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9년 만에 확인된 쌍용차 비밀문서 ②
9년 만에 확인된 쌍용차 비밀문서 ②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지난 10일 경찰청(서울시 서대문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사쪽 공조 정황을 담은 ‘노조 와해 비밀문건’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8월4일 <한겨레>는 2009년 정리해고 때 작성·실행된 쌍용자동차의 ‘노조 와해’ 비밀문서 100여건을 파업 종료 9년 만에 처음 입수해 토요판 커버스토리로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구조조정’ 압박 이후 쌍용차가 파업 참가자들의 ‘내부 붕괴’를 유도하고 경찰·검찰·노동부 등 정부 부처와 공조를 모색한 정황들이 각종 ‘계획’과 ‘방안’의 형태로 확인됐다. 이번 기사에선 쌍용차가 “자발적이었다”고 설명해온 직원·가족들의 ‘공권력 투입 촉구 활동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실행됐는지 전한다.
큰 충돌 불러 경찰 진압 명분
제공한 공장 진입 시도들과
파업 불참한 직원 가족들의
공권력 즉각 투입 요구 활동들 줄곧 “자발적 활동” 밝혀온 사쪽
문건서 확인되는 개입·주도 정황
공장진입팀 편성 등 사전 계획
TFT 만들어 가족 모임 조직·지원
“우익 활용” “과감한 단협 개정”도 “희망퇴직 1660명(관리직 273명·기능직 1331명·촉탁 56명), 무급휴직 220명 및 분사 56명(추가 무급휴직 161명·분사 205명·영업 전직 100명). 구속자 64명(외부인 11명), 형사소송 11차(204명), 민사소송 5회(110억. 집행부 10억·조합원 100억).” 2009년 8월10일 쌍용자동차는 ‘인력 구조조정 결과 보고서’를 만들어 “현황”을 집계했다. 경찰 특공대의 조립공장 옥상 폭력진압(6월27일 쌍용차 30번째 사망자가 된 고 김주중씨도 이날 체포·<한겨레> 6월30일 12면)으로 거점을 잃은 노조가 이튿날 공장 점거파업을 끝낸(8월6일) 지 나흘만이었다. 경찰·검찰·노동부 등과의 공조 정황을 담은 ‘노조 와해’ 비밀문서들(<한겨레> 8월4일 커버스토리)을 주도적으로 생산한 노사협력팀이 작성했다. __________
“자발적 동참”의 뒷모습 문서 파일은 7월20일 처음 생성(8월12일 최종 수정)됐다. 경찰이 “노조의 불법 폭력행위를 해소하기 위해 공장 내에 병력을 전진 배치”(경기경찰청 <쌍용자동차사태 백서> 77쪽)한 날이었다. 사쪽도 “농성자를 압박하기 위해 단수 및 가스차단 조치”(백서 같은 쪽)를 단행했다. 이 문건은 구조조정 과정 전반을 “종합평가” 했다. “긍정적인 면”의 하나로 “전 임직원의 한마음 한뜻으로 회사 살리기에 동참”을 꼽았다. “전 임직원의 주인의식 및 애사심을 발휘하는 등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발적인 동참에 내부 노동활동의 새로운 변화가 예상됨.” 회사가 자평한 “자발적인 동참”은 사전에 준비된 계획에 따라 진행됐다. 파업 종료 9년 만에 <한겨레>가 입수·보도한 쌍용차의 내부 문건들을 모아 보면 ‘자발성’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들이 펼쳐진다.
2009년 8월3일 쌍용차 경비용역(등에 ‘시큐리티’가 적힌 검은 복장)과 경찰, 회사 쪽 직원들이 뒤섞여 파업 노동자들과 대치하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공권력 투입 촉구 집회가 열리기까지 집회 5일 전 회사는 ‘쌍용자동차 회생 가족 비상대책 협의회 구성(안)’이란 문건을 생산했다. 이날(7월2일) 열린 협의회 구성 결과와 결성 배경, 협의회 임원들 추천 명부(해당 임원들과 가족인 직원 명단과 연락처), 업무분장과 향후 활동계획, 회사 지원 조직과 담당 직원들의 이름이 담겼다. 문건은 “계속되는 옥쇄파업”으로 공장이 “외부세력 투쟁 거점”이 되고 있다며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 참여”를 독려했다. “(파업 조합원들이) 지게차로 동료를 덮치는 동영상”과 “무자비한 쇠파이프 동영상”도 첨부됐다. 쌍용차는 “협의회장”과 “총무” 아래로 5개 또는 9개의 “그룹”(남편 등의 소속 부서별 편성)을 둔 2개 안을 제시했다. 그룹마다 회사 차장·과장급의 “코디”(개인 연락처 기재)를 배치했다. 모임을 뒷받침하는 “회사 지원 TFT”도 조직했다. “홍보” “총무” “노무” 등 분야별 담당을 정한 뒤 회사 총괄부장이 팀 전체를 지휘했다.
