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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내년 최저임금, 사실상 삭감 수준

등록 2019-07-12 21:21수정 2019-07-12 21:28

최임위, 2.87% 인상 ‘사용자 안’ 채택
성장률·물가상승률 합계에 못 미쳐

올해보다 시급 240원 오른 8590원
외환·금융위기 때 빼면 인상률 최저
2년째 가속페달을 세게 밟던 ‘최저임금’이 이번엔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속도조절에 나섰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2년 연속 두자릿수를 올리더니 내년엔 10년 만에 가장 작은 2.87%만 인상하기로 하면서다.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물가상승률 합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2.87%는 사실상 삭감에 해당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전날 시작해 12일 새벽 5시30분까지 이어진 전원회의에서 내년 치 최저임금 시급을 8590원으로 결정했다. 근로자 위원들이 6.3%를 올려 제시한 8880원과 사용자 위원들이 내놓은 8590원을 표결에 부쳐 15 대 11(기권 1)로 사용자 안이 채택됐다. 8590원은 올해 8350원에서 240원(인상률 2.87%)이 오른 금액으로, 월급(한달 209시간) 기준으로는 올해 174만5150원에서 5만160원이 오른 179만5310원이 된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최저임금 상승률은 16.4%(2018년), 10.9%(2019년) 등 2년 동안 29% 올랐으나 3년차엔 2.87%로 급락했다. 이는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 9월~1999년 8월 치에 적용된 2.7%,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치에 적용된 2.75%에 이어 역대 세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2.87%는 한국은행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2.5%와 물가상승률 1.1%를 합한 수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해당 수치만큼 임금이 올라야 실제 구매력은 그대로라는 점에서 이보다 작은 임금 인상에 “실질임금 수준으로는 삭감한 것”(전병유 한신대 교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의결된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137만~415만명(영향률 8.6~20.7%)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최근 나아진 것으로 나타난 저임금 노동자의 상황이 내년에 도로 나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지난 4월 중위 임금의 3분의 2 아래에 있는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2018년 6월 처음으로 20%대 아래로 내려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앞서 정부는 올해부터 최저임금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이른바 ‘산입범위’에 상여금과 각종 복리후생비를 넣는 제도를 적용하기 시작해 “줬다 빼앗는 최저임금”이라는 비판을 샀다. 복리후생비 등의 최저임금 인정 비율은 해마다 늘어 2024년엔 전액이 해당된다. 최저임금 상승률 반감 효과가 커지는 것이다. 예컨대 올해엔 정기 상여금의 25%를 뺀 금액을 산입범위 계산에 넣지만 내년에 빼는 비율이 20%로 작아진다. 복리후생비(7%→5%)도 마찬가지다.

2020년 적용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9% 오른 시간당 8천590원으로 결정됐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왼쪽)과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 투표결과를 배경으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적용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9% 오른 시간당 8천590원으로 결정됐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왼쪽)과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 투표결과를 배경으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결과는 정부 여당 쪽이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중소 영세상공인의 어려움과 고용감소에 대한 우려를 들어 그동안 제기한 ‘속도조절론’의 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저임금 노동자라는 을과 영세상공인이라는 을 간의 싸움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한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수준이 최소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최근 어려운 경제 사회 여건에 대한 정직한 성찰의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조차 “내가 생각한 것에 비해 낮게 결정이 나 놀랐다.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말할 정도로 2.87% 수치가 주는 여파는 작지 않다. 이로써 문 대통령의 임기 안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달성은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만원을 달성하려면 내년 치 8590원을 2년간 16.4% 올려야 한다. 한국노총은 이날 낸 성명에서 2.87% 인상안을 “참사”로 규정하고 “최저임금 1만원을 통한 양극화 해소, 노동존중사회 실현도 불가능해졌다”고 짚었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한풀 꺾이는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 도입,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등 소득주도성장론을 떠받치는 여러 정책을 폈지만 유독 최저임금이 ‘기승전 최저임금 탓’이라는 보수세력의 과녁이 됐다. 김유선 이사장은 “최근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도 무기계약직 전환 뒤 처우 개선이나 민간부문 확산에 대해선 손 놓고 있는 등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이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18일 총파업을 예고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낸 성명에서 2.87%를 “소득주도성장 폐기 선언”으로 못박고 “최소한의 기대조차 짓밟힌 분노한 저임금 노동자와 함께 노동개악 분쇄를 위해 총파업을 포함한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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