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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조 이메일 삭제’ 침묵한 삼성준법감시위, 진정성 있나”

등록 2020-02-05 04:59수정 2020-02-05 11:11

[진윤석 삼성전자 노조위원장 첫 언론 인터뷰]

뜻 맞는 이들과 2013년부터 준비
3대째 무노조 경영에 ‘저항의 물꼬’
“지난달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 삭제
의견 안 낸 감시위에 기대하지 않아
노동자 파트너 인정 요구할 것”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삼성의 ‘무노조 경영’ 고집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창립 50년 만에 상급단체에 가입한 노조가 생겼고, 지난 3일엔 삼성화재에도 68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가 출범했다. 삼성디스플레이에서도 노조 설립 논의가 한창이다. 삼성은 정말 변한 걸까? 3대째 이어지는 무노조 경영에 맞서 ‘저항의 물꼬’를 튼 진윤석(38)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3일 <한겨레>와 만나 “삼성은 변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진 위원장이 언론과 별도로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조 출범 이후에도 최근까지 언론에 개인 정보와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았다. 조합원 조직 활동을 하는 데 회사가 어떤 방해를 할지 몰라 조심스러웠던 까닭이다. 실제로 회사는 지난달 6일과 29일 두 차례, 노조가 전 사원에게 보낸 노조 가입 독려 전자우편을 일방적으로 삭제했다. 그는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포기했다면, 우리가 보낸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을 삭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2019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2019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연합뉴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도 “삼성이라는 회사가 여태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이것 역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쇼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준법감시위는 법원이 주문해 지난달 꾸려진 기구로, 삼성 계열사의 준법 경영 여부를 감시한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의 전자우편 삭제에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진 위원장은 “준법감시위가 진정성 있는 기구라면 전자우편이 삭제됐을 때 얘기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의견도 밝히지 않았다”며 “준법감시위가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걸 내놓은 게 없어서 그 구실에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 위원장은 회사 창립 50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단위의 상급단체를 둔 노조가 생긴 뒤 일어난 가장 큰 변화로 “‘노조’란 단어가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점”을 꼽았다. 공개적인 오프라인 공간에선 여전히 노조를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지만, 3개월 사이 사내 인트라넷 등에서 노조 관련 글이 자주 등장하고, 댓글도 많이 달린다고 한다. 노조 누리집은 7차례나 다운됐다. “호스팅 업체에서 ‘회사 역사상 이렇게 접속자 수가 많은 적이 없었다. 무슨 사고가 났느냐’고 연락이 왔더라”며 그는 웃었다.

이렇게 큰 관심은 2013년께부터 노조 설립을 준비해온 데 따른 결과다. 뜻을 같이한 여러 사람들이 “어설프게 만들면 삼성에서 큰일 날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구는 법 공부, 누구는 정치인 조력 얻기, 누구는 시민단체 만나기 등으로 할 일을 나눠 준비했다.” 노조를 만든다는 말은 안 했지만, 양대 노총과 가맹 산별노조 관계자들도 두루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상급단체로 한국노총을 선택하게 된 것은 “조합원 투표의 결과로, 에스케이(SK)하이닉스, 엘지(LG)전자 등 동종업계 노조들이 가입돼 있었기 때문에 쉽게 (처우 등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결과 같다”고 말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교섭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교섭력을 확보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은 노조의 이름으로 회사의 잘못을 공론화하고, 법적 대응도 하면서 최대한 조합원을 모아야 할 때”라며 “조합원이 많아야 회사가 불성실하게 나올 경우 쟁의행위 등으로 압박할 수 있다”고 했다. 당장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기엔 힘이 모자라고, 교섭을 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으니 ‘때’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진 위원장은 삼성전자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데 무슨 노조를 만드냐며 ‘귀족노조’로 바라보는 게 ‘오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급여를 더 달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노동자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우리의 의견을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노조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다음은 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본인 소개를 해달라.

“1982년생. 2010년 12월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현재 기흥사업장에서 환경안전 업무를 맡고 있다.”

-삼성전자에는 기존 3개 노조가 있었다. 전국 단위의 상급단체(한국노총)를 둔 노조를 새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부터 노조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군가 회사에 노조를 만들어주길 기다렸다. 우리보다 앞서 3개 노조가 있었지만, 모두 상급단체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가 (노조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하는 걸 봐왔다. 그래서 상급단체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조 설립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2013년께부터 7년가량 준비했다. 그땐 내가 주도를 했던 게 아니었고, 회사에 불만이 있는 직장동료들이 만나 서로 푸념하고 격려하는 성격의 모임이었다. 노조를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서로의 역할을 분담했다. 삼성에서 어설프게 노조를 만들었다간 큰일 날 수 있으니 누구는 법률공부를, 누구는 시민단체나 정치권 쪽과 접촉해 조력을 얻어 보자고 해서 그 계획에 따라 준비를 해왔던 거다.”

-지난해 11월 노조 설립 추진이 알려졌을 때 400명가량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 조합원 수는 그때보다 늘었나.

