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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공장서 한달 일한 기자…한순간 손가락이 기계틈새 ‘악’

등록 2018-05-15 09:44수정 2018-05-16 16:01

[창간30 특별기획/ 노동 orz]
1부 노동OTL 10년, 다시 찾은 제조업 현장 ①불면노동자의 한달

상여 100% 주야맞교대 마스크팩 포장
파견업체 전화 2시간만에 뚝딱 취업
컨베이어벨트가 토해낸 제품들은
산더미가 돼 작업대 밖으로 밀려났다

컨베이어 점검중 끼어버린 손가락
“악” 비명은 기계음에 파묻혔다

노동 orz
노동 orz
‘노동,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이 질문이 시작이었습니다. 2009년 기자 네 명이 가장 낮은 노동의 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은 <한겨레21> ‘노동OTL’ 연속 보도로 엎드려 좌절하는(OTL) 노동자의 초상을 전했습니다.

<한겨레> 창간 30돌을 맞아 다시 같은 질문을 되뇌어봅니다. ‘4차 산업혁명’ ‘초연결사회’ 등 거창한 혁신의 시대에 노동자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열심히 일해도 사는 게 팍팍하다는 노동자들은 어쩌면 더 작아진 것은 아닐까요?

깃발과 구호, 통계와 정책으로 살필 수 없는 날것의 모순을 <한겨레> 기자가 온몸으로 물었습니다. 더 낮게 웅크려(orz) 왜소해진 우리, 노동자의 삶을 ‘노동orz’가 정밀화로 그려냅니다. 첫번째 장면은 경기·인천 지역의 제조업 현장입니다.

‘탓 탓 탓… 탓 탓 탓… 탓 탓 탓….’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기계는 시트지가 들어있는 마스크팩 봉투에 에센스를 채워 넣고 밀봉해 컨베이어 벨트 위에 ‘탓’하고 떨어뜨린다. 1초가 안 되는 시간마다 마스크팩 세 개가 차례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작업대 위로 떨어진다. 1분마다 70여개의 마스크팩이 시차를 두고 작업대 위로 쏟아지는 셈이다. 작업대 앞에 앉아 제품이 제대로 밀봉됐는지, 유통기한은 선명히 찍혔는지, 정품 보증 스티커는 제 자리에 붙었는지 검사하는 게 내 일이었다. 기계를 보조해 불량품을 솎아내는 일이다.

지난 2월과 3월 경기도·인천 지역을 떠돌며 화장품 제조업과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업체 주야맞교대 노동자로 살았다. 주야맞교대는 두 개 조가 하루 12시간씩 번갈아 일한다. 주간조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일하는데 보통 잔업을 더해 오후 8시30분에 공장을 나섰다. 야간조는 오후8시30분 일을 시작해 잔업을 포함하면 다음날 오전 8시에 퇴근한다. 2주일마다 낮과 밤을 통째로 맞바꾸는 셈이다.

인천 지역에서 주야맞교대 일자리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 구인·구직 사이트에 ‘주야2교대’를 검색하니 300여건의 구인공고가 떴고 그중 하나를 골랐다. ‘상여100%, 주야2교대, 마스크팩 포장 사원 모집.’ 해당 파견업체 전화를 건 뒤 1시간30분 만에 면접을 보러 갔고 18분 만에 면접이 끝났다. 7530원의 최저시급을 받는 일자리였지만 지원자는 많았다. 머뭇거릴 틈 없이 모든 과정은 속전속결이었다. 2시간이 못 돼 화장품 업체 파견 노동자가 되었다. 파견 노동자로 한 달 가까이 출근 도장을 찍은 화장품 업체는 마스크팩과 기초 화장품을 만드는 중견기업이었다. 인천에서 ‘화장품 공장’의 ‘검사·포장 업무’는 특별한 기술 없는 여성 노동자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였다.

