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조리실무사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노조는 학교 급식노동자의 직업성 암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라며, 교육 당국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는 6일 “2018년 폐암으로 사망한 급식노동자 ㄱ(당시 54살)씨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의 업무상질병심의위원회가 지난 2월23일 업무상 질병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학비노조의 설명을 종합하면, 2005년부터 2017년 2월까지 경기도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했던 ㄱ씨는 같은해 4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1년 동안의 투병생활 끝에 숨진 ㄱ씨 외에도 이 학교에선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조리실무사 3명이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는 게 노조 쪽 설명이다. 이 가운데 2017년 5월 급식실에서 쓰러진 이아무개(52)씨 역시 지난해 3월 환기 등 작업환경과 높은 노동강도 등으로 인한 뇌출혈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이들은 튀김, 볶음 등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급식실의 ‘집단산재’와 관련이 깊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업무상 질병 심의위원회는 “12년간 조리실무사로 근무하면서 폐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고온의 튀김, 볶음·구이 요리에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s)에 낮지 않은 수준으로 노출됐다”며 ㄱ씨의 업무상 질병 인정 이유를 설명했다.
조리흄은 230도 이상 고온 상태에서 기름을 동반한 가열 작업을 할 때 지방 등이 분해되면서 배출되는 물질이다. 직업환경전문의인 이선웅 향남공감의원 원장은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0년 조리흄을 폐암의 위험 요인으로 명시했다”며 “단시간 내 대규모 인원을 위한 튀김 등의 조리가 이뤄지고, 환기 기능이 충분하지 못한 급식실은 조리흄 노출에 취약한 환경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ㄱ씨의 산재 승인을 이끌어낸 김승섭 노무사는 “2016년 9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이 학교의 식단표를 보면, 튀김과 볶음 등의 요리가 포함된 날이 전체 근무일수의 81%(68일)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노조는 조리실무사들이 2016년 여름께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환풍기와 공조기의 교체를 요구했지만, 학교 쪽에선 일부 점검과 수리만 해줬던 탓에 ㄱ씨 등의 피해가 컸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전국 학교 급식실의 공기순환 장치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법적으로 의무화 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지 않거나 정상운영하지 않은 교육부와 충남·경남·전북·울산·경북교육청 등 6곳을 조만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하기로 했다. 현행법은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같은 수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운영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경남교육청 쪽은 “2019년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위원 재구성 등으로 지난해부터 이달까지 정상운영이 어려웠다가 5월 전에 열기로 최근 근로자위원 쪽과 합의했다”고 해명했다. 박정호 학비노조 정책실장은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은 제조업 중심으로 만들어져 집단급식소에 대한 환기장치 설치 의무 등이 담겨있지 않다. 이를 위한 개정 작업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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