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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80년 무노조’ 삼성은 왜 노조를 인정했을까요

등록 2018-04-21 09:58수정 2018-04-23 10:2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 18일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나두식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왼쪽)과 최우수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협력업체 노동자 직접고용과 노조 인정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지난 18일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나두식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왼쪽)과 최우수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협력업체 노동자 직접고용과 노조 인정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만우절도 아닌데….”

지난 17일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모든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겠다는 소식을 전하자, 노동분야 한 전문가가 내놓은 반응입니다. 저도 귀를 의심했습니다. 노사 대화가 시작된 지 5일 만에 이뤄진 이번 합의는 어떤 배경 때문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한겨레>에서 노동분야를 취재하고 있는 사회정책팀 박태우입니다. 오늘은 삼성의 80년 ‘무노조 경영’의 막을 내리게 한 삼성전자서비스와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노사 합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노조 인정과 직접고용 합의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또 다른 ‘귀를 의심할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검찰이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에 대한 ‘인지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삼성 노조 와해 전략 수사는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인사팀 직원의 외장하드를 압수수색했고, 여기서 6천건에 이르는 노조 와해 문건이 나오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동안 검찰은 ‘부당노동행위’, 즉 사용자가 노조 활동에 개입하거나,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에 대한 수사와 처벌에서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건’으로 불리는 유성기업의 경우도 애초 검찰은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기소조차 하지 않았고, 법원의 공소제기 명령 이후 기소돼 대법원에서 회장이 실형 확정 판결을 받는 데 무려 6년이 걸렸습니다. 해달라고 해도 수사하지 않았던 검찰이 스스로, 그것도 삼성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죠.

삼성은 이런 검찰의 ‘달라진 모습’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삼성은 검찰이 외장하드를 분석하는 과정에 입회해 어떤 자료를 압수하는지 하나하나 확인했다고 합니다.(이는 ‘피의자’인 삼성의 권리입니다.) 문건 안에는 “진짜 사용자는 협력업체 사장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노조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자료들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직접고용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나 2014년 5월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승리하면 장례를 치러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지회 조합원 염호석씨의 장례 과정에서 삼성이 염씨의 부친에게 ‘노동조합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개입한 정황을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점도 삼성엔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3일 저녁 삼성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사무실에 먼저 전화를 걸어 “직접고용에 대한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고, 닷새 만에 지회와 합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합의 배경이 ‘검찰 수사’에만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노조가 그동안 줄기차게 싸우지 않았다면 삼성이 노조 와해 전략을 쓸 이유도, 검찰이 수사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죠. 2013년 7월 출범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삼성이 노조 와해 목적으로 협력업체를 폐업시켜 일자리를 잃게 하고, 일감을 주지 않아 월 100만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등 상황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최종범·염호석씨가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은 노조 깃발을 지켜냈습니다. 직접고용 합의문에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활동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지회의 요구 때문입니다. 나두식 지회장은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직접고용보다도 노조 인정이었다. 노조 인정을 합의해야 직접고용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삼성에 말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노동분야를 취재하며 지켜본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삼성에 맞선 투쟁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2016년 촛불정국에서 지회는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쪼개 투쟁기금을 모았고 전국의 촛불집회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정경유착이고,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비롯한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내용의 유인물 수만장을 배포하기도 했죠. ‘진짜 삼성노동자’가 될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어떤 활동을 할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삼성에서 노조 한다고 우리 조합원들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곽형수 수석부지회장의 말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지회의 바람대로, 이번 합의와 별개로 삼성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엄정히 이뤄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더이상 헌법상 권리인 ‘노조 할 권리’를 위해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 봅니다. 최종범·염호석씨의 명복을 빕니다.

박태우 사회정책팀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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