야간조로 처음 출근한 지난 3월5일 저녁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에 올라섰다. 누군가는 저녁 퇴근길의 피로를 달래며 동료와 직장 상사 뒷담화를 나눴고, 누군가는 전화로 저녁 약속 장소를 확인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인천 1호선의 한 지하철역 5번 출구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네온사인 불빛이 수놓은 밤 아래 통근버스가 정차했다. “좀 잤어?”, “오늘 진짜 한숨도 못 잤어요.” 대학생 정아(25·이하 모두 가명)와 잡담을 하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달린 텔레비전엔 저녁 7시15분부터 방영하는 드라마가 한창이었다. 버스는 인천 시내를 이곳저곳 훑고는 어둠이 내리앉은 공단 안으로 들어섰다.

멱살 잡고 끌고가는 컨베이어 벨트 주·야간 노동자가 바통 터치하는 교대시간이 되면 7평(23㎡) 남짓한 탈의실이 작업복을 벗고 입는 ‘언니(동료를 부르는 일반적 호칭)’들로 북적였다. 까만 줄무늬가 그려진 파란색 ‘제전복’을 입고 위생캡에 마스크, 안전화까지 착용하면 준비 완료다. 탈의실을 지나 작업장으로 들어서면 조장 언니 주도로 5분여의 조회시간이 이어졌다. 기계 소음을 뚫고 지시사항을 전달하느라 조장 언니의 목소리는 항상 쇳소리처럼 날카롭고 높았다. 오전이든 오후든 8시30분 정각이 되면 기계는 ‘철컹’하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20여대의 기계 중 9호기 혹은 11호기를 보조하는 게 내 일이었다.

2월27일 첫 출근날, 11호기 앞에 앉았다. 검사는 눈으로만 하지 않는다. 마스크팩을 그러모은 뒤 이리저리 돌려보고 내용물이 터져 나오지 않는지 몸의 무게를 실어 팔뚝으로 ‘뿌직’ 소리가 날 때까지 눌러야 한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10여개의 마스크팩을 포개어 한꺼번에 검사하는데, 라벨은 제자리에 붙었는지(라벨불량), 마스크팩이 제대로 밀봉됐는지(실링불량) 등 10여가지 항목을 10여초 안에 검사해야 했다. 불량은 따로 빼두고 양품은 350개들이 상자에 2열로 차곡차곡 쌓았다. 같은 동작을 2500여번 반복해 3만여개 마스크팩을 검사하면 하루가 끝났다.

두 손에 든 10여개의 마스크팩의 검사를 마치지 못했는데 컨베이어 벨트 위로 마스크팩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검사를 기다리던 제품들이 산더미를 이루다 작업대 밖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진 마스크팩을 주워담는 순간에도 마스크팩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작업대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밀린 제품을 한쪽 박스에 몰래 치워뒀다. 기계를 만지던 언니의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다. 작업복 상의가 땀으로 흥건해졌다.

기계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손에 든 마스크팩의 검사도 다 끝내지 못했는데 기계는 독촉하듯 새 마스크팩을 컨베이어 벨트 위로 토해냈다. 자세 고칠 틈도, 간지러운 코를 긁을 틈도 없다. 들리지 않게 누굴 향한지 모를 저주를 내뱉었다. “망해라, 다 망해라.”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라고 느낀 순간이다. 몇 번이고 기계가 멈춘 듯 기계 소음이 잦아드는 착각에 시달렸다.

이날 함께 첫 출근한 40대 파견 노동자 두 명이 점심을 먹고선 사라졌다. “숨도 못 쉬겠어. 검사할 건 또 좀 많아? 오래 다닌 사람들도 겨우 따라가던데.” 이튿날 친구 손을 잡고 온 2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명도 자취를 감췄다. 생리가 터진 것 같은데 화장실에 가겠다는 말을 차마 못했다는 23살 여성도 다음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3일은 일해야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위법하지만 암묵적인 룰’도 이들을 붙잡진 못했다. 일주일 새 그만둔 이들을 세어보다가 그만뒀다. 빈자리가 표날 새 없이 금방 채워졌기 때문이다.

<12시간 주야 맞교대…철야 땐 속절없이 고개가 꼬꾸라졌다> 기사로 이어집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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