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마지막날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건물 앞에 쿠팡배송 차량이 세워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쿠팡이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 신고서에 ‘한국 정부는 쿠팡플렉스와 쿠팡이츠 배달원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독립계약자(자영업자)로 판정했다’고 기재해 논란이 예상된다.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이들이 쿠팡으로부터 업무 지휘·감독을 받는 노동자인지에 대한 판단이나 해석을 공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4일 쿠팡이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낸 증권 신고서를 보면, 회사의 ‘위험요소’ 가운데 하나로 “독립 배송 파트너(쿠팡플렉스·쿠팡이츠 배달원)를 사용하는 서비스를 포함한 배송 물류의 특성”을 꼽으며, 이 점이 “당사의 사업·재무상태·운영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송에 대한 잠재적 책임과 비용을 노출시킨다”고 언급했다. 쿠팡이 직고용한 ‘쿠팡친구’(쿠팡맨)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만, 이들이 처리하지 못한 물량을 건당 수수료를 받고 배송하는 ‘쿠팡플렉스’나 쿠팡의 음식배달 서비스인 ‘쿠팡이츠’의 배달원은 플랫폼 노동자에 해당한다. 쿠팡은 노동자와 독립계약자의 특성을 모두 갖는 플랫폼 노동자를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 회사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플랫폼 노동자를 독립계약자(자영업자)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오는 추세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 노동재판소와 같은 해 10월 스페인 대법원은 각각 영국 음식배달 플랫폼 기업 ‘딜리버루’와 스페인 업체 ‘글로보’의 배달기사를 독립계약자가 아닌 회사에 종속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다.
이런 맥락에서 쿠팡은 해외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증권 신고서에서 “당사는 이들(배달원)이 독립계약자라고 믿는다”고 밝히며 그 근거로 “한국 고용노동부를 포함한 국내 규제기관은 쿠팡플렉스와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를 노동자(employees)가 아닌 독립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s)로 판정했다”고 명시했다. 이어 쿠팡은 “쿠팡플렉스·쿠팡이츠 배달원을 독립계약자로 분류하는 것이 법령과 법적 해석에서 어려워진다면 이를 방어·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당사의 사업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쪽은 <한겨레>에 “지방고용노동청에서 (개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만 밝혔다. 쿠팡 쪽도 이러한 내용을 명시한 근거를 묻는 질문에 “미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상 상장 신고서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답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1분마다 수수료 등 근무조건을 변경하고,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쿠팡의 행태는 투자자들에겐 매력적일 수 있지만, 노동자들의 불안한 노동을 기반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음식배달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취지로 ‘라이더유니온’의 노조설립신고필증을 교부한 바 있다.
박태우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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