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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아빠 파업했다고 애먼 딸이 시청 어린이집에서 쫓겨났다

등록 2018-11-05 11:18수정 2018-11-05 20:12

14년 전 공무원에서 해직된 윤진원씨 청와대 앞에서 농성

전국공무원노조 설립 앞장서다 해직·파면된 136명
14년간 복직 투쟁…3명 사망·25명 정년퇴직 연령 넘어
노조 원직복직안-정부 신규채용안 ‘평행선’ 교착상태
노조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복직 약속 지켜야”
청와대 앞 무기한 노숙농성…9일 대규모 연가 투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1월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무원 해직자 원직 복직 특별법 제정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 이행 촉구 결의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 방향으로 삼보일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1월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무원 해직자 원직 복직 특별법 제정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 이행 촉구 결의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 방향으로 삼보일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4년 전 경기도 광명시 공무원인 윤진원(52)씨의 딸은 시청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윤씨가 해고되면서 학기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딸은 어린이집에서 쫓겨났다. “딸이 ‘아빠, 왜 나만 내일부터 어린이집 안 가?’라고 물었을 때 가슴이 먹먹했죠. 그 애가 지금 고3 수험생이 됐습니다.”

지난달 31일 낮 12시 청와대 앞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 노숙농성장 앞에서 만난 윤씨는 2004년 11월 공무원노조 총파업에 참여했다가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직당한 뒤 14년간 ‘해직공무원’으로 살고 있다. 윤씨처럼 2002년 출범 이후 2016년까지 공무원노조 활동을 이유로 파면·해임됐다가 지금껏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은 모두 136명이다. 이들 대부분(95명)은 14년 전 윤씨와 함께 총파업에 나섰던 이들이다. 공무원노조는 당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이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단결권, 단체교섭권 등을 크게 제한한다며 대규모 연가 투쟁에 나선 바 있다.

공무원들이 낸 연가는 모두 불허됐고 ‘무단결근한 공무원은 파업 참가자로 간주해 즉시 징계하겠다’는 정부의 경고는 곧 현실이 됐다. ‘헌법에 나와 있는 노동삼권을 쟁취하기 위한 파업이었고, 하루 결근했다고 직장에서 쫓아내는 것은 법과 상식을 벗어난 지나친 조처’라는 비판이 잇따르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윤씨의 딸이 시청 직원 자녀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더는 못 가게 된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14년간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해직공무원들이 10월31일 청와대 앞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노숙농성장에 모여 앉아 있다.
14년간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해직공무원들이 10월31일 청와대 앞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노숙농성장에 모여 앉아 있다.
복직하지 못한 136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해직 당시 모두 노조 간부였다는 점이다. 지부 임원 77명, 본부 임원 31명, 중앙 임원 28명 등이다. 윤씨 역시 2004년 공무원노조 광명시지부 사무국장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소청(공무원이 징계처분에 이의를 제기하면 이를 심사하고 결정하는 행정심판) 등을 거쳐 먼저 복직한 394명과 견주어 얼마나 더 중한 ‘죄’를 저질렀던 것일까. 김주업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과거 소청 판결문을 찾아보니, 노조를 탈퇴했거나 노조를 비판하는 경우 개선의 정이 있다며 구제하기도 했다”며 “끝까지 노조 활동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지금껏 해직자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지난 9월 국회 토론회 발제문에서 “공무원 노조 운동은 임금·노동조건의 개선보다 노동기본권 확보가 직접적 과제였다”며 “공무원 노조 운동은 근본적으로 민주화 운동”이라고 짚었다.

