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회사 쪽의 노조 파괴에 개입한 현대자동차를 처벌해달라며 서울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벌였다. 금속노조 제공
8년에 걸친 회사 쪽의 노동조합 탄압으로 정신질환을 겪은 유성기업 노동자에 대해 대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유성기업에선 지금까지 9명의 노동자가 정신질환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는데,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아산공장 조합원 박아무개씨의 정신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유성기업 회사 쪽의 상고에 대해 지난달 27일 대법원이 이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지회는 “법원은 이미 1·2심에서 모두 박 조합원의 정신건강 질병이 회사 쪽의 노조 탄압 때문이란 점을 인정했지만 회사 쪽이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소를 제기해 1심 판결을 받은 지 2년7개월 만에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확정한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의 지난 7월 판결 내용을 보면, 법원은 회사 쪽의 노조 탄압과 차별이 “근로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여지가 크며, 박아무개 조합원 등은 양심의 자유와 경제적 압박 사이에서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법원은 “박아무개 조합원의 정신적 스트레스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정상적인 업무 수행 중에 경험한 노사·노노 갈등과, 여기에 원고(유성기업 사측)의 부당한 경제적 압박과 강화된 감시와 통제가 더해져 비롯된 것”이라며 “상병의 발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결했다.
유성기업 회사 쪽은 2011년 9월 이후 파업에서 복귀한 노동자들을 징계했는데, 복귀 시기에 35점이라는 “과도한 배점”(서울고법 판결)을 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에게 해고(27명), 출근정지(42명) 등 더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 반면 회사 쪽이 주도해 만든 제2노조 조합원들에게 내려진 가장 무거운 징계는 정직(2명)이었다. 회사쪽은 이후 2013년 제2노조에 ‘특별생산 기여금’을 지급하고 유성지회에 성과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차별행위를 지속했고, 지회 조합원들을 잔업과 특근에서도 배제했다.
지회는 “고용노동부가 2011년 불법적인 직장폐쇄만 막았어도, 혹은 현장 복귀 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제대로 근로감독만 했어도 사태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재갑 고용부 장관이 3일 유성기업 폭력사태를 언급하며 ‘엄정 조치’ 방침을 내놓은 것에 대해 “노동부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의심케 한다.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1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회사 쪽의 노조 파괴에 개입한 현대자동차를 처벌해달라며 서울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행진 중인 모습. 금속노조 제공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3월 고 한광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조합원들의 정신적 상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유성기업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했고 이를 대책과 함께 발표하겠다고 한 바 있다. 2012년 이후 유성기업지회 조합들만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벌인 충남인권센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조합원 중 괴롭힘을 경험한 이가 넷 중 셋인 67.6%를 기록했고, 잠재적 스트레스군이 93%, 죽음에 이를 위험이 있는 고위험군이 2명이었다.
유성기업 회사 쪽은 정신건강 문제로 산재 승인을 받은 조합원 9명 가운데 공소시효가 지난 1명을 제외하고, 이미 숨진 한씨를 포함한 7명에 대해 산재 승인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회 쪽은 “한광호 열사에 대해선 유족급여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까지 할 정도로 회사가 망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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