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분향소에서 어머니 김미숙씨가 영정을 안고 오열하고 있다. 김씨는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아들이 지내던 기숙사에서 발견한 택배 상자에서 용균이가 평소 갖고 싶어 하던 반지를 발견했다. 하루라도 더 살았으면 이 반지를 껴봤을 텐데…”라며 흐느꼈다. 김용균씨는 <반지의 제왕>을 좋아해 영화에 나오는 반지를 사달라고 어머니를 조르기도 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7일까지 최소 50명이 숨졌다. 24일 동안 하루 2명씩 목숨을 잃었다. 아주 평범한 나날이었다. 한 해 일어나는 산업재해 사망 사고가 이 기간에도 평균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에선 한 해 1천명가량이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하루에 2~3명씩이다.
17일 <한겨레>는 안전보건공단과 고용노동부를 통해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7일까지 숨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50명의 사례를 확인했다. 신고나 집계 누락 가능성을 고려하면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많을 것이다. 이 24일 동안 50명의 ‘김용균들’은 일터에서 연거푸 끼이고 깔리고 떨어져 숨졌다.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24)씨처럼 외롭게 쓰러졌지만, 이름조차 알려지기 어려운 ‘얼굴 없는 김용균들’이다. 그들 마지막 순간의 짧은 기록이다.
#11월14일 오후 5시50분 서울 마곡동 공사장
이날 공사장 잡역부 김아무개(61)씨는 생각지도 못한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 김씨는 오후 5시50분께 서울 마곡동 한 연구원 건물 공사장에서 1층 세미나실 천장 설치 공사를 하던 동료를 돕고 있었다. 김씨가 인근에 있던 에이(A)형 사다리를 밟고 올라서자 사다리가 흔들렸고, 김씨는 그만 균형을 잃고 떨어졌다. 추락 높이는 불과 1.5m였지만 타일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추락 뒤 바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치료 중 숨졌다. 그만 운이 나빠서가 아니다. 상당수 공사장 노동자들이 불과 2m 안팎의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다.
#11월17일 오전 10시 경기도 포천 선단동 공장
일용노동자 남아무개(44)씨가 폭발로 숨졌다. 포천 선단동의 한 금속공장에서 일하던 남씨는 이날 오전 10시께 도금설비를 해체하려 그라인더로 도금통의 철판을 잘랐는데, 갑자기 원인 모를 이유로 폭발이 일었다. 정신을 잃은 남씨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4시간 뒤 숨졌다.
#11월20일 오후 1시35분 부산 좌천동 물류터미널
부산의 이아무개(57)씨가 컨테이너에 깔려 숨지고 말았다. 부산 동구 좌천동 한 선박물류터미널에서 일하던 부두하역원 이씨는 이날 배 위에 올라 컨테이너 고정 장치 해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후 1시35분께 배에서 컨테이너를 내리던 40톤급 크레인의 철밧줄이 갑자기 풀렸고, 컨테이너가 이씨 머리 위로 떨어졌다.
#11월23일 오전 10시30분 충북 청주 공사장
충북 청주의 이아무개(53)씨 역시 4톤짜리 철구조물에 몸이 짓눌렸다. 이날 이씨는 청주 동남지구의 한 공동주택 신축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전 10시30분께 7m 높이에서 갱폼(이동식 거푸집)을 운반하던 타워크레인의 밧줄(슬링벨트)이 끊어졌고, 이씨는 갱폼과 화물트럭 사이에 몸이 끼이고 말았다. 이씨도 병원으로 이송돼 1시간여 만에 숨을 거뒀다.
<한겨레>가 확인한 50명 가운데엔 외국인이 1명이었고 하청노동자는 16명이었다. 나머진 원청에 속한 노동자들이다. 원청 소속이지만 위탁업무를 주로 하는 영세업체인 경우가 많았다.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혀 숨진 이들의 사고 원인도 우연이 아니다. 한국에서 산재 사망자들은 주로 떨어지고(지난해 기준 38.0%), 기계에 끼이고(10.6%), 부딪혀(10.4%) 숨진다. 한국의 사고사망 만인율(1만명당 명)은 0.71(2013년), 미국은 0.37, 독일 0.17, 영국 0.04(이상 2011년 기준) 수준이다. 한국이 영국의 18배인데, 이런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산재사망 노동자 수는 유럽연합의 5배,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1위이지만, 이들이 처한 위험한 작업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적다.
지난달 28일엔 이 기간 중 가장 많은 이들이 한번에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산 학장동에서 있었던 유독물질 중독 사고였는데, 폐수처리업체 직원들이 황화수소에 중독된 것이었다. 사고 나흘 뒤 이아무개(52)씨가 숨졌고 2주 뒤인 지난 12일 조아무개(48)씨가 숨졌다. 17일 오후엔 임아무개(38)씨마저 뇌 손상으로 숨을 거뒀다. 권아무개(42)씨는 아직 의식이 없다.
이들은 폐수처리업체 선양엔텍의 하수처리 장치 조작원들이다. 경찰은 이들이 회사 탱크로리로 입고된 폐수를 투입하는 과정에서 황화수소를 흡입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 업체에 폐수 처리를 맡긴 곳은 포스코 기술연구원 포항연구소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85조)을 보면, 인체에 해로운 ‘잔재물’은 노동자의 건강에 장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히 처리해야 하며, 이를 남에게 위탁할 땐 유해·위험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경찰은 이 ‘정보 제공’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확인 중이다.
고 김용균씨가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목숨을 구해줄 동료도 없이 석탄발전소의 컨베이어벨트를 돌아야 했던 것처럼, 산재는 안전장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타살’인 경우가 많다.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17일 성명에서 “노동자의 안전에 관한 사업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면 산재사망에 대한 형사처분의 하한형을 도입해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을 촉구했다.
김용균씨의 비극이 있기 전에 ‘김용균들’의 불행이 사회의 관심 밖에 있었던 것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지켜줄 산업안전보건법도 무관심 속에 놓여 있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바뀌는 건 1990년 이후 28년 만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원청 사업주가 안전조처를 해야 할 곳을 ‘일부 위험 장소’에서 ‘사업장 전체’로 넓히고, ‘위험 기계’를 쓰면 안전보건 조처를 해야 하는 의무를 원청에 지웠지만 국회에선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경영계 반대로 사업주에 대한 하한형(1년 이상)이 빠졌고, 위험작업 예외 조항도 신설됐지만 경총 등 경영계는 여전히 처벌이 과하고 자유계약 원칙에 위배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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