“출범 당시와 비교해 굉장히 많이 늘었다. 당시 400명이란 숫자는 언론이 여러 추측에 기대 보도한 것인데, 사실과 달랐다. 조합원 수는 지금 현재 시점에선 밝히긴 어렵다. 스태프·공개가입·비공개가입 3단계로 나눠 조합원을 모집 중인데, 얼굴을 공개할 수 있는 스태프와 공개가입 조합원 수보다 20배가량 많은 비공개 조합원이 노조에 가입했다.”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대나 성비 등은 어떻게 되나.

“조합원 구성은 갓 입사한 고졸 신입사원부터 퇴직이 임박한 부장님까지 매우 다양하다. 국내 사업장에 재직 중인 외국인 사원도 가입했다. 성비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반도체 제조나 휴대전화 조립 및 제조 부문에 여성 사원들이 많았는데, 몇 년 사이 생산 설비 자동화로 인해 비중이 줄어서인지 여성 조합원의 가입률은 다소 저조하다.”

-삼성에서 ‘노동조합’은 금기어라는 게 세간의 평인데, 노조 출범 이후 회사 내부의 여론은 어떠한가.

“여전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꺼내는 건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지만, 3개월 사이 사내 인트라넷에선 ‘노조’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관련 게시글에 댓글도 많이 달린다. 과거 노조에 대한 게시물에 달린 댓글이 10개가 채 안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긍정이든 부정이든 ‘노조’가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회자되고 있는 것 자체가 긍정적 변화라고 생각한다. 지난 29일 두번째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을 발송했을 땐 노조 홈페이지 서버가 하루 동안 7번이나 다운됐다. 호스팅 업체에서 ‘회사 역사상 이렇게 접속자 수가 많았던 적이 없는데, 무슨 사고가 난 것 아니냐’며 연락이 올 정도였다. 그만큼 회사 내에서 노조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삼성전자에 이어 3일 삼성화재 노조가 출범했고, 또 다른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수십년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온 삼성그룹에 잇따라 노조가 생겨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삼성에서 노조는 계속 만들어질 것 같다. 최근 들어 노조가 연이어 설립된 가장 큰 이유는 삼성의 임직원들이 과거처럼 참지 않는다는 거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성과급 0%를 발표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건 너무하다’며 직원들이 나선 건, 더 이상 삼성이 업계 최고 수준의 처우를 보장하는 회사가 아니라는 걸 직원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외부적 요인으론, 이번 정권이 아니면 (노조를 만들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인식도 있을 수 있다. 또 최근 법원이 노조 와해 공작에 개입한 전·현직 임직원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언론 역시 삼성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지난달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 사건의 1심 선고 직후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의 정립”을 약속하는 ‘입장문’을 냈는데, 기존 노사관계에 대한 삼성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나.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포기했으면 우리가 보낸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을 삭제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얼마 전 삼성이 진보단체에 후원한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빼내 관리한 사실도 드러나지 않았나.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임직원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삼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교섭은 언제쯤 요구할 계획인가.

“교섭이 노조의 중요한 과제이긴 하지만, 회사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기존 제3노조가 회사 쪽에 지속적으로 교섭을 요구했으나 실질적으로 지금까지 얻은 결과물이 없다. 조합원 수가 적은 노조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당장 교섭에 들어가 봐야 기존 노조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삼성전자에는 10만명의 임직원이 있는데, 이들의 요구를 최대한 많이 취합하기 위해서라도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노조의 요구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회사를 쟁의행위 등으로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그 기간 동안 조합원을 최대한 많이 모아야 한다. 때문에 노조가 힘을 기를 때까진 회사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공론화하는 일에 초점을 둘 계획이다.”

-최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 문제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는데, 실제 삼성이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기하려면 준법감시위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준법감시위의 활동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선 그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일단 자신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내놓은 게 없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준법감시위의 역할에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준법감시위가 정말 삼성이라는 재벌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진정성 있는 기구라면, 지난 29일 우리가 보낸 두 번째 이메일을 삼성이 삭제했을 때 의견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준법감시위는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삼성이라는 기업이 여태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이번 역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쇼일거라는 생각이다.”

-회사가 두 차례나 노조 가입 독려 메일을 삭제했음에도 “계속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예정”이란 뜻을 밝혔는데, 다소 소극적인 대응이란 생각이 든다.

“노조 홍보 이메일을 계속 발송하는 일과 별개로 회사에 대한 대응 강도는 점차 높여갈 것이다. 이메일을 몇 차례 더 보낼건데, 회사가 이를 계속 삭제한다면 한국노총, 시민사회단체들과 힘을 모아 1인 시위나 다른 노조와의 연대 투쟁을 할 것이고 부당노동행위 진정이나 소송같은 법적 대응도 고려할 계획이다.”

-3개월간의 노조위원장 활동에 대한 소감은.

“삼성전자에서 노조를 만들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회사 밖에선 삼성전자가 ‘일류기업’이라고 하지만, 내부에선 직원 간 경쟁이나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분위기, 상시적인 희망퇴직 압박 등으로 남들에게 말 못할 아픔을 겪는 분들이 정말 많다. 이런 분들의 어려움과 회사의 부당함을 노조가 대신 알리고 해결할 방법을 찾는 일 자체가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응원해주는 분들도 많아져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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