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의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코로나19가 덮친 노동현장은 가장 약한 자리의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렸고, 14명의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사망하는 등 올해만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전태일 50주기를 앞두고 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전태일 동상 앞에서 섰다. 왼쪽부터 이성호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 김계월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KO) 비정규직 노동자, 배성도 배성도 한국지엠(GM) 비정규직 노동자, 조지현 철도노조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 이태성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박성훈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 양윤숙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스물두살 청년 전태일이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가 덮친 한국의 노동 현장에서 고통은 가장 약한 자리의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9년 산재 사망자는 사고와 질병을 포함해 2020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별도의 휴게 시간이나, 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는 산재 사망자 통계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코로나19로부터 국민의 일상을 지켜내려 혹독한 노동을 감내하는 택배노동자는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이다. 한국진보연대와 보건의료단체연합,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등 67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발족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올해 과로로 숨진 택배노동자 수를 15명으로 추산했다. 가장 먼저 일터에서 밀려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벼랑 끝에 서 있다. 이성호(현대중공업·왼쪽부터), 김계월(아시아나케이오), 배성도(한국지엠), 조지현(철도노조 콜센터), 이태성(태안화력발전본부), 박성훈(현대중공업), 양윤숙(학교비정규직), 차헌호(아사히글라스) 등 각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 열사의 동상 곁에 섰다.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박성훈씨는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업체 서진이엔지에서 10년을 일하다 폐업으로 해고됐다. 폐업 통보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현대중공업 앞에서 90여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해고 없는 세상을 위하여 아시아나항공기 기내 청소노동자인 김계월씨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해고됐다. 회사는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을 받아들이지 않는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김씨는 무기한 무급휴직이 사실상 정리해고라고 말한다.
모든 노동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 한국지엠에서 일하던 배성도씨는 지난해 12월31일부로 해고됐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물량 감소를 이유로 7개 하청업체 58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했다.
내 삶을 찾기 위하여 14년차 코레일 콜센터 전화상담 노동자인 조지현씨는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속에서 회사의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다. 원청인 코레일은 형식적으로 방문해서 밀집된 환경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노동의 존중과 우리의 이름을 찾기 위하여 양윤숙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는 “학교 현장에서 차 심부름과 과일 깎기 등을 요구받고 있다”며 “노동자로서 존중받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열사 정신 계승을 위하여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 차헌호씨는 사쪽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여전히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하여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이태성씨는 “고 김용균의 죽음 이후 정부는 온갖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저와 김용균의 동료들은 여전히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존중받으며 인간다운 삶을 살기 원했던 50년 전 전태일 열사의 그 절규는 2020년 여전히 이들의 가슴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