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전태일의 친구들 김채원 상임이사
작년 3월 출범한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사장 이재동) 김채원 상임이사는 2주 전부터 매주 두 차례 단체 회원 및 자발적 참여자들과 대구 바보주막에 모여 김밥을 만든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100인분 김밥 200줄을 만들어 쪽방 주민 지원 단체 ‘희망드림센터’에 가져다준다. 김 이사는 김밥을 싸기 전날엔 직접 재료 구입을 위해 장을 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모두 외출을 꺼리는 도시에서 그가 일주일에 네 차례나 마스크를 단단히 여미고 문밖을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로 쪽방 거주자나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폐쇄됐어요. 그 말을 듣고 회원들이 의논해 급식 지원에 나섰죠. 사회적 취약계층을 돕는 게 바로 전태일 정신이잖아요. 이 일을 하면서 우리가 감동을 많이 받아요. 쪽방의 홀몸노인 분들이 너무 감사하다고 해요. 제품 김밥 말고 사람의 정성이 담긴 김밥을 먹기는 처음이라고요. 사람 대접받는다고요. 뭉클했죠.” 대구 자택에 머무는 김 이사를 3일 전화로 만났다.
“대구 전태일기념관 건립 후원금을 낸 1천여 분과 단체 회원 100여명이 함께 단톡방을 하고 있어요. 여기에 급식 지원 활동을 알렸더니 후원금이나 김밥 재료를 많이 보내주셨어요. 3월까지는 충분해 이젠 그만 보내고 다른 곳을 도우라고 했죠.”
코로나19가 대구를 덮치기 전까지 그의 관심은 온통 대구 전태일기념관 건립이었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지난해 9월 전태일 열사가 14~16살(1962~1964) 때 살았던 대구 남산동 집 매입 계약을 하고 지난달 중도금을 치렀다. 매입가 5억 중 절반(계약금·중도금) 모두를 시민 후원금으로 감당했다. 나머지 집값을 잔금 지급일인 오는 6월까지 모으려고 동분서주하다 코로나19를 만난 것이다. 오는 11월 13일은 열사가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지 50년이다. “6월에 매입해 우선 표지석을 세우고 몇가지 기록물을 전시해 50주기에 기념관을 열려고요. 제대로 된 기념관 리모델링은 그다음에 해야죠. 지난해까진 우리 예상보다 후원금이 빠르게 모였어요. 올 상반기에 잔금을 모으려고 긴박하게 움직이다 이번 사태가 터졌죠.”
무료급식 끊긴 대구 쪽방 주민 위해
3주째 회원·희망자들과 김밥 나눔
주 2회 대구바보주막서 100인분씩
“가장 힘든 사람 돕는 게 전태일 정신
대구 자발적 나눔 확산에 기여 보람” 전태일 생거지 매입에 천여명 후원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상경했다가 12년 뒤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그 시절 세 들어 산 곳이 바로 남산동 집이다. 여기서 청옥고등공민학교(현재 명덕초 자리)도 다녔다. 열사는 학교생활과 배움의 즐거움에 빠졌던 이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조영래 작 <전태일 평전>)로 기억했다. 김 이사는 지금의 나눔 활동을 전태일 정신과 연결했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는 게 전태일 정신의 핵심입니다. 열사는 점심을 거르는 시다들을 위해 차비를 아껴 풀빵을 사주었죠. 코로나19로 대구 시민이 고통에 빠졌어요. 재난 상황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힘든 사람을 위해 뭔가 실천하는 게 전태일 정신의 계승이죠.”
바이러스가 두렵지 않냐고 하자 그는 이렇게 받았다. “대구 시민들이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실천과 나눔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자발적 움직임도 많아요. 삼삼오오 모여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만들고 또 빵을 구워 의료진에 전달하고 있어요. 사회적 기업들이 이런 일을 많이 해요. 대구는 지금 ‘서로가 서로의 백신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이기는 사랑 나눔 바이러스가 태어났다’는 말을 많이 해요. 우리가 여기에 작으나마 기여했다는 게 참 기분이 좋아요.”
전태일 이후 한국 노동운동사는 새로 쓰여졌다. 그만큼 역사성이 큰 존재이지만 열사의 고향 대구에는 아직 기념물 하나 없단다. “45주기 때 생가 근처 계산 오거리 교통섬에 전태일공원 푯말을 세웠는데 구청 쪽에서 협의가 없었다며 철거했죠. 박근혜 대통령 시절만 해도 대구는 일당 독재였어요. 전태일 사업에 대한 반감이 컸죠.”
하지만 지난 몇년 새 전태일을 보는 시각에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단다. 여기엔 그의 몫도 적지 않을 것이다. 5년 전 대구 시민 30여 명은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 안내로 태일의 자취를 찾는 기행에 나섰다. 당시 대구참여연대 시민참여팀장으로 있던 그가 제안해 열린 전태일 대구시민문화제 행사의 하나였다. 2018년 대구와 광주 엠비시가 함께 만든 전태일 다큐멘터리도 시민들에게 열사는 물론 전태일 생거지의 존재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방송 뒤 재개발로 생거지가 사라지지 않게 시민의 힘으로 보존하자는 여론이 만들어졌죠.”
후원자 중 20%는 타 지역 사람이란다. “전남 강진 대안학교인 늦봄문익환학교 학생들이 식비를 아껴 30만원을 보내왔을 때 크게 감동했죠. 어떤 분은 전태일을 아끼는 사람인데 대구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게 고맙다며 익명으로 700만원이나 내셨어요. 대구 서문시장 봉제공장 사장님 그리고 대구의 전씨 종친회 청년부(부악회)도 참여했어요.”
그는 “전태일은 진보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보편적 인간의 가치를 상징한다. 인간의 존엄이나 약자에 대한 우애, 이웃 사랑,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상징한다”며 이런 바람을 드러냈다. “대구 사람은 어딜 가도 대접을 못 받아요. 꼴통 보수 도시고 군부 독재자와 재벌의 고향이라고요. 하지만 대구는 4·19 전까지만 해도 진보의 열정이 넘치는 도시였어요. 전태일기념관은 그걸 보여주는 지역 상징이 될 겁니다.” (후원 계좌. 대구은행 전태일의 친구들 504-10-351220-9)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김채원 상임이사. 그는 1998년 대구 참여연대 창립멤버로 지난해 초 전태일의 친구들에 합류할 때까지 활동가로 일했다. 사진 김채원씨 제공
전태일의 친구들 회원과 자발적 참여자들이 쪽방 주민들에게 전할 김밥을 만들고 있다. 김채원씨 제공
3주째 회원·희망자들과 김밥 나눔
주 2회 대구바보주막서 100인분씩
“가장 힘든 사람 돕는 게 전태일 정신
대구 자발적 나눔 확산에 기여 보람” 전태일 생거지 매입에 천여명 후원
김채원(맨가운데) 이사와 희망드림센터 활동가, 쪽방 주민들이 김밥 도시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김채원 이사 제공
대구 전태일기념관 기금 마련 홍보 포스터.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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