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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코로나로 해고돼 항의했더니…1천명 일하던 공장 “우린 5인 미만 사업장”

등록 2021-04-01 17:19수정 2021-04-02 02:13

1일 권리찾기유니온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80곳 공개
권리찾기유니온 회원들이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국공인노무사회관에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 300일 맞아 사업장 실태와 경과를 설명하는 언론발표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권리찾기유니온 회원들이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국공인노무사회관에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 300일 맞아 사업장 실태와 경과를 설명하는 언론발표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2월 경기도에 있는 플라스틱 제조업체 ㄷ사에서 1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됐다. 공장을 폐쇄하고 1천명 넘는 종사자들이 검진을 받게 됐다. 공장 설비가 멈추자 사업주는 사업 손실을 이유로 소속 노동자를 해고하려 했다. 해당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민 출신 노동자들이 표적이 됐다. 해고 통보를 받은 공장 노동자 10여명이 이에 항의하기 위해 확인해보니, 근로계약서는 엉터리였다. 근로계약서상 이들의 계약 상대방은 ㄷ사가 아닌 ㅎ사였다. 알고 보니 ㅎ사는 ㄷ사의 위장도급 회사였다. ㅎ사는 수십명 이상과 근로계약을 맺고도 이를 제대로 등록하지 않았다.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인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ㅎ사가 5인 미만 사업장 행세를 한 까닭은 현행 근로기준법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다만, 시행령으로 일부 내용만 적용될 뿐이다. 이에 따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연차 휴가를 받을 권리가 없다. 연장·휴일·야간 가산 수당·휴업 수당 등을 요구할 권리도 없다. 부당해고를 당하더라도 구제받기 어렵다.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대표자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로 처벌받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ㅎ사와 같은 곳을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규정하고 제보 접수와 고발을 진행해온 노동운동단체 ‘권리찾기유니온’이 1일 오전 서울시 영등포구 공인노무사회관에서 언론발표회를 열고 지난해 6월4일부터 300일 동안 고발과 청원, 구제신청 등을 진행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80곳을 공개했다.


전국 13개 사업장 지역별로 ‘쪼개기’

제보된 사례 중에선 실제 더 많은 직원이 일하면서도 ‘사업장 쪼개기’를 통해 5인 미만 사업장인 것처럼 위장한 경우가 73.8%(중복 포함)로 가장 많았다. ㅅ텔레콤은 전국에 13개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인을 대표자로 등록하는 등 지역별 ‘쪼개기’를 통해 모든 직원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연장근로 수당을 주지 않고 연장근로를 하게 했다. ‘하루 노동시간 11시간, 휴게시간 5시간40분’이라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기본급을 낮춰놓고, 실제로는 휴게시간 없이 일을 시키기도 했다.

두번째로 많은 유형은 앞선 ㄷ사의 위장도급사 ㅎ사처럼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등 4대보험을 등록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실제 규모와 달리 5인 미만 사업장 행세를 하는 경우다. 전체의 35%(중복포함)를 차지했다. 서울의 한 스타트업 ㅇ사가 그런 경우다. 이 회사는 한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도 수습이라며 급여의 80%만 지급했다. 4대보험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이 직원은 야근까지 감수하며 일했지만 회사는 결국 최종 채용을 거부했다. 이 직원이 부당해고 문제를 제기하려하자, 회사는 자신들이 5인 미만 사업장임을 강조했다. 실제로는 7명이 일하는 곳이었지만, 실제 고용보험에 등록된 노동자는 5명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첫번째 유형과 두번째 유형이 모두 해당하는 사업장도 전체의 16.3%나 됐다. 이밖에 서류상의 위장은 없지만, 초과수당이나 연차·유급 휴가 등에 대해 5인 미만 사업장 기준의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사업장들도 있었다. 이들은 5인 이상이 근무하는 상황이 명확함에도, 개별 노동자에게 5인 미만 사업장 기준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노동자인데 사업소득세 납부 강제하기도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자신이 노동자임을 입증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일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소속 노동자가 개인 사업자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ㅅ텔레콤과 스타트업 ㅇ사도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라 단순 노무계약을 맺고 프리랜서와 같은 독립된 개인사업자가 내는 3.3%의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도록 강제했다. 정상적인 근로계약이라면 납부할 필요가 없지만, 이 금액을 납부하도록 해서 부당해고 등 분쟁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노무사)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노동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거나 체불된 각종 수당을 받는 길은 험난하다”며 “사업주가 노동자가 입증하기 어렵도록 이중 장치를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날 발표회에선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전문적으로 컨설팅하는 업체가 성행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심준형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노무사는 “불법 노무관리 컨설팅을 받은 뒤 회계나 거래를 공유하면서 사업장을 쪼갠 사업장도 있었다”며 “대부분의 노동자는 이런 사례에서 (쪼개진 사업장이) 한 회사라고 입증할 자료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 모든 노동자에게 제한 없이 노동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사무총장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전면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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