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간기업에서 직원들이 야근을 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경제단체들이 다음달부터 시행 예정인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을 유예해달라고 요청한 가운데, 정부가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를 재차 안내하며 유예는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난 4월 기준 주 52시간제를 지키고 있다고 답한 50인 미만 사업장이 81.6%인 것으로 파악됐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16일 브리핑을 열어 “(5~49인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제) 시행 시기를 유예하는 것은 법 개정사항이라 국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주 52시간제와 새롭게 개편된 유연근로제가 동시에 시행되기 때문에 우선 새로운 제도들이 같이 정착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5개 경제단체가 공동성명을 내어 주 52시간제 적용 유예를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는 7월1일부터 5~49인 사업장에 적용되는 주 52시간제를 예정대로 시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에 연장노동시간 12시간을 더한 주 52시간이다. 이 상한선을 넘겨서 노동하게 되면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미리 정한 기간의 평균 노동시간이 1주 40시간 이내이면 합법으로 보는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의 적용 기간이 늘었기 때문에 정부는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를 적용하기 위한 준비가 충분히 됐다고 보고 있다.
앞서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19년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경영계의 입장을 반영해 탄력근로제의 최장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고 선택근로제도 신기술·신제품 연구개발 분야에 한해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다.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는 모두 정해진 기간 안에 연장근로를 제외한 평균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합법으로 본다는 점에선 같지만, 선택근로제는 노동자가 스스로 출퇴근시간을 정할 수 있고 한 주에 12시간 넘게 일하는 것도 가능해 초과 노동의 허용 범위가 더 넓다. 국회가 지난해 12월 이런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올해 4월부터 제도가 시행 중이다. 권기섭 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계절 변화 등 어느 정도 (생산량 변동이) 예측 가능한 경우에는 탄력근로제를 6개월까지 활용할 수 있고, 게임, 금융상품 등 연구개발을 위해 집중 근무가 필요한 경우엔 선택근로제를 3개월까지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5~29인 사업장에 대해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확대한 점도 재차 강조했다. 이는 사업장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노동자 동의와 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고 연장근무를 한 주에 12시간 넘게 시킬 수 있는 제도다. 사업주의 제도 남용을 우려해 이제까지는 ‘자연재해·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를 수습하는 경우’로 제도 활용 사유가 엄격히 제한됐으나 2019년 정부가 ‘업무량 폭증’이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과 같은 경영상 이유로도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길을 열었다. 이 제도는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2019년 연간 900여건에서 인가 사유가 확대된 2020년 4천여건으로 폭증했다. 올해도 5월까지 약 2200여건이 인가됐다고 정부는 밝혔다. 권 실장은 “5~29인 기업은 2022년 말까지 근로자 대표와 합의하면 1주 8시간의 추가 연장근로를 통해 최대 60시간까지 가능한 점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며 “지난해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가 확대돼 예상치 못한 경영상 애로에도 특별연장근로 제도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4월 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중앙회가 함께 5∼49인 기업 1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 52시간제를 준수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이 81.6%, ‘준수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답한 기업이 10.7%, ‘준비하지 못했다’고 답한 기업이 7.7%였다는 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가 있는 기업은 전체의 11.1%를 차지했다. ‘다음달부터 주 52시간제를 준수할 수 있다’고 답한 사업장의 비율도 93.0%에 달했다. 다만 제조업의 경우 ‘다음달부터 주 52시간제를 준수할 수 있다’는 응답이 82.4%로,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이 때문에 되레 노동자 대표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업주가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 등을 남용할 우려까지 나온다.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는 근로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하면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고, 특별연장근로는 근로자 개인의 동의와 노동부 인가를 받아 시행할 수 있다. 노동조합조차 없는 상당수 중소기업은 근로자 대표를 뽑는 절차도 없는 경우가 많다. 권 실장은 “근로자 대표 제도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입법안들이 계류 중”이라며 “입법 지연에 대비해 사업장을 지도하고 필요하다면 하반기에 근로자 대표 관련 지침을 보완하는 방안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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