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이 연 ‘2018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이들은 “노동부 중대재해 발생보고 자료를 기반으로 살인기업을 선정”하며 “기업의 책임과 처벌 강화를 위해 매년 산재사망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해 노동절 휴일이었던 5월1일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의 해양설비 건조현장에서 크레인들끼리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6명의 하청 노동자가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7명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다. 두 대의 크레인은 삼성중공업과 하청업체 대흥기업 직원들이 각각 운전 중이었다.
석 달여 뒤인 8월20일엔 경남 창원 에스티엑스조선해양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선박 건조의 마무리 단계에서 스프레이로 내부 도장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환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작업 중이던 도장공 4명이 모두 숨졌다.
중대재해가 잇따르자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예방대책을 내놓고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위원장으로, 민간전문가와 조선업 종사경력자, 노·사단체 추천 전문가 등 16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위원회는 6일 그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근원적 제도개선 사항을 담은 사고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출범 9개월 만이다. 위원회는 “사고의 기술 원인과 원·하청 계약관행 등에 대한 현장조사와 함께 대국민 공청회, 국외 조선업계의 재해예방 법·제도 등을 분석해 근원적인 제도개선 사항을 도출했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중대재해의 원인을 크게 4가지로 꼽았다. ‘안전을 위배하는 무리한 공정 진행’, ‘안전 책임감 없는 재하도급의 확대’, ‘불명확한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과 역할’, ‘하청노동자의 과도한 증가’다. 위원회는 조선업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이 근원적 원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며, 기존 사고예방 대책과 병행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이에 따라 다단계 재하도급을 기본적으로 금지하고,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허용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재하도급을 받은 재수급인은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위원회는 강조했다.
또 무리한 공정 진행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무리한 공정진행은 장시간 노동 등 노동 강도를 과도하게 만들고, 크레인사고를 부른 ‘혼재작업’을 유발하며, 업체 간이나 작업자 간 정보공유나 소통부재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아울러 조선업 안전관리 법제도를 개선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원청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감독 및 보호의무 강화와 하청 업체의 산업안전보건역량 강화 지원, 하청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역량 강화, ‘산업안전보건 친화적’인 원하청 도급계약 체결 의무화 등의 내용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반영해야한다고 했다.
고용형태와 관련해선 사내 협력업체를 활용할 땐 1차 협력업체를 정상기업으로 육성해야하며, 조선업의 장기적 경쟁력 확보와 숙련인력 양성, 안전관리를 위해 ‘조선기능인 자격제도’를 도입해야한다고 주문했다. 현장에 풍부한 경험과 기량을 갖춘 인력이 배치되면 그만큼 중대재해가 줄어들 것이란 기대다.
배규식 위원장은 “이번에 제출한 사고조사보고서가 조선업종의 중대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정책자료로 적극 활용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위원회의 보고서는 고용부와 안전보건공단 누리집을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공개된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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