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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국회 담장만 허무는 민주노총 아닌 사회적 교섭 주체 돼야”

등록 2020-07-14 05:00수정 2020-07-14 10:00

[인터뷰]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코로나 합의안 평가는
해고금지 등 빠져 미흡한 점 있지만
노동 취약층·사각지대 보호 발판
전국민 고용보험 경영계 동의 얻고
10년간 반응 없던 상병수당도 포함
23일 대의원대회 과반 동의 얻을 것

고질적 정파갈등 지적엔
대중조직과 다른 결의 논쟁 늘 있어
이번 사안은 특정그룹 간 갈등 아냐
직선제 위원장 위상·역할 정리 등
내부혁신 위해 과감한 논쟁 필요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가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임시 대의원대회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가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임시 대의원대회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노동 취약계층의 우산’이 될 것인가, ‘자본의 하수인’이란 오명에 갇힐 것인가.

오는 23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지도부 사퇴’라는 배수진을 친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의 고민이다. 지난 1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이 조직 내 반대파의 제지로 불발된 이후 두문불출했던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합의’ 승인 여부를 1400여명의 대의원에게 묻고, 결과에 따라 거취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22년 만에 민주노총이 참여한 노사정 합의의 ‘끝장’을 보겠다는 그는, 조직의 반대로 인해 역대 어느 위원장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한 셈이다. 이번 합의안이 “미흡한 건 맞지만 폐기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김 위원장이 사회적 대화 재개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합의안이 자본과 정권에 굴복한 항복문서인지,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란 슬로건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의 노력인지를 조합원들에게 묻고 싶다”는 그를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은 “요즘 어떤 사람은 나를 ‘무모하다’고 하는데, 또 다른 이는 ‘비겁하다’고 정반대의 말을 하기도 한다”며 웃어 보였다. 민주노총이 “국회 담장만 무너뜨리”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높이는” 조직이 아닌,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이번 사회적 합의 결과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 1일 오전 노사정 협약식을 앞두고 위원장이 ‘감금’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예상했던 일인가?

“물리적인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회의는 열릴 거라고 봤다. 6월29일 중집 회의 때도 참관을 요청하며 회의실 퇴장을 거부했던 조합원들이 ‘회의 시작 전 의견을 충분히 발언하고 퇴장해달라’는 설득에 응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회의 진행을 위해선 중집 위원들의 자유의사가 존중돼야 하는데, 참관인들이 주변에서 위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버리면 그게 어렵지 않나. 출근부터 막힐 거란 생각은 안 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부위원장을 대리인으로 보내서라도 협약식 서명을 할 계획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간에 계획을 바꾼 건가?

“명백한 오보다. 대리인의 서명이든 직권조인을 했다면 나는 조직 내 사퇴 요구를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위원장 사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면, 그 즉시 모든 대리인 서명과 직권조인은 무효가 되기 때문에 그럴 계획 자체가 없었다. 7월1일 아침 건물 출구에서부터 조합원들에게 가로막힐 때, 현장에 있던 ‘자본의 하수인’이란 피켓을 봤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닌데’란 생각이 들더라. 합의를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담판을 짓자고 해서 위원장실에 들어왔는데, ‘직권조인 안 하겠다’고 약속하라 했다. 아니, 그럴 의지와 의사도 없는 사람한테 약속을 하라는 건 중세시대 마녀사냥과 뭐가 다른가.”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가진 &lt;한겨레&gt;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임시 대의원대회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가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임시 대의원대회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민주노총 내 반대파는 노사정 잠정합의안에 ‘해고 금지’ 같은 노동자 보호 대책이 명시적으로 담겨 있지 않은 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항공·해운업종 등에 40조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하는데도 교섭 내용에서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막을 실질적인 대책이 빠졌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휴업수당 삭감 인정 △노동계의 근로시간 단축·휴업 협력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고용보험 차등 적용 가능성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한 이행 점검 조항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대파 쪽에선 ‘해고 금지’를 막을 조항이 빠져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이번 합의안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흡한 건 인정하지만, 폐기할 수준의 내용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한 분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알고 있지만, 지금의 정세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비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 합의문 특성상 ‘올해 임금을 몇 퍼센트 인상한다’는 식의 단위노조 임단협처럼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긴 어렵다. 또 재벌부터 영세사업장까지 무조건적인 해고 금지는 가능한가. 현실적으로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해고 금지를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정부가 헌법에 규정된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하는 것밖에 없다. 그 경우 노사정 3자 대화는 할 게 없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이 이번 합의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현대자동차에서 고용안정을 위한 노사 협약을 맺었다 한들 (노조 울타리가 없는) 하청노동자들까지 다 보호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취약계층과 사각지대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세부적인 안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민 고용보험제와 관련해 경영계가 보험료를 부담하겠다는 동의를 얻은 것이다. 합의안에 앞서 청와대가 전국민 고용보험제 추진을 공식화했지만, 사용자 단체는 보험료 부담 때문에 ‘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입장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경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고용보험 적용 기준을 합의한 2018년 고용보험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10년 동안 반응이 없던 상병수당 도입 추진도 들어갔다.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전제로 한 만큼 노동자도 보험료를 더 내겠지만, 기업의 부담도 커지고 정부도 국민이 낸 세금을 더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제안했던 내용 아닌가. 이런 합의가 개별기업 노조의 임단협이나 산별교섭에서 가능한가? 기존 정규직이나 고용안정 협약을 맺은 사업장에서만 가능했던 걸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번 노사정 대화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가 중심인 양대 노총만의 리그가 아니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을 위한 합의 내용이 아니라는 걸 조합원들에게 확인시킨다면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충분히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을 것이라고 본다.”

