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시간 주야 맞교대…철야 땐 속절없이 고개가 꼬꾸라졌다 에서 이어짐
점심시간 0시30분 “누워만 있었어.” 언니들이 자주 한 말이다. 잠은 오지 않는데 어떻게든 잠들려고 애썼다는 뜻이다. 최소연(35) 언니는 귀마개와 안대에 의지했다. 아래층에 점집이 들어와 귀마개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다 했다. 또 다른 파견 노동자 우예지(25)는 창문에 암막커튼까지 달아놨지만, 깊은 잠을 자진 못 한다. 한 방에 사는 룸메이트가 “언니, 자?” 묻는 말에 “어, 자고 있어”라고 답할 정도라고 웃었다. 최지숙(43) 언니는 잠자리에 들기 전 신김치를 안주 삼은 소주 반병에 기댄다. 주야맞교대를 하고 있는 금속노동자 10명 중 6명은 불면증 등을 겪는다는 통계가 나온 바 있다.(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2011년 수면장애 실태조사 보고서).
3월8일 박민주(45) 언니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수요일마다 학교를 일찍 마치고 오후 1시께 집에 돌아온다. “엄마 붙잡고 종알종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놔 잠을 한숨도 못잤다”며 웃었다.
지난 3월 인천의 한 화장품 제조공장에 다닐 당시 찍었던 출퇴근 기록 카드. 고한솔 기자
낮밤이 뒤바뀐 몸은 가장 ‘약한 고리’를 통해 고통을 호소했다. 12시간 야간근무 중 점심시간은 한밤중인 0시30분. 쉬어야 할 소화기관은 짜장밥, 제육볶음 등 짜고 기름진 ‘한 끼’를 맞았다. 전숙희 언니는 반찬을 떠오다 말고 식판을 들고 정수기로 직행한 뒤 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기 일쑤였다. 10년째 주야맞교대로 일했다는 또 다른 언니는 늘 사물함에 사이다를 넣어두고 지냈다. 한달 가까이 그 언니가 몸에 딱 맞는 청바지를 입고 온 걸 본 적 없다. 박민주(45) 언니는 아예 점심을 거르고 탈의실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만성 소화불량은 이들의 일상이었다.
민주 언니는 “야간하더니 피부가 또 뒤집어졌다”며 화장 대신 연고를 치덕치덕 바르고 출근하기도 했다. 경기 안산시에서 만난 정규직 노동자 신지애(38) 언니는 야간 노동을 하기 시작하고 6개월 동안 생리불순에 시달렸다고 했다. “내가 올빼미 스타일이거든. 그런데 밤에 쉬면서 깨어있는 거랑 일하면서 깨어있는 건 다르더라.” 언니는 야간으로 오래 일할 거면 초등학교 근처에선 살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교 시간 창밖으로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잠을 깬 경험 때문이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뒤 탈의실은 ‘지뢰찾기’ 게임장이 됐다. 사실상 유일한 휴식 공간인 탈의실에 드러눕는 사람들이 늘어나 피해 다녀야 한 탓이다. 집에서 가져온 요가매트·무릎담요 등을 깔아놓고 15분~20분 쪽잠을 청했다. 사물함 좀 열어야 한다며 누군가 말을 건네곤 해 쪽잠도 자는 둥 마는 등이었다. 누워있던 지숙 언니가 천장을 바라보며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야간 하다보면 월~화, 화~수 이렇게 걸쳐서 살잖아. 그래서 야간 하면 더 빨리 늙나 봐.” 농담에 메아리는 없었다. 지숙 언니도 딱히 대꾸를 기대하진 않은 듯했다.
3월2일 기계를 점검하던 중 컨베이어 벨트에 손이 끼어 오른손 약지 살점이 3㎝ 정도 들리는 부상을 입었다. 동료 언니가 “상처가 덧날 수 있다”며 붕대 반 롤을 감아 간이 깁스를 만들어줬다. 고한솔 기자
‘잔업·특근 의무 아님’ 공고는 말뿐
무단결근 땐 30여만원이 날아가
식은땀 흘리면서도 죽어라 공장일
“기계 속도 최대 올린대…죽어나겠네”
뫼비우스띠 같은 그곳을 떠났지만
‘타타타’ 컨베이어 소리가 꿈속에까지
달리기로 시작하는 쉬는 시간 두 시간에 한 번씩은 단거리 달리기를 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탈의실로 향하는 문에 ‘병목현상’이 생겼다. 야간 기준 통근버스를 타고 저녁 8시에 회사 도착하면 저녁 8시30분~10시30분(1타임), 10시40분~12시30분(2타임), 점심시간, 새벽 1시30분~3시30분(3타임), 3시40분~5시30분(4타임), 5시40분~8시(5타임)로 일과가 나뉜다. 2시간마다 1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는 꼴이다.