136명은 이제 133명이 됐다. 3명은 이미 사망했다. 133명 가운데 8명은 투병 중이다. 25명은 정년퇴직할 나이(60살)를 넘겼다. 올해부터 2021년까지 정년을 맞이하는 사람은 41명에 이른다. ‘해직공무원’으로 산 시간이 ‘현직’으로 지낸 시간보다 길어진 김은환(51) 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회복투) 위원장이 조급해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해고자들의 우울증도 심각한 상황이다. 노조에서 생계비를 지원하지만 해고의 고통은 경제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김은환 회복투 위원장은 “어디 둥지 틀 데도 없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갈 데가 없는 하루가 14년 동안 반복되는 거다. 전망이 안 보인다는 게 가장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2016년 공무원노조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7명 가운데 53%(30명)가 상담·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한 우울 증상을 보였다. 나이를 ‘56살 이상’으로 좁히면 비율은 63%까지 올라갔다. 136명 가운데 공무원연금 수급이 가능한 사람은 13명 정도에 그친다. 불투명한 복직 전망과 노후 걱정이 이들을 괴롭히는 까닭이다. “지난주 해직공무원들을 모아 집단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그때 상담사가 그러더라. ‘사고(자살) 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김은환 위원장)

지난달 31일 청와대 앞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노숙농성장의 모습. 해직공무원의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8월21일부터 시작한 농성은 어느새 70일이 지났다.
지난달 31일 청와대 앞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노숙농성장의 모습. 해직공무원의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8월21일부터 시작한 농성은 어느새 70일이 지났다.
‘해직공무원’들이 원하는 건 명예회복이다. 충북 진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해직된 장성유(54)씨는 복직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뇌물·횡령으로 파면·해임된 사람들과 다르지 않으냐”며 “노조 활동에 앞장섰다고 해고됐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아무도 노조 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 역시 “과거에는 시장이 자기 마음대로 예산을 편성해서 쓸 수 있었다. 선심성 예산, 전시성 행사가 넘쳐났다. 공무원노조가 생기면서 이를 견제할 수 있게 됐다”며 “해직공무원들이 돌아간다면 공직사회 변화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환 위원장은 “그때 우리의 싸움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며 “해직자 복직은 공무원노조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전에 밝힌 약속과 맥을 같이한다. 문 대통령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10월20일 공무원노조 총회에 나와 “노조 설립 과정에서 해고되거나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활동하다가 해고된 분들의 복직과 사면복권이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19대 대선 때도 정책질의서 답변에서 ‘해직공무원 전원 일괄 복직과 사면복권’에 찬성했다는 게 공무원노조의 설명이다. 공무원노조는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아 설립신고증을 빼앗긴 지 9년 만인 올해 3월 법내 노조로 다시 돌아왔다. 공무원노조의 다음 1순위 과제는 해고자 복직 문제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해직자 복직은 문 대통령에게 ‘결자해지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중기 교수는 “2004년 노무현 정부가 허용한 공무원노조법은 ‘권리보장법’이라기보다 자유로운 단결권조차 인정하지 않은 ‘통제법’에 가까운 것이었다”며 “문재인 정부의 해고자 복직 약속은 노무현 정부의 실책을 반성하고 이를 원상회복하겠다는 역사적 반성의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해직공무원들은 현 정부에 대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고 토로한다. “당·정·청이 ‘핑퐁게임’을 하며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해직공무원 최원자씨)는 말까지 나온다. 왜 그럴까. ‘복직 방식’에서 정부와 공무원노조의 입장차가 선명한 탓이다. 정부는 당시 징계가 적법했으므로 복직은 수용하되, 해직 기간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은 특별채용(신규채용)안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반면 공무원노조는 당시 징계를 모두 취소하고 해직 기간의 임금·호봉·연금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원직 복직’이다. 현 여성가족부 장관인 진선미 의원이 2017년 1월에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은환 위원장은 “결국 청와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누구도 이 문제를 책임지고 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노조는 오는 9일 조합원 5천명이 참가하는 총궐기대회를 열고 해직자 원직 복직, 노동삼권 보장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평일 연가 투쟁으로는 최대 규모다. 지난 8월부터 진행 중인 청와대 앞 노숙농성은 해직자 원직 복직 때까지 무기한으로 진행한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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