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전문채널 <와이티엔>(YTN) 정찬형 사장이 23일 서울 마포구 와이티엔 사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언론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며, 시민의 신뢰는 언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언론윤리헌장 서문)
지난 23일 찾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와이티엔> 사옥 7층 사장실에는, 종이에 인쇄된 언론윤리헌장 전문과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전문이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붙어 있었다. 정찬형 와이티엔 사장이 쓰는 업무용 책상 바로 옆 기둥이었다. ‘언론개혁’ 관련 기사도 스크랩된 모습이 보였다. 언론사 경영인이 언론의 ‘기본’인 저널리즘 원칙과 ‘개혁’을 동시에 가까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 사장은 “나에게는 ‘기본’과 ‘개혁’이 같은 말이다. 기본이 중요하다. 언론이 본연의 역할, 이미 합의한 보도준칙과 강령 등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니까 비판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1982년 <문화방송>(MBC)에 라디오 피디(PD)로 입사해 <손석희의 시선집중>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을 기획했고, 2015~2018년 <티비에스>(TBS) 사장을 맡아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간판 시사 프로그램으로 키웠다. 그는 2018년 9월 공모 심사를 거쳐 와이티엔 사장에 취임했으며, 곧 임기 3년을 채운다. 그의 재임 기간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에 크게 훼손된 와이티엔 저널리즘을 “복구”하고, 언론개혁을 열망하는 시대에 맞춘 공영언론 정체성을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정 사장은 최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사장) 연임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글에서 “디딤돌 역할을 자임했는데, 지난 3년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니 의욕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면서도, 여러 성과를 강조했다. 와이티엔은 정 사장 취임 이듬해인 2019년부터 2년 연속 ‘미디어어워즈’ 공정성 분야 1위, 역대 최고 기자상 수상 실적(2019~2020년 17차례), 연간 시청률 역대 최고치 기록, 국내 언론사 최초 유튜브 200만 구독자 달성 등을 이루고,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이렇게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모두 상승 추세지만,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가 지명한 보도국장 내정자가 두 차례 부결되며 구성원들 사이에 누적된 상처와 갈등, 불신감이 드러났다. 정부의 와이티엔 공기업 지분 매각 의사 표명에 대응해야 했으며, 새로 영입한 프로그램 진행자 발언을 둘러싼 논란, 오보에 대한 사과도 잇따랐다. 지난 23일 정 사장을 직접 만나 지난 3년 동안의 성과와 한계, 와이티엔을 비롯한 공영언론의 책무에 대한 생각 등을 들었다.
―지난 14일 사내 글을 통해 3년 전 사장 공모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티비에스 사장 임기도 남겨두고 있었는데, 와이티엔 사장 공모에 응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그때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을 이끈) 촛불혁명 직후였다. 내가 초기에 ‘대전환기’ 이런 표현도 썼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전체 언론 지형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내가 어느 지점에 서서 일을 하는 게 좋은지 고민했다. 와이티엔이 절박해 보였다. 10여년 가까이 황폐화된 와이티엔 복구에 기여하자 결심했다. 와이티엔 사장 지원 때도 밝혔지만, 2018년 와이티엔이 ‘김경수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의원실) 압수수색’, ‘김기식 (당시 금융감독원장) 출국금지’ 등 큰 오보를 연달아 낸 게 충격이었다. 그런 오보를 내는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와이티엔) 안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와이티엔은 2008년부터 ‘낙하산 사장’ 반대 및 방송 공정성·독립성 싸움을 이어오며, 언론인 대량 징계·해직 사태를 겪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구본홍 당시 와이티엔 대표이사 사장 선출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 사옥 사장실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인 뒤 출입통제을 위해 문을 봉쇄하는 모습.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하지만 사내 글에서 “3년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니 의욕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티비에스의 성공이 워낙에 드라마틱했다. 거의 바닥에서 최고 위로 올라가는 상향 곡선. 와이티엔에도 그런 극적인 성장 모멘텀의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갖고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와이티엔에서의 성취가 아쉬운 건 맞다. 물론 와이티엔에서도 상승 곡선이지만, 여기서는 극적이기보다 ‘차분한’ 상승 곡선이라고 할 수 있다.(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무엇인가?
“‘시청자 주권주의’를 도입해서 뿌리내리도록 한 것이다. 시청자센터 역할을 키웠고, <시청자브리핑 시시콜콜>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매일 방송하고 있다. 와이티엔 시청자위원회도 온라인 실시간 대응이 가능토록 운영했다. 시청자가 올해 어린이날 프로그램 비판한 내용을 내년에 반영하면 너무 늦다. 이는 시청자들과 뉴스를 만드는 구성원들 간의 인식·정보의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뉴스의 ‘꼰대화’를 막으려는 노력이다. 언론사가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 화석화되고 적폐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변화하라는 게 아니라, 변화 요구를 받아들이고 흡수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토론 과정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뉴스 조직이 그런 토론 시스템이 갖추지 않고서 일방향적 주입식 콘텐츠만 내보내면 못 벌어 먹고산다고 생각한다.
