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형수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왼쪽)과 조병훈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통합사무장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사무실에서 각각 고 염호석, 고 최종범 조합원의 영정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삼성의 ‘노조와해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검찰에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있다. ‘염호석 열사 주검 탈취 사건’의 경위를 소상히 밝혀달라는 요구다.
2013년 7월 출범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임금·단체협약 쟁취를 내걸고 파업 중이던 2014년 5월17일, 지회 경남 양산분회장이었던 염호석씨는 “지회(노동조합)가 승리하는 날 화장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강원도 강릉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염씨의 유언과는 다르게, 장례는 석연찮은 이유로 ‘노동조합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지회는 염씨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도 모른다. 지회는 이런 과정에 삼성과 경찰이 개입됐다고 주장한다.
16일 지회가 <한겨레>에 제공한 당시 염씨 부친과 지회 간부와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삼성 쪽은 염씨의 부친이 아들의 주검을 확인하러 강릉으로 향하던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염씨를 만나 합의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염씨의 부친은 녹취록에서 “(양산센터 사장이) ‘장례도 다 치러주고 다 해줄 테니까 합의서를 적어라’ 이러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아들의) 얼굴을 봐야, 주검을 봐야 합의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며 “‘(삼성 쪽이 노동조합장으로 장례를 치르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거 같다. 우리는 보상을 확실히 해주겠다’면서 (합의서를) 적어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강릉에 도착해 아들의 유서를 본 염씨 부친의 판단은 달랐다. 그는 “장례 절차에 관한 모든 것을 노동조합에 위임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지회 간부들과 함께 아들의 주검을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으로 옮겼다.
염씨의 부친이 태도를 바꾼 것은 아들이 숨진 다음날(18일) 이른 새벽이었다. 곽형수 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아버님이 갑자기 ‘삼성에서 돈을 얼마 준다는데 너희는 얼마 받아줄 수 있노’라고 물어, ‘우리는 돈을 얼마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호석이의 뜻에 따라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리며 아버님을 설득하려 했다”고 말했다.
같은날 오후 염씨 부친은 장례식장 안팎에서 지회 관계자들에게는 ‘지인’이라고 밝힌 이들과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지회는 이날 염씨의 부친이 만났던 이들이 삼성 원청 관계자일 것으로 본다. 실제로 당시 염씨 부친이 가지고 있던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 가운데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협력업체 관련 업무를 하는 ‘상생지원그룹’ 관계자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염씨의 부친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묻자 “내가 만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장례식장에 진입해 염씨의 주검을 빼낼 수 있었던 경위도 검찰의 수사 대상이다. 염씨가 숨진 다음날 오후 6시께 장례식장에 갑자기 경찰 기동대 3개 중대가 들이닥쳐 염씨의 주검을 빼냈다. 또한 경찰은 이를 막으려던 지회 조합원과 조문객한테 캡사이신을 뿌리며 진압했다. 곽 부지회장은 “부친이 112에 주검을 운구하겠다고 신고한 지 10분도 안 돼 300명에 가까운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의 이렇게 신속한 대응의 배후에는 삼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강남경찰서 정보과장은 “당시 노조가 주검을 빼내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한다는 첩보가 있어 오전부터 근처에서 3개 중대가 상황대기 중이었다”면서도 첩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당시 강남서장도 “현장 근무자들인 우리 입장에서는 (염씨 부친의) 수차례 112 신고에 의해 파출소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주검이 운구되도록) 조처를 했으나 안되어, 부득이 법적절차에 따라 조처한 것”이라며 “검찰이 정확하고 객관적 사실관계를 밝혀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은 경찰 투입 과정에서의 개입 여부 등과 관련해 “검찰 수사 중이라 답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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