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회사에서 직원이 야근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가 올해 말 계도 기간이 끝나는 중소기업(50~299인 상시 근로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도입을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경영계 일각에선 코로나19로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악화했다며 도입을 더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정부는 더 이상 유예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30일 ‘주 52시간제 현장 안착 관련 브리핑’에서 “정부는 지난해 말 ‘좀 더 준비할 시간을 달라’는 현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1년의 계도 기간을 줘 준비를 완료하도록 했다. 현재 시점에서는 주 52시간제 준비 상황이 이전보다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부는 지난 9월 전문 조사업체에 의뢰해 50~299인 사업장 2만4천곳(응답 기업 60.8%)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를 이날 공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 기업의 81.1%가 현재 주 52시간제를 준수하고 있다고 답했고, 내년부터 준수가 가능하다는 기업까지 포함하면 91.1%의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제를 도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장관은 “지난해 11월 조사(1300곳 표본)에서는 주 52시간제를 준수하고 있는 기업이 57.7%, 같은 해 연말까지 준비가 가능하다고 답한 기업이 83.3%였음을 고려할 때 지난 1년간 큰 폭으로 개선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즉각 반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 중소기업들은 유례없이 어려운 경영 상황에서 주 52시간제 도입에 집중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없었다”며 “최근 실태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39%,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업체 중 83.9%는 준비를 못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동부 쪽은 경영계 조사와 차이가 큰 이유에 대해 “중기중앙회는 표본조사(500곳)를 한데다 주문량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제조업 위주로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대신 경영계의 의견이 반영된 탄력근로제 개편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주 52시간제 시행과 관련해 현장에서 무엇보다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보완 입법으로 추진 중인 탄력근로제 개편”이라며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법안이 늦어도 올 연말까지는 반드시 처리될 수 있도록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단위 기간 중 일이 많은 주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의 근로시간을 줄여 평균치를 법정 한도 내로 맞추는 제도다. 현재 단위 기간을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이달 3~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 심의에서 국민의힘이 발의하는 선택근로제 확대 법안 등과 함께 논의될 예정이다.
노동계는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시행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정부가 여전히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지 않는 특별연장근로를 기업의 경영상 사유로까지 확대 적용하는 등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탄력근로제는 뇌심혈관계 질환 등을 유발하는 불규칙하고, 압축적인 고강도 노동을 허용하는 제도”라며 “특히 산업구조의 변화로 단기간 집중근로를 요구하는 프로젝트성 업무가 급증하는 추세에서 탄력근로제 도입은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꼬집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