<뉴있저>(‘뉴스가 있는 저녁’) 같은 프로그램을 주요 뉴스쇼로 안착시키는 등 뉴스 콘텐츠 형식을 다양화하고, 코로나19 보도의 최전선에서 중심을 잡고자 노력한 점도 성과라고 본다. (코로나19 관련) 잘못한 보도도 없진 않지만, 팩트체크에 앞장섰다. 기획탐사팀의 ‘[팩트와이] 코로나19 팩트체크 연속보도’는 올해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가 주는 ‘한국팩트체크’ 대상도 받았다.”
―와이티엔은 과거 ‘낙하산 사장’ 취임 뒤 대량 해직·징계 사태, 보도 독립성 훼손 등 정권의 ‘방송장악’ 직격탄을 맞았다. 사장으로서 와이티엔 ‘복구’ 과정은 어떻게 평가하나?
“취임 전 만들어진 ‘미래발전위원회’의 활약으로 제도적 청산은 이뤘지만, ‘공정보도’에 대한 가치관, 기준, 실행방안 등에 대해 모든 구성원을 충분히 설득하고 합의를 이루는 데는 못 미쳤다. 과거에 대해 반성을 했으면, 그다음에는 앞으로 권력 비판 보도, 환경 감시 보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했다. 비판이 비난의 동의어는 아니다. 권력은 무조건 비판만 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관련한 ‘룰’을 만드는 미팅을 계속했다. 사장으로서는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갖고 토론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발제하는 과정이었다.”
와이티엔 <시청자브리핑 시시콜콜>의 방송 모습. 유튜브 영상 갈무리
―재임 시절 정부가 와이티엔 대주주인 공기업들의 지분을 매각하려는 의사를 내비친 일도 있었다. 당시 와이티엔의 공식 입장은 지분 매각 반대였다. 입장 변화는 없나?
“여전히 반대다. 매각은 자본시장에 맡긴다는 뜻인데, 자본의 속성을 너무 안일하게 본 것이다. ‘착한 기업에 매각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기업가의 선의만 믿고 위험성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공적 소유로 두고 공영방송 책무를 사회가 강제할 수 있는 구조가 유효하다고 본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이나 <에스비에스>(SBS) 등 민영방송에 일정 정도 규범·규정을 지키라고 할 순 있어도, 한계가 있다. 와이티엔은 상법상 코스닥 상장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공영방송이 왜 이래’ 이러면서 비판을 하고, 그러한 시청자들의 매서운 추궁에 고개 숙여야만 하는 구조다.
또 내가 문화방송, 티비에스를 포함해 공영방송에 머물다 보니 ‘체질적 공영론자’일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민영방송에서 일했다고 가정해보면, <여성시대> <시선집중>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뉴스공장> <뉴있저> <정면승부> 등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적소유지만 상장기업 형태인 ‘중간모델’의 약점은 보강하고 강점을 살려내는 제도적 보완이 더 나은 해법일 것이다.”
―39년을 공영방송에 머물렀다. 이 시대 공영방송의 핵심적 공적 책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영언론은 민영언론이 사익을 추구하려다 저지르는 잘못을 찾아내어 지적하고 진실을 알려주면 된다. 또 시대적 결핍을 채워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진실, 치유, 위로, 솔루션이 필요한 시대다. 불필요한 편 가르기, 혐오와 괴롭히기에 일조하는 대신, 논리적 해결을 서포트해야 한다. 토론을 할 때 상대방을 지나치게 상처 내기보다, ‘듣다 보니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대화가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재임 중 사내 직분(구성원을 호봉직, 일반직, 연봉직 등으로 나눈 상황을 의미) 간 차별 해소 문제가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와이티엔을 포함해,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이 만연한 방송계에서 노동권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차별을) 완벽하게 해소하진 못했다. 창의성·효율성이 중요한 이 산업 자체가 프리랜서 전혀 없이 정규직만으로는 작동할 수 없다. 그런데 ‘막내 작가’의 경우처럼 창의 영역과 구별되어야 하는 특성도 있다. 티비에스에서는 작가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감에 안 빠지게 하는 데까진 성공했다. 와이티엔에서도 노사협의체를 만들어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직분별 임금체계를 합리화하고자 한다. 한번에 완성된 형태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장기적 목표로서 정규직과 프리랜서가 격차를 느끼지 않고 함께 일하고 싶은 조직으로 진화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열린 ‘와이티엔 보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원과의 대화’ 모습. 와이티엔 제공
―“오보를 시스템적으로 줄이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오보와 사고는 발생한다.
