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베이어벨트 참변’ 김용균씨 어머니 인터뷰
“검은 얼굴로 돌아온 내 아들…
비참하게 내몬 세상 단죄하고 싶어”
“청와대로 행진했지만…”
대통령과 대화 요구 못 이뤄
엄마는 사고 현장을 둘러봤다
“무덤처럼 쌓인 탄 치우는 일
밤새도록 해도 못할 것 같아…
아들 동료들이 말해요
자기들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검은 얼굴로 돌아온 내 아들…
비참하게 내몬 세상 단죄하고 싶어”
“청와대로 행진했지만…”
대통령과 대화 요구 못 이뤄
엄마는 사고 현장을 둘러봤다
“무덤처럼 쌓인 탄 치우는 일
밤새도록 해도 못할 것 같아…
아들 동료들이 말해요
자기들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3일 오전 충남 태안군 보건의료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뒤 빈소 입구에 세워진 아들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태안/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왼쪽)씨와 지난해 제주도에서 취업 실습 중에 사망한 이민호군의 어머니 박정숙씨가 22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김용균 범국민추모제’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왜 힘드냐고 했더니 그냥 힘들대
더 자세히 물어보지도 못했어…
후회돼, 고생해봐야 한다는 말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일할 줄은” 우리 용균이같은 청년들 없게
“아들이 진짜 억울하게 죽었잖아요
내몰리고, 버림받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저같은 일 겪지 않게
자식들 안전한 일터 만들어야” 김용균씨는 지금 부모가 사는 구미에서 나고 자랐다. 용균씨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용균씨 아버지 김해기씨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큰 병원으로 가던 응급차 안에서 아버지는 “용균이 두고 어떻게 가지”라고 말하곤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며칠 만에 겨우 깨어났지만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그 뒤 7년째 어머니 김씨가 가장 구실을 해왔다. 결혼 뒤 귀농하며 진 빚에, 남편까지 쓰러지면서 살림은 더 팍팍해졌다. 세상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사이 아들 용균씨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구의 한 전문대로 진학했다. “입사 문이 좁으니 차라리 기술을 익히면 낫지 않겠나” 싶었다. 각종 학자금대출을 받고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녔다. 전기 관련 기술을 익히고 이런저런 자격증도 땄다. 졸업 뒤 군복무도 통신병으로 했다. 한전에 입사하겠다는 목표가 조금씩 분명해졌다. “환경이 그래서, 내몰려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용균이에게도”라고 어머니 김씨는 말했다. 아들은 첫 월급을 받아 홍삼과 영양제, 비타민 화장품을 사서 부모에게 왔다. 열심히 일하면 형편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그 꿈이 무너진 자리에서 김씨는 “남은 청년들을 구하고 싶다”고 거듭 말해왔다. “자식이 이렇게 비참하게 먼저 죽는 아픔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우리 아들이 진짜 억울하게 죽었잖아요. 사회에 내몰리고 나라에 버림받고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상황에서 죽었잖아요. 나 같은 일을 다른 부모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이쁜 아이들이, 세상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자식들이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우리 자식들이 끝까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래도 우리나라가 살 만한 나라라고 여길 수 있게, 위험하지 않게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날 이후 빈소가 차려진 건물 1층 안내판에는 김용균씨의 발인일이 가려져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어느 정도 이뤄져야 장례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유족들 입장”이다. 조화가 늘어선 한편에 청년 비정규직의 상징이 된 사진이 놓여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김용균씨가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며 안전모를 쓰고 마스크를 낀 채 찍은 사진이다. 지난 1일 찍은 사진에서 김씨는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다. 1년 뒤 정규직 전환 조건의 계약직 신분이라 재계약이 어려울까 노동조합 가입 사실을 드러내기 힘들었지만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의 운동 취지에 공감해 용기를 냈다. 빈소 사진 속 김용균씨의 얼굴은 유독 하다. 맑은 얼굴조차 이 사회는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태안/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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