3월12일, 새 작업복이 지급됐다. 하얀색 제전복이 하늘색 상·하의 제전복으로 바뀌었고 작업장 밖 복도나 식당 등에서 입어야 할 쥐색 유니폼이 한 벌 더 지급됐다. 탈의실 밖으로 나가려면 제전복만 벗는 게 원칙이었는데, 이제 제전복을 벗고 쥐색 유니폼을 덧입어야 했다. 화장실을 가거나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려면 일단 탈의실을 벗어나야 하는데 제전복을 벗고 유니폼을 입는데 3분, 화장실 다녀오는데 3분, 다시 유니폼을 벗고 제전복으로 갈아입는 데 3분이 걸렸다. 특히 흡연자들은 불만이 컸다. 담배라도 한 대 태우려면 두 개층 위 옥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사람들은 담배를 태우면서도 힐끗힐끗 시계를 살폈다.
그래도 이곳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2월 출근했던 경기도 안산의 인쇄회로기판(PCB·피시비) 공장은 점심시간 1시간을 쪼개 휴식 시간을 마련했다. 1시간이 오전 쉬는 시간 10분, 점심시간 40분, 오후 쉬는 시간 10분으로 나뉜 셈이다. 저녁 시간은 30분이었는데 허겁지겁 밥 먹고 ‘식후땡’으로 담배 한 대 태우면 귀신같이 작업장으로 복귀할 시간이 됐다. 지애 언니는 점심시간이 1시간에서 40분으로 줄어든 1년 전 직접 노동법까지 들춰봤다고 했다. “‘8시간 일하면 1시간 이상의 휴식을 부여해야 한다’고 쓰여 있는데, 뭐라 할 말이 없더라고.” ‘최소’를 규정해둔 법 규정은 현장에 가면 늘 ‘최대’가 됐다.
‘선택’의 탈을 쓴 잔업·특근 “잔업?” 짧은 두 글자는 때로 “잔업하자” 네 글자가 됐다. 조장 언니는 매일 어깨를 툭툭 치며 잔업 여부를 확인했다. 하늘 같은 조장 언니가 “잔업하지 않을래?”도 아니고 “잔업하자” 권하는데 “아니요”라 말하긴 어려웠다. 구인공고에 ‘잔업·특근 의무 아님’ 문구가 적혀 있지만, 급한 일이 있을 때 하루·이틀 빠질지언정 자유롭게 선택할 순 없었다. 내가 빠진 몫을 결국 다른 누군가가 떠맡아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칼퇴근’ 시간인 새벽 5시30분에는 통근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단 점도 잔업을 해야 할 이유가 됐다. 버스정류장까지 10분을 걸어가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지하철역에 도착하는데, 여기만 40~50분이 걸렸다.
잔업·특근을 거부하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하루 8시간 기본근무만 하면 한 달 209시간을 일해 157만3770원을 손에 쥐게 된다. 2017년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중위소득 60%)인 268만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돈이다. 잔업 2시간30분을 더해 새벽 잔업 기준 3만120원(7530원×150%×2.5시간+7530원×50%×0.5시간)을 더 벌 것인가, 새벽 칼퇴근 뒤 버스를 갈아 타는 수고를 더해 컴컴한 집에 조금 일찍 들어갈 것인가,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야 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어떤 선택에도 아쉬움은 남았다.
결근도 마찬가지다. 말없이 결근하면 하루치 임금은 물론, 근로기준법, 취업규칙 등에 의해 주휴수당, 만근수당, 상여금이 깎이기 때문에 눈앞에서 30여만원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누군가에겐 한달치 월세고, 누군가에겐 자녀 학원비일 돈이다. 언니들이 식은 땀을 흘려가면서 죽어라 공장에 나오는 이유다. 어쩌다 잔업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칼퇴근’을 해야 했던 9일 한 언니가 말했다. “이럴 때 쉬어야지, 언제 쉬겠어?” 그렇게 말한 언니는 정작 잔업·특근이 많은 회사를 찾아 떠났다.
