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도권 지역의 한 웅진코웨이 지점 앞에 정수기 설치·수리 기사들의 영업차량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코웨이CS닥터노조 제공.
서울고용노동청이 정수기 설치·수리 노동자들이 낸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50일 넘게 처리하지 않아 해당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설립 허가주의’가 아니라 ‘신고주의’를 내건 국내법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정부가 단결권을 중심으로 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가입을 추진하는 상황과도 아귀가 맞지 않는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코웨이 시에스(CS·고객만족)닥터 노조’와 서울고용노동청의 말을 종합하면, 웅진코웨이 정수기를 가정이나 사업장에 설치하고 수리하는 일을 하는 기사 1500여명은 지난 2월15일 서울고용노동청에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했으나 55일째인 이날까지 서울노동청은 설립신고 필증을 내어주지도 않고 반려하지도 않았다. 노동조합법은 노조 설립신고를 접수한 고용노동부장관이나 시장·도지사 등은 사흘 안에 신고증을 주거나 반려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접수 서류에 보완할 대목이 있으면 20일 안에 보완 요구를 할 수 있으나 이 때도 역시 보완 뒤 사흘 안에 “신고증을 교부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 노조의 이흥수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접수 며칠 뒤 노동청이 서류보완을 요구해 3월11일까지 제출했는데도 18일과 20일 노동청으로 불러 노동자성 여부를 조사했다”며 “그 뒤에도 계속 ‘검토 중’이라며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와 노동청은 설립신고 검토 과정에 이들 노동자가 노동조합법의 노동자에 해당하는지 면밀히 따지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사건을 맡은 서울고용노동청의 이아무개 근로감독관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노조법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 경우 노조로 보지 않기 때문에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다”며 “(노동자성 여부를 두고) 회사 쪽과 노조 쪽의 얘기가 정반대이다”라고 말했다. 고용부의 조충현 노사관계법제과장도 “노조법의 ‘3일 안에 교부해야 한다’는 규정은 강행규정이 아니라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되는) 훈시규정”이라며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근로자성을 따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관청이 노조 설립을 허가 또는 불허하는 것을 금지하고 신고요건만 맞으면 필증을 내어주도록 한 헌법과 노조법의 노조설립 신고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설립신고 한 이들이 노동자인지를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 신고필증을 내어줄지를 결정하는 게 허가제가 아니면 무엇이 허가제란 말이냐”고 짚었다. 박경수 서비스연맹 법률원장(노무사)은 “대통령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 중인데 일선 공무원은 여전히 ‘노조설립허가주의’를 고수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등록절차가 오래 걸리고 복잡하거나 관할 관청에 폭넓은 재량권을 인정하는 것은 노조 설립에 중대한 장애요인이며 결사의 자유를 사문화시키는 것”으로 본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국가인권위원회도 2010년 “행정관청은 노조 설립을 위해 제출된 설립신고서와 규약에 한해 심사하고, 관련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 이외의 자료를 제출할 것을 임의적으로 요구하는 등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하는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뒤인 2017년 5월 정부 행정부처가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한 바 있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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