“결정적인 허위사실 보도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책에 의한 사고는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험하다. 최근에 일어난 사고(지난 17일 와이티엔은 성폭행범이 감형받은 뉴스를 전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배경에 띄운 방송사고를 내고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음)도 고의가 아닌 실책이지만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맥락이 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보도와 관련해 언론이 성실한 전달자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거센 비판과 질문을 받던 와중에 터진 사고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과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청자들의 모니터링이 매우 빠르고 정밀한 ‘집단지성’ 수준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 시스템을 내부심의시스템과 연결해 징후를 미리 읽고 지체 없이 반영하는 예방 장치, 그리고 사고 발생 때 신속하게 대응할 장치를 마련하고자 한다. 스포츠 경기 중에 실수해서 당혹해하는 선수에게 ‘괜찮아’ 하며 관중들이 연호하고 응원해주는 장면을 보면, 선수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신뢰를 많이 쌓은 경우에 해당한다. 와이티엔이 실수를 하더라도 시청자들에게 ‘괜찮다’는 응원을 받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방송의 ‘기계적 중립’을 벗어나고자 노력해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에선 보도의 공정성과 정파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진다. 이에 대한 생각은?
“나는 <뉴스공장>도 그렇고, 굉장히 단순하게 본다. 법 위반인가? 심의규정 위반인가? 가능하면 법과 심의규정을 위반하지 말고 진실과 팩트를 전하자는 것. 지나치게 편향적이면 선거법이나 불공정에 관한 심의규정, 윤리위반 등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회사 내 공정성과 관련한 토론 기구들로 균형이 잡히게 되어 있다. 관점이나 생각은 자유다. 보도의 경우 팩트로 가야 하고, 해설은 회사 입장이 들어갈 경우 정제되어야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나 색깔은 존중되어야 하는 게 맞다. 서로 다른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거니까. 위법이거나 허위사실이거나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그런 것만 필요한 경우 징벌적 책임까지 포함해서 막으면 되지 않나 생각한다.”
―기자수첩이 아닌, 사장실에서 언론윤리헌장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이 보도가) 보도준칙에 부합되나’ 이런 걸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과거에는 언론인들이 진실 추구를 위한 선언을 하면 잡혀가는 시대가 있었다. 1987년 6월항쟁 뒤 ‘6·29 선언’에서 “언론자유의 창달”이라는 언급을 하는 걸 보고 가슴이 뛰었다. 그 뒤 <한국방송>(KBS)에서 밤늦게까지 시사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방송하는 걸 보고 ‘이런 게 언론자유의 창달인가보다’ 생각했다. ‘언론자유’ ‘진실’ 이런 게 모두 역사적 맥락을 갖는다. 강령, 준칙, 방송법, 심의규정 등을 근거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코로나19 초기, 보도 제목에 ‘패닉’ ‘공포감’ 같은 단어를 쓴 걸 보고, 감염병 보도준칙을 찾아서 보도국에 전달하는 식이었다. 경영, 보도와 관련해 ‘사장 제언’이라는 형태로 사내 게시판에 올린 의견 글만 100건이 넘는다.”
정찬형 사장이 23일 서울 마포구 와이티엔 사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도중 사장실 책상 옆 기둥에 붙여둔 언론윤리현장을 떼어내 보여주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연임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력이 나빠졌다. 근력도, 기억력도 나빠졌다. 분별력은 어떻겠나.(웃음) 난 39년 동안 최일선, 프론트에서 일했다고 생각한다. 여백이 너무 없었다. 내가 빠져도 만들어놓은 성과에서 후퇴하는 건 불가하다고 봤다. 후퇴하면 조직원 모두에게 손해일 테니까. 완결은 아니지만 공익과 조직의 이익, 그리고 개인의 이익이 싱크로나이즈(동조)되도록 힘썼다. 오보를 하면 본인한테 큰 책임이 돌아가고, 잘하면 칭찬·포상받는 구조로 바꾸는 작업 중이었는데, 이러한 구조에 기업 존망도 걸려있다고 본다. 그런 고민이 이어져서 멋진 이어달리기가 계속되길 바란다.”
―향후 계획은?
“임기가 끝나는 9월까지는 마지막까지 (와이티엔 사장으로서) 소임을 다할 것이다.”
정 사장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기본”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언급했다. 그는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에 언론윤리헌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30여년 전 문화방송 노동조합에서 민주화실천위원회 간사로 일할 때도 기본을 강조하는 일을 해왔다. 지금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이렇게 답했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한, 자리나 위치가 바뀌었다고 해서 기본을 소홀히 할 순 없다는 의미다. 사장, 기자, 피디 등 모든 구성원이 기본을 지켜야 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