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와 편의점, 피씨(PC)방 업주 등으로 꾸려진 소상공인연합회가 ‘최저임금 불복종’을 선언했다. 5인 미만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곧 나오게 될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취지다. 올해 시급 7530원의 최저임금이 내년 이후 얼마로 오르게 될지는, 13일 오후 5시 현재 확정되지 않았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이날 오후 <한겨레>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최저임금 차등적용 여부를 논의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회의에 참여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며 최저임금위원회의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 심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또 최 회장은 “최저임금을 올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 소상공인 대책을 마련한 뒤 올리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저임금 불복종 선언이란.
“모라토리엄 선언, 최저임금 불복종 선언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을 인정할 수 없으니, 업소 형편에 따라 (시급) 1만원이든 6천원이든 우리 방식의 ‘노사협상’을 통해 약속된 임금을 주겠다는 취지다. 노동자한테 임금을 안 주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오늘 결정될 텐데,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 안 들어갈 건가.
“지금 들어가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법리적으로는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이 구속력을 갖겠지만, 사실 그 취지는 노사가 위원회에서 합의하라는 것 아닌가. 물론 노사간 의견이 항상 충돌하니, 공익위원이 결정할 때가 많은데 그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것처럼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에 관한 결정을 너무 쉽게 해버렸다.”
-차등적용이 이뤄지지 않아 최저임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가.
“조금 잘못 알려진 게 있다. 우리는 최저임금 동결, 혹은 더 나아가 삭감을 주장해본 적이 없다. 우리 소상공인과 노동자는 가족과 마찬가지다. 손님이 많으면 함께 고생하고, 손님이 없으면 같이 노는 거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아르바이트 월급을 많이 줄 수 있어야 내가 행복한 거다. 그런데 지금 많은 소상공인은 24시간 일해도 최저임금조차 못 준다는 게 문제다. 많은 소상공인의 최저임금 미만율이 지금도 25% 정도 되는데, 이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최저임금을 올리라는 거다.”
2017년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 가운데 최저임금도 못받는 노동자 비율(최저임금 미만율)은 13.3%에 이른다. 이 비율은 업종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소상공인이 많이 몰린 숙박음식업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30%를 웃돈다. 규모가 영세한 5인 미만 사업장도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
이에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0일 제12차 전원회의를 열어 소상공인 비중이 80%인 업종 등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방안을 두고 표결을 벌였다. 공익위원 9명과 한국노총 노동자위원 5명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업종별 차등적용이 ‘노동자의 생계보장’이라는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속한 사용자위원들은 이에 반발해 11일일부터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그게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인가.
“그렇다. 최저임금 수준이 높아져도 폐업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해달라는 건데,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런 논의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인상폭만 심의한다는 건 그냥 우리한테 범법자나 되라는 것 아닌가.”
-내년도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최저임금 인상폭이 예상했던 수준을 넘지 않는다면, 어렵더라도 견뎌보겠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이와 달리 만약 10% 넘게 오른다면 절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소상공인 규모도 커질 수 있다. 우리 연합회는 그 동력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 말은 인상폭이 10% 미만이라면, 소상공인의 분노도 잦아들 수 있다는 뜻인가.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소상공인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라고 여겨지면, 분노의 세력화를 꾀하는 동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해 7월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중소사업자단체와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박수치고 있다. 왼쪽부터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김 위원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최저임금 인상과 인건비 탓만은 아니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에 자리잡은 자영업자한테는 높은 상가 임대료도 큰 골칫거리다. 여기에 신용카드 수수료와 프랜차이즈 가맹본사에 내는 로열티(가맹료) 등도 마찬가지로 문제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흔히 ‘을과 을의 싸움’으로 비춰지는데,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 건물주 등 한국 사회의 숱한 ‘갑’은 그 이면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들 대기업 중심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가 지난 9일 수년만에 모여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을 요구하며 공동 기자회견을 연 것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한 일이다. 이들이 업종별 차등적용을 요구한 표면적 이유는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어려운 형편 탓이다. 쉽게 말해서 주된 ‘최저임금 사업장’인 영세·소상공인의 낮은 지불능력을 고려해 업종별로 최저임금 수준을 다르게 정하자는 주장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경제 6단체 기자회견에 왜 빠졌나. 연합회와 비슷하게 ‘업종별 차등적용’을 주장했는데.