2009년 8월5일 쌍용차 조립공장 옥상에서 경찰 특공대의 방패와 곤봉에 찍히며 체포된 지 9년 만(6월27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주중씨의 분향소가 지난 7월3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차려지고 있다. 박종식 기자
외부 단체와의 “단절 명문화” “민주노총, 금속노조, 외부 단체들이 개입된 이번 사태를 더욱 더 힘들게 한 조합원들의 불만으로 향후 불합리한 노사관행이 척결되고 안정적인 노사관계 유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됨.” 사쪽의 ‘인력 구조조정 결과 보고서’는 “불합리한 노사관행 척결”도 정리해고의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했다. ‘외부세력’은 회사와 경찰이 되풀이해 지목한 ‘사태 악화’의 주요인 중 하나였다. 2009년 7월11일 경찰은 “불법파업 중인 노조에 대한 대응수위를 높이기 위한 조처”(백서 276쪽)로 공장 4개 출입문을 장악했다. 몇 시간 뒤 회사는 경찰·용역경비와 역할을 분담해 출입문을 지킬 ‘방어조’ 명단을 직원들에게 메일로 보냈다. 다른 메일에선 “우익단체를 활용한 대국민 홍보, 당사 입장 호소, 대정부 압력(자유민주주의)” 전략을 적었다. “민조총(‘민노총’의 오타로 보임), 금속노조의 대응세력으로 활용”한다는 방안이었다. 뉴라이트, 재향군인회, 자유민주연합, 월남전 참전 전우회, 경총, 전경련, 특수임무수행자회 등 20여개 단체 이름이 나열됐다. 파업을 “좌파 외부단체”의 “현 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규정(6월11일 ‘구조조정대상자(976명) 대응방안’)했던 쌍용차 스스로가 “우익단체”를 이용해 이념대결로 몰아갔다. “우익단체”는 나흘 전 여의도에서도 등장했다. 7월7일 집회에서 뉴라이트 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좌파노동세력이 쌍용차 문제를 노동계 투쟁의 전초기지로 삼아 정부 흔들기에 나섰다”며 사쪽의 인식과 일치하는 발언을 했다. 경찰도 ‘노조 붕괴’를 목표로 파업 진압에 임했다. “쌍용차 사태의 핵심”을 “그 기저에 강성노조가 버티고 있다는 점”으로 요약(백서 70쪽)했다. 경찰이 힘쓴 “농성 이탈자 유도와 농성 와해를 위한 (언론) 홍보활동”은 사쪽이 ‘구조조정대상자(976명) 대응방안’에서 밝힌 전략과도 닮았다. “옥쇄파업 거점에서 축출함으로써 옥쇄파업 참여 인원의 내부 붕괴를 통한 현 사태의 해결.” ‘인력 구조조정 결과 보고서’는 “향후과제”도 제시했다. “불합리한 단협 개정 및 올바른 노사문화와 기본과 원칙 정립 필요.” 파업 종료 12일 뒤(8월18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주관한 쌍용차와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박영태 쌍용차 공동관리인과 장관 사이에 ‘위험한 대화’가 오갔다. “(박영태) 민노총 탈퇴(*21일 뒤 현실화) 뿐 아니라 노사규약도 실질적 내용을 바꿔보겠다. 마무리를 해보겠다. (이윤호) 단체협약 내용도 불합리한 게 많은 것 같다. (박영태) 법이 좀 앞서 있는 측면이 있다. 잘못돼 있는 협약에 대해서는 발췌를 해놨고 법률 검토도 해왔다. 특히 노조가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는 조항과 관련해서는 과감히 빼는 것을 해볼 생각이다.”(<시비에스(CBS)> 8월19일 기사 ‘이윤호 지식경제부, 쌍용차 협력업체 중진공 자금 지원 검토’) 두 달여 전 쌍용차는 ‘노사관계 현실 및 문제점’(6월22일)이란 제목의 문서를 작성했다. “노동조합의 주기적인 파업 및 병폐”에 따른 손실금액을 산정하고 “(생산계획, 라인운영, 전환배치 등이 노사합의 사항이어서) 노조가 사실상 생산현장의 통제권 행사”하고 있다고 썼다. 장관 간담회 9개월 뒤(2010년 5월19일) 쌍용차는 보도자료를 발표한다. “불합리한 노사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며 임·단협 합의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쌍용차 노동조합은 국내 완성차 업계 최초로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신규 집행부 출범 이후 규약 개정을 통해 외부 단체와의 단절을 명문화했으며….” 그렇게 ‘인력 구조조정 결과 보고서’가 제시한 “향후과제”도 완성됐다. ‘노조 와해 비밀문서’ 보도 뒤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0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사쪽 공조의 진실 확인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문건을 접수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는 회사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쌍용차 정리해고와 진압 과정을 조사해온 위원회는 이르면 다음 주 결과를 발표한다. 18일엔 ‘국가폭력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범국민대회가 고 김주중씨의 분향소(중구 대한문 앞) 맞은편 시청광장에서 열린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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