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내 취업 카페 상담부스에서 한 학생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 “코로나19가 취업에 방해가 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아이티(IT) 쪽은 코로나19 이후에 사람을 더 많이 뽑고 있으니까요.”
지난달 서울의 한 핀테크 기업에 입사한 ㄱ(25)씨에게 코로나19로 인한 청년실업은 체감하지 못한 얘기다. 그는 취업률이 낮기로 소문난 ‘문사철’(문학·역사·철학) 전공자지만, 지난해 2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직후 6개월짜리 코딩 교육과정을 거쳐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자바스크립트와 리액트 등 개발자 실무를 가르치는 학원 수업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 5일 동안 ‘풀타임’으로 진행됐다. ㄱ씨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대부분 수강생이 밤 10시까지 남아 수업 내용을 예습·복습하는 분위기”라며 “대다수가 정보기술(IT) 기업 취업을 목표로 온 20대 중·후반의 비전공자들”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에만 학원 이름에 ‘코딩’이나 ‘코드’가 붙은 학원 5~6곳이 ‘취업률 95%, 합격자 평균연봉 4천만원대’ 같은 홍보문구를 내걸고 성업 중이다. 이들 학원의 개발자 교육과정 수강료는 6개월 기준 700만~800만원 수준이다. ㄱ씨는 학원비를 부모님이 대신 내줬다고 했다.
#2. 지난해 2월 비수도권 대학의 치위생학과를 졸업한 이아무개(24)씨의 요즘 한달 수입은 35만원이다. 집 근처 카페에서 일주일에 10시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손에 쥐는 돈이다. 이씨는 지난해 첫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뒤 6개월간 집에서 “그냥 쉬었다”. 취업한 첫달에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면서 치과 환자가 뚝 끊기자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는 말과 함께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당시 기억은 사회초년생인 이씨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그 무렵 이씨의 어머니도 수입이 끊겼다. 엄마는 딸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해준 적이 없다. 이씨는 어머니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업종에서 ‘불안정 노동’을 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따름이다. 그는 “‘이제 뭘 하고 살지?’란 생각을 계속 하느라 우울하다”며 “집 밖에 나가면 돈이 들어가니까 하루 종일 집에서 유튜브를 보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케이(K)자로 벌어진 양극화 현상이 2030 청년 노동 시장에서도 심화되는 모양새다. 코로나19로 ‘언택트 특수’를 맞은 정보기술기업 취업을 겨냥해 수백만원의 학원비를 들여가며 준비하는 청년들이 있는 반면, 대면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다가 일자리를 잃거나 당장 생계비 마련을 위해 알바 일자리를 전전하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층의 종사 비중이 높았던 음식점·숙박업 등에 코로나19 고용충격이 집중된 영향으로 청년층 내 임금 불평등은 다른 연령대에 견줘 더 두드러진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역별 임금불평등의 변화’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29살 이하 연령대의 임금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한해 전보다 0.017 상승했다. 30~54살(0.011)과 55살 이상(0.014) 연령대보다 불평등 정도가 더 악화됐다는 의미다.
요즘 ㄱ씨와 동료들 사이에선 일명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 기업의 채용이 화제다. ‘네카라쿠배’란 우수 개발자를 잡기 위한 아이티 기업들의 채용 경쟁으로 연봉이 오른데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티 기업들의 첫 글자를 조합한 신조어다.
네카라쿠배를 비롯한 아이티 기업들은 코로나19 유행에도 불구하고 외려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취업자가 한해 전보다 21만9천명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 모습이다. 최근 쇼핑·금융 사업을 확장 중인 네이버의 경우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아홉달 사이에 등기이사를 제외한 전체 직원 수가 10% 이상(365명) 늘었다.
