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워드프로세서’로 불리는 한컴오피스(옛 ‘아래아한글’)를 개발한 정보기술(IT) 기업 한글과컴퓨터에 노동조합이 17년 만에 재설립됐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4천억원대 매출을 달성했지만,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 수석급 개발자 수십명이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한글과컴퓨터지회(한컴지회)는 23일 노조설립 선언문을 발표했다. ‘행동주의’라는 별칭을 내건 한컴지회는 근속연수 10~20년가량인 40~50대 직원들이 주축이다. 한컴에선 2001년 기업노조가 출범했다가 2004년 자진 해산한 뒤 직장협의회가 유지돼왔다.
한컴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클라우드 오피스 서비스인 ‘한컴스페이스’ 사용자가 늘어난 데 더해, 개인용 방역 마스크를 생산하는 자회사 한컴라이프케어의 매출이 전년보다 두배 남짓 증가한 영향이 컸다. 한컴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드론, 블록체인, 모빌리티, 금 거래소 등 15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월 한컴오피스 수석급 개발자 20여명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하고 지난달 조직개편에서 개발 인력들을 새 사업에 배치하는 등 내부에선 기존 핵심 사업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기홍 한컴지회 지회장은 “최근 3~4년간 회사는 구체적인 인원도 정해놓지 않은 채 무조건 한컴오피스 개발 인력을 빼 신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권고사직에 동의하지 않은 개발자는 기존 업무와 전혀 다른 드론사업 영업직으로 보내겠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한컴지회는 “경영진의 단편적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인사와 포괄임금제 등을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글과컴퓨터 쪽은 이에 대해 “회사는 노동조합의 출범과 활동을 존중하며, 구성원들과 좀 더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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