내가 소속된 파견업체는 구인공고에 수식 하나를 제시했다. ‘(여) 기본급 157만3770원+상여100%+만근수당+연차수당+잔업(150%)+특근(150%)+심야(50%)’ 이 모든 항목을 더했을 때 300만원의 월급을 받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잔업 포함해 하루 10.5시간씩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주말 특근을 ‘풀’로 뛰어 한 달 303시간(3월 기준)을 일해야 도달할 수 있는 액수였다.
기자는 2월27일부터 3월18일까지 일하면서 나흘을 제외하곤 ‘풀 잔업’을 뛰었고 주말 특근을 한번 했다. 모두 162만5235원의 급여를 받았다. 이틀치 주휴수당과 야간 식대 9일치가 포함된 금액이다.
멈추지 않는 무한 루프 3월16일 야간 출근 마지막 날 언니들은 저마다 컵라면을 들고 왔다. 희숙(45) 언니가 말했다. “오늘 야간 끝나는 날이잖아? 기념으로 컵라면 한 번 먹어줘야지.” 뜨거운 국물이라도 마셔야 속이 풀리는데 저녁 배식 때 만들어놓은 국이 항상 미지근했다. 언니들은 참치캔도 싸와서 컵라면에 부었다. 야간근무가 마무리되는 것을 자축하는 파티치곤 소박한 메뉴였다. 테이블 여기저기서 후루룩 소리가 들렸다.
언니들은 이전에 스쳐 지나간 공장들을 언급하며 “그래도 여기가 낫다”고 위로했다. “그래도 우리는 앉아서 일하잖아. 기계 만지는 언니들 봐, 내내 서 있잖아.” “저번에 일한 공장은 완전 다 쓰러져가는 데였어요. 그래도 여긴 깨끗해서 괜찮은 거 같아요.” “야, 자동차 부품 회사 다니는 언니는 혼자서 기계 열 대를 봐. 점심도 교대로 먹으러 간다.” 언니들은 이전에 스쳐 지나간 공장들을 언급했다. 서로 되내는 경험담들은 결국 언니들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낮밤이 뒤바뀐 지 2주일이 가까워질수록 하품이 쏟아지는 시각이 늦춰졌다. 수면의 질도 점차 나아졌다. 몸이 시간대에 적응을 하는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 주부터 다시 아침 8시 30분부터 일한다. 야간·주간의 무한 루프다. 3조2교대로 1년 가까이 일했다는 민주 언니가 단시간에 생체시계를 180도 돌려놓는 팁을 전수해줬다. “토요일 아침에 퇴근해서 한숨도 자지 마. 어떻게든 버텨서 밤에 자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돼.” 토요일 밤 잠이 들 때까지 금요일 오후부터 30시간 넘게 뜬눈으로 지새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언니들 사이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다음 주부터 기계 속도를 최고로 올린대. 물량 뽑아내야 해서 그런 가봐요. 또 죽어나겠네.”
한 달을 목표로 한 위장취업을 마무리할 시점, 언니들과 짧은 인사를 마치고 공장을 나섰다. 익숙한 이별인 듯, “좋은데 가면 알려줘” 실없는 농담을 던질 뿐 언니들은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는 파견업체엔 문자를 보냈다. “사정이 생겨 다음 주부터 출근을 못할 것 같습니다. 전화가 안 돼 일단 문자 먼저 드립니다.” 30분 뒤 답장이 왔다. “담당 조장이나 반장에게 받으신 피복을 반납하셔야 됩니다. 미반납시 급여에서 공제됩니다.” 왜 그만두는지, 더 일할 수는 없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취직도, 퇴사도 속전속결이었다.
‘탓 탓 탓… 탓 탓 탓….’ 그날 밤 꿈이 익숙한 소리로 찾아왔다. 차례로 떨어지던 마스크팩이 작업대로 밖으로 쏟아졌다. 그래도 컨베이어 벨트는 개의치 않고 작동했다. 꿈에서도 멈추지 않던 그 컨베이어 벨트는 주·야간으로 교차하며 끝도 없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를 닮았다. 기자는 위장취업을 끝냈고 이제 그 무한대의 시간에서 뛰어내렸다. “월급 받으면 아귀찜을 먹자”던 언니들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지금은 언니들한테 한밤일까, 한낮일까. 문자라도 보내볼까, 핸드폰으로 향하던 손이 멈칫했다.
[노동orz 웹툰] 컨베이어에 낀 손가락…“악!” 비명은 기계음에 파묻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