“일부러 빠졌다. 사실 전경련이나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은 대기업 중심의 단체다. ‘소상공인 보호’를 앞에 내세우지만 그들부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
-함께 하자는 제안이 있었나.
“당연히 있었다. 우리한테 끝까지 함께 하자고 했다.”
-어느 쪽에서 그랬나.
“중소기업중앙회와 경총에서 그랬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 전경련이 오고 상공회의소, 무역협회가 모두 온다고 해서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우리 대기업이 만약 유럽처럼 중소기업과 영업이익을 함께 나눴다면, 중소기업의 일자리도 크게 늘었을 것이다. 우리 대기업은 임금이 오르든말든 신경도 안 쓴다. 어차피 하청업체한테 인건비 부담을 전가하면 그만 아닌가.”
-경제 6단체가 업종별 차등적용을 요구하는 의도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그 사람들이 겉으로 소상공인 생존권을 명분으로 내세우는데, 우리가 그걸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다. 속내까지는 드러나지 않으니. 다만 전경련이나 대기업이 소상공인을 앞세워 기자회견을 하려면, 스스로 먼저 했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스스로 공정한 룰 속에서 중소기업의 이익을 수탈하지 않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고통분담을 외면해온 것은 대기업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그런 선제적 조처는 하지 않고 말로만 소상공인 보호를 앞세우니 최저임금 인상을 막으려고 소상공인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앞서 말했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높은 임금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거다. 대기업은 그런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주체다. 말로만 ‘소상공인 보호’를 외칠 일이 아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단체가 모여 외친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요구의 배경이 최저임금 인상 반대에 있다면, 소상공인연합회의 ‘5인 미만 사업장 차등적용’ 요구는 결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 최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소상공인이 아르바이트 노동자한테 좀더 많은 임금을 줄 수 있도록, 자영업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를 수 차례 강조했다.
이런 요구는 자연스레 정부를 향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최저임금 16.4% 인상을 결정한 뒤 94개의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을 내놓았는데, 이 가운데 20개는 입법 과정도 밟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소상공인의 반발, 마치 ‘을과 을’이 싸우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최근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출범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 대책을 많이 내놓았다. 상가 임대료 개선 방안이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
“너무 느리다. 말로는 대기업과의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등을 약속하는데 제대로 된 게 뭐가 있나. 처음에는 집권한 뒤 얼마 안 되다보니 야당 탓을 했는데 언제까지 야당 탓만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와 여당이 그러고 있으면 소상공인도 야당만 탓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이건 웃기잖나. 여당이나 정부가 강한 의지를 보이거나 소상공인과 소통이라도 해야 하는데, 소통도 없이 마치 우리가 야당 색깔인 것처럼 몰아가고 프레임에 가둬버리니 우리는 더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일 때는 그렇지 않았나.
“엄청나게 많이 소통했다. 이전 정부 때 우리가 무슨 혜택을 봤나. 지금보다 더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상가임대차보호법, 카드 수수료 이런 것들이 애초 정부가 약속한 것처럼 개선이 됐더라면.
“우리가 뭔가 삶의 희망을 얻었을 거다. 우리가 충분히 계산적이지는 않지만 자영업 환경이 분명 좋아졌을 것이다.”
-그런 개혁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소상공인이 최저임금 불복종 선언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란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맞는 말이다. 임금이야 어차피 나가는 돈인데, 지출이 증가하더라도 다른 한쪽에서 줄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된다. 그게 카드 수수료가 됐든 상가 임대료가 됐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게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지금 당장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라도 줄이자고 최저임금에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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