버린 현대차
도무지 언제 끝날지 몰랐던 유성기업에 대한 처벌은 이날 대법원 선고로 마무리됐지만,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와 밀접하게 관련된 현대차와 창조컨설팅의 유죄 여부를 가려내는 재판은 또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셈이죠.
먼저, 유성기업에는 ‘갑’의 입장인 현대차 임직원들에 대한 재판은 제대로 된 공판 한번 하지 못하고 무기한 연기된 상태입니다. 현대차 구매본부 임직원들은 금속노조의 파업으로 납품 차질이 발생하자, 유성기업이 대책이라고 내놓은 ‘어용노조’ 설립 및 조합원 확보를 ‘더 열심히 하라’고 채근하고 호통칩니다. 이 사실은 2012년 고용부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핵심증거가 이미 발견됐지만, 고용부나 검찰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도 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분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가, (대선 직후인) 지난 5월에서야 검찰은 유성기업의 공범으로 현대차 직원 4명과 현대차 법인을 기소했습니다. 그동안 지회가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배후’라고 지목해왔던 현대차 관계자들의 혐의 여부에 대해 가져질 것으로 기대됐으나, 뜻밖의 암초를 만났습니다. 지난 9월 ‘현대차 법인’이 “직원이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고 해서 법인까지 같이 처벌하도록 하는 노조법 ‘양벌규정’은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임직원 재판과 법인 재판을 나눠서 하자고 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고 무작정 미뤘습니다. 결국 현대차 형사재판은 헌재가 ‘노조법 양벌규정은 위헌인가 합헌인가’에 대한 결정을 내린 이후에야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유성기업과 현대차 사이에서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자문했던 창조컨설팅 관계자에 대한 재판 역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검찰은 2015년 6월에서야 심종두·김주목 노무사를 기소했습니다. 유성기업 재판에서 ‘창조컨설팅이 자문한 문서대로 유성기업이 실행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지만, 당시 검찰은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한 수많은 ‘자문’ 가운데, ‘어용노조 설립’만 혐의로 인정해 기소했습니다. 금속노조 조합원에 대한 차별 대우, 직장폐쇄 등은 공소장에서 빠지고 무혐의 처분 됐죠. 이마저도 2015년 기소됐다가 법원이 ‘주범’인 유성기업의 재판 결과를 보겠다며 재판을 미뤄, 실질적인 첫 재판은 지난 8월에 시작됐습니다. 법원은 6년 전 혐의사실에 대해 최근에서야 증인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또 해를 넘길 것으로 보입니다.
■ 노조파괴로 망가진 일터는 언제쯤 되살릴 수 있을까요
고용부가 미루고 검찰이 미루고 법원이 미뤘던 그 6년 반 동안, 조합원들의 몸과 마음은 망가졌습니다. 회사는 지회 조합원을 무더기 징계했고, 조합원들은 징계가 부당하다며 하나하나 법적 다툼을 해야 했습니다. 제2노조가 법원에서 무효라는 판결이 나온 뒤, 같은 사람이 만든 ‘제3노조’ 조합원들과 회사 관리자들과 크고 작은 다툼이 발생한 것도 문제입니다. 1천건이 넘는 고소·고발을 당하고, 또 이와 관련한 형사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3월17일, 회사의 징계를 앞두고 한광호 조합원이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한씨의 죽음을 ‘우울증에 따른 산업재해’로 인정했지만, 회사는 이를 취소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내 이 재판이 또 진행 중입니다.
‘피해자’들은 망가졌지만, 회장이 구속되고 다른 임직원들이 집행유예·벌금형을 받은 것을 빼고는 회사 관계자들은 ‘별일’이 없습니다. 유 회장의 공범으로 이날 대법에서 집행유예가 최종 확정된 이기봉 아산공장장, 최성옥 영동공장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공장장입니다. 두 공장장은 각 공장의 징계위원회 의장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성민 유성영동지회 사무장은 “부당노동행위 범죄자가 징계위원회 의장을 하는 상황이 너무 우습지 않나요. 노동자들은 뭐하나 작은 거 잘못해도 다 징계위원회 올려서 감봉하고 해고하는데, 부당노동행위 경영진들은 누구도 징계받지 않았어요. ‘회사에 누를 끼쳤으니 징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회사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지회가 회사에 요구하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노조파괴 이전으로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복직 △노조파괴 책임자 처벌. 법원 확정판결로 ‘노조파괴’라는 범죄행위가 확인됐지만, 망가진 일터를 되살릴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예측을 하지 못합니다. 유성기업을 취재하면서 든 답답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조파괴’가 없던 때처럼, 노동자들이 웃으면서 다시 일할 수 있는 날은 도대체 언제 올까요. 그날이 오려면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 걸까요.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