이달 들어서만 게임기업 넥슨을 시작으로 넷마블·컴투스·게임빌 등이 전직원 연봉을 800만원씩 일괄 인상하고, 개발직군 신입 초봉을 5천만원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쿠팡이 신입 개발자 연봉을 최고 6천만원까지 제시한 바 있다. 연봉 인상 발표 이후 이들 기업 직원들 사이에선 “800(만원)만큼 (회사) 사랑해” “이젠 (연봉순으로) ‘쿠네넥카라’(쿠팡·네이버·넥슨·카카오·라인플러스)로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네카라쿠배’ 기업의 합격을 보장한다는 학원까지 등장했다. 성인교육 스타트업인 패스트캠퍼스는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쳐 선발된 15명에게 6개월간 개발자 양성 과정을 전액 무료로 강의하는 ‘네카라쿠배 프론트엔드 취업완성 스쿨’을 열었다. 기존 수강료가 700만원에 이르는 이 프로그램에는 지난 8일 마감까지 약 3주 동안 모두 4185명이 지원했다.
연령대별로 지난해 고용률을 한해 전과 비교해보면, 20대의 하락폭(2.5%p)이 가장 크다. 신규 채용이 급격히 줄어든 영향이 크기 때문인데, 일부에선 이처럼 고액의 학원비를 대가며 적극적인 취업 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택트 소비의 증가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아이티업계의 연봉 인상 소식이 딴 세상의 얘기로 들리는 청년들이 더 많다. 지난해 이씨처럼 학업이나 가사·육아 등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던 20대는 41만5천명으로 한해 전보다 25.2%(8만4천명) 늘었다.
6개월 만에 집 밖으로 나온 이씨는 지금 일하는 카페 알바를 하기 위해 2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최저시급 알바 자리에 20명의 지원자가 몰리자 당황한 사장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이씨는 올해 들어 취업 대신 소규모 공방을 차리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 1년간 쉬었던 병원 일을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는데다 “또 잘릴 수 있겠구나”란 생각에 취업 대신 창업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이씨가 공예수업을 수강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국민내일배움카드는 취업과 직결되는 자격증이나 기술교육 과정에만 사용할 수 있어 이씨는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없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대학을 가는 대신 그 돈으로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은 청년기 때의 미취업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단기간의 임금 손실 외에 경력 상실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발표한 ‘청년 고용의 현황 및 정책제언’ 보고서에서 “첫 입직이 1년 늦을 경우 같은 연령의 근로자에 비해 향후 10년간 임금이 연평균 4~8%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은 주로 사회보험 가입이 되지 않는 초단시간 노동자로 일했거나 근속기간이 짧은 탓에 실업급여 혜택도 제대로 받기 어렵다. 최아무개(26)씨는 지난해에만 두차례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대학을 다니며 드러그스토어에서 9개월간 알바생으로 일했던 최씨는 지난해 3월 권고사직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코로나19 유행이 확산하면서 가게 매출이 10분의 1로 하락한 영향이었다. 매장 쪽은 “권고사직 처리를 해줄 테니 실업급여라도 받으라”며 최씨를 내보냈다.
월 20여만원의 실업급여로 한달 생활비 70만~80만원을 감당할 수 없었던 최씨는 신용카드 대출을 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지난해 9월 다른 드러그스토어 매장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3차 유행이 발생한 12월에 두번째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본사에서 계약직을 권고사직 처리하라는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씨와 사정이 비슷한 친구들은 요즘 택배 상하차 작업이나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알바를 한다. 그는 “다른 알바는 안 구해져도 물류센터는 일이 많다. 노동 강도에 비하면 돈을 많이 주는 건 아닌데, 당일 입금을 해주니까 생활비가 급한 사람들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청년층의 고용지표에서 유독 심각한 문제는 지난해 비경제활동인구 중 20대의 ‘쉬었음’ 인구 증가율이 25%를 넘어섰다는 것인데, 이는 현재의 고용정책에서 누락된 청년들이 많다는 걸 뜻한다”며 “청년기 때 노동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이후 40~50대까지도 (노동) 불안정성이 가중되는 특성이 있는 만큼 전방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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