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이사회가 수신료를 현행 월 2500원에서 월 38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의결했다. 이 안이 확정되려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국회를 거쳐야 한다. 대선을 앞둔 상황이라, 시청자들이 직접 받아 보는 관리비·전기요금 고지서에 언제쯤 반영될지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방송 이사회는 30일 오후 열린 제987차 정기이사회에서 ‘텔레비전방송수신료 조정(안)’을 의결했다. 지난 1월27일 이사회에 수신료 조정안을 상정한 지 155일 만이다. 당시 한국방송 경영진은 현재 월 2500원인 한국방송 수신료를 월 384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내놨다. 그 뒤 이사회는 이사회 회의, 비공개 간담회 등을 포함해 총 27차례 심의했다. 30일 이사회가 최종 의결한 수신료 조정안은 애초 상정된 월 3840원보다 40원 줄인 월 3800원이다. 2시간30여분간의 회의 진행 뒤, 표결을 통해 찬성 9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의결됐다.
수신료 계산은 한국방송 경영진이 8개 과제, 37개 사업으로 구성한 ‘공적책무 확대 사업계획’에 의한 예산 1조9941억원(수행 기간 2022~2026년)과 한국방송의 비용 절감 및 수입 확대 등 조직·경영 부문 자구노력 계획안, 중기수지전망 등을 반영해 이뤄졌다. 8개 과제는 △시청자 주권과 설명책임 강화 △공정‧신뢰의 저널리즘 구현 △국가 재난방송 거점 역할 확립 △고품격 공영 콘텐츠 제작 확대 △디지털 서비스 확대 및 개방 △차세대 방송 서비스 역량 확대 △지역방송・서비스 강화 △소수자 포용과 다양성 확대이다. 과제별로 ‘팩트체크 케이(K)’ 센터와 기후재난 대응 전담조직 설치 운영, 정통 대하 역사드라마 제작, <교육방송>(EBS)을 포함한 중소·지역 미디어 다양성 지원 등 37개 세부 사업이 포함돼 있다.
이사회는 “한국방송의 공정성·독립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수신료 조정안을 반대한 황우섭 이사의 의견을 반영해, 현 조정안에서 공정성 강화를 목표로 시청자위원회 산하에 설치하기로 한 ‘저널리즘 강화 특별 소위원회’의 운영 규정을 일부 구체화했다. 시청자위원을 사장이 임명하는 것을 감안해, 경영진이나 이사회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사회의 4분의 3이 동의하는 인사들로 소위를 채우는 임명 절차를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이사회 회의에 참여한 한국방송 경영진은, 이번 수신료 조정안이 과거와 달리 국민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된 결과임을 강조했다. 한국방송은 지난 2019년 학계, 시민단체, 회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공영미디어 미래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공영방송이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만들었다. 한국방송은 이 보고서를 밑그림 삼아, 12개 과제 57개 사업으로 구성한 최초 조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한국방송이 최초로 실시한 국민 공론조사 결과를 반영해 수정안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한국방송 경영진은 지난 5월 이사회 권고에 따라 언론3학회(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추천을 통해 수신료 인상을 논의할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 달 5월22~23일 국민참여단 200명이 참여하는 공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국민참여단은 한국방송이 경영·회계 정보를 보다 투명하게 제시하여 국민 감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안하는 등 한국방송의 자구노력 및 설명책무를 우선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한국방송 경영진은 이날 수신료 조정안에서 △인력감축과 직무재설계 등으로 향후 5년간 인건비 약 2600억원 절감 △공적 책무 확대에 투입되는 수신료 인상분과 별개로, 기본 운영예산은 현재의 연간 예산 수준으로 억제 △콘텐츠 수입 확대, 유휴자산 매각 등으로 약 2000억원의 부가수입 마련 등을 제시했다. 또한 지난 5월 공론조사 방식으로 한국방송의 공적 책무 수행 평가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안을 정례화하고, 프로그램별 제작비 원가 내역 공개 등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실천방안을 담았다.
만약 이번 이사회 의결안이 국회를 통과해 최종 시행될 경우, 한국방송의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46%에서 58%(2022~2026년 평균 전망치)로 올라간다. 방송법 제56조는 한국방송의 경비를 수신료로 충당하도록 명시했지만, 그동안 한국방송은 재원 대부분을 광고수익으로 메꿔왔다. 하지만 한국방송의 광고수입은 미디어 환경 변화 및 방송광고 시장 상황 악화로 2015년 약 5000억에서 2019년 약 2500억원으로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한국방송으로서는 40년째 제자리걸음인 수신료를 ‘현실화’하며 공적 재원 비중을 늘린다는 입장이지만, 지금보다 52%(1300원) 오르는 수신료 인상안이 국민을 설득시키고 국회를 통과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방송은 이사회 의결안을 7월5일 방통위에 제출할 계획이며, 방통위는 한국방송의 의결안을 60일 안에 검토하여 국회로 넘겨야 한다. 국회에서는 소관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한국방송은 2007년, 2010년, 2013년 세 차례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으나, 단 한 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여야 간 정치적 대립이 첨예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을 둘러싼 국민 여론도 우호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지난 1월28~31일 <미디어오늘>과 ‘리서치뷰’가 전국 만 18살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수신료 인상안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76%에 달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 6.7%). 찬성은 13%에 불과했다. 양승동 한국방송 사장은 이사회 의결 다음날인 7월1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수신료 조정안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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