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1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1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김미숙씨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각 제정 촉구 단식자 김미숙(고 김용균 어머니)’이라고 적힌 팻말을 가슴에 건 채 찬 바닥에 이불 방석을 깔고 앉았다. 옆에는 노란 파카를 입은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오늘도 누군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고, 방송계의 ‘초장시간 노동’ 현실을 고발하며 2016년 10월 극단적 선택을 한 이한빛 피디(PD)의 아버지 이용관씨도 자리했다.
이들과 함께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까지 4명이 이날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이들의 등 뒤에는 정의당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법을 발의한 지난 6월11일 이후 산업재해로 인해 ‘퇴근하지 못한 노동자’ 수가 기록됐다. 이날까지 598명이었다. 김미숙씨는 이날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매일같이 용균이처럼 끼여서 죽고 질식해서 죽고 감전되어서 죽고 과로로 죽고 화학약품에 중독돼 죽는다. 너무나 많이 죽는다. 제발 그만 좀 죽으면 좋겠다”며 “밥을 굶어본 적이 없어 무섭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절박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한겨레>와 따로 만난 김씨는 “말로만 약속”하는 정치인들을 강하게 성토했다. 김용균씨 사망 이후 2년 동안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과 중대재해법 입법을 두고 수많은 정치인들의 약속이 김씨의 눈과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올해 1월16일부터 시행된 산안법 개정안은 “(중요한 쟁점이) 다 빠지고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그런 법”이 됐다. 여전히 위험 작업 하청에는 큰 제약이 없고, 원청의 안전 책임도 가볍다. “산안법에 ‘용균이법’이라고 (이름을) 갖다 붙였는데, ‘용균이 없는 용균이법’이고 용균이를 또 한 번 기만한 법이라고 생각해요.”
중대재해법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당 대표 취임 때부터 중대재해법 제정을 약속했던 이낙연 대표는 여전히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그 책임을 강화하는 법을 최대한 이른 시기에 제정하겠다”(10일 페이스북)는 말만 거듭하고 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를 마친 뒤 “최대한 이번 임시국회 내에 상임위에서 통과시킨다는 목표로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김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한정애 의원이 ‘뺄 거 빼고 하자’고 말하니 많이 우려스러워요. 정치인들은 말로만 하고 보여주기식인 것 같아요. 사람이 죽으면 맨날 빈소에 와서 명복을 비니 어쩌니 다 쇼하는 것 같습니다. 진짜 명복을 빌려고 한다면 법을 만들어서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이한빛 피디(PD)의 아버지 이용관씨(왼쪽부터) 등이 1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씨는 애초 단식까지 선택할 생각은 없었다. 평소 그는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유족들을 찾아가 “무조건 합의하지 말고 뭐가 어떻게 되는지 힘내서 파악하시라. 밥도 꼬박꼬박 먹고 그래야만 몸이 버텨낸다”는 당부를 건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곡기를 끊는 선택에 내몰렸다. “노숙 농성을 해도 안 되니까요. 올해 안에 (중대재해법 입법을) 못하면, 이 법은 예전처럼 아무도 (추진)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김씨는 지난 7일부터 국회 본회의장 로텐더홀 앞 등에서 농성을 해왔다. 전날 충남 태안 태안화력에서 열린 ‘김용균 2주기 추모제’에도 참석하지 않고, 국회를 지켰다. 김씨는 “추모제도 저한테는 중요하지만, 지금도 매일 죽어 나가는 사람들 살리는 게 더 시급한 문제”라며 “용균이도 그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9일 종료된 21대 국회 첫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중대재해법을 허술하게 만들면 용균이한테 어떻게 이 나라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는 뭘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용균이가 이렇게 하고 있는 엄마를 봤을 때 ‘엄마, 아무리 그래도 안돼’라고 말할 것 같은 마음이에요. 그렇게 죽어서도 편안하게 엄마를 볼 수 없는 용균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많이 들어요.” 김씨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박준용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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