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한 작업인 ‘데이터 레이블링’을 할 수 있는 한 모바일 플랫폼의 화면.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기 위해 사람이 직접 이미지·텍스트·음성 등의 데이터를 분류하고 가공하는 ‘데이터 레이블링’(data labelling) 작업자들의 노동여건에 대한 첫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데이터 레이블링은 이미지 속 특정 개체를 사각형 모양으로 자르는 등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이라 일각에선 ‘디지털 인형 눈알 붙이기’라고도 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10일 발표한 ‘온라인 마이크로 워크 노동상황’ 보고서를 보면, 데이터 레이블링 노동자 54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은 일주일 평균 약 2.7일(하루 2.7시간)을 일하고, 한달 평균 36만7천원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7.2%는 데이터 레이블링이 아닌 오프라인 일자리에서 주소득 활동을 하거나(60.4%),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일감을 얻는(16.8%) 등 대부분 ‘투잡’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부업’인 데이터 레이블링을 통해 얻는 소득은 월평균 총수입(227만원)의 16.1%에 불과했지만, “일을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한 응답자는 16.3%에 그쳤다. 데이터 레이블링 노동을 선택한 이유로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59.3%로 가장 많았고, “소득 부족으로 인한 투잡”이란 응답(16.5%)이 그 뒤를 이었다.
응답자의 33.9%는 데이터 레이블링 노동을 하기 전 학업·육아 등으로 일을 하지 않았던 ‘비경제활동인구’였다고 답했다. 국민연금 미가입자의 비중은 35.5%로, 비정규직 평균(약 33%)보다 다소 높았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추진하면서 각종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가공하는 ‘데이터 댐’ 구축을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2025년까지 인공지능과 데이터 관련 일자리 90만3천개를 창출하겠다고도 했다. 다만 여기에 포함될 데이터 레이블링에 대해선 단순·반복 작업과 낮은 단가 때문에 ‘질 낮은 일자리’라는 비판도 있다. 응답자들도 ‘일하는 환경’(72.4점)과 ‘일과 생활 균형’(70.8점) 영역에선 업무 만족도가 높다고 했지만, ‘작업자의 소득’(49.6점)이나 ‘개인 발전 가능성’(47.3점) 등에 대해선 낮게 평가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현실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월 20만~30만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 휴식 시간을 포기하고 이 부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디지털 일자리 사업이 성공하려면 숙련 형성 과정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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