(인터뷰를 나눈 이튿날, 민주노총은 임시 대의원대회와 관련한 세부 일정을 확정했다. 김 위원장은 대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앞으로 열흘간 전국을 돌며 각 산별조직과 지역의 대의원들에게 합의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호소하는 것은 물론, 노사정 합의를 둘러싼 민주노총 안팎의 의견을 공론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건 노동계가 정부의 ‘들러리’로 이용되는 것일 뿐이라는 비판도 많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한테 되묻고 싶다. 사회적 대화가 우리의 힘만큼 관철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노동의 힘이 자본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도리어 우리의 요구를 (합의문에) 다 쓸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는 당연히 투쟁이 필요할 텐데, 사회적 대화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투쟁에 걸맞게 교섭을 하자는 것이다. 나한테 ‘당신은 경영계를 믿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난 사회적 합의만 갖고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합의에서는 과거처럼 임금과 고용을 맞바꾸는 식의 전형적 사회적 대화의 프레임을 깨려고 했다. ‘합의를 위한 합의’가 아니라 우리의 전략과 목표를 위한 내용을 확인했기 때문에 하겠다는 것이다.”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사회적 대화와 그에 따른 내부 갈등 대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사회적 대화와 그에 따른 내부 갈등 대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민주노총이 노사정 합의에 불참한 배경에는 합의 내용에 대한 비판보다 기존 정파 갈등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김 위원장의 소속 정파로 알려진 민주노총 내 민족해방(NL) 정파인 ‘전국회의’의 반대 입장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부 매체에선 그가 올 연말 새 집행부 선거라는 정치적 변수로 인해 자신이 몸담은 정파로부터 버림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민주노총 내 고질적 정파 갈등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위원장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나?

“난 특정 진보정당 소속도 아니고, 특정 의견그룹의 멤버십을 갖고 있지도 않다. 철도노조에서 함께 활동했던 분들과 얘기하는 모임도 한 10년 전인 것 같다. 이번 상황은 특정 그룹에 소속된 위원장과 다른 그룹 간 갈등은 아니다. 조합원 100만명이 넘는 대중조직의 활동을 위한 현장에서 각 의견그룹 활동가들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을 정파 또는 의견그룹의 연합으로 치부해선 안 되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다만, 민주노총 내에서 대중조직과는 조금 다른 결의 연합이 불가피하다는 논쟁은 계속 있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의견그룹의 판단이나 입장을 존중하지만, 대중조직의 대표로서 위원장과 지도부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고 본다.”

―바깥에서 보면, 민주노총 의사결정이 강경파의 목소리에 따라 좌지우지된 일도 많은 것 같다. 의사결정 구조 개편 필요성은 없나?

“직선제로 위원장을 선출한 지 6년이 지났다. 그에 따라 내부의 논의 구조를 좀 바꿔야 하는데 대의체계에서 위원장을 뽑았던 시절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어 문제가 되는 거다. 직선 위원장의 역할과 위상 등을 새로 정리해야 한다. 산별조직과 지역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중집에서 모든 게 결정·집행되지 않도록 다른 기구들을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에 대한 해법도 찾아야 한다. 차기 집행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부 혁신을 위해선 좀 더 과감한 논쟁이 필요하다.”

대담/황보연 사회정책부장, 정리/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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