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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협회 ‘부수 조작’ 부메랑…문체부 “광고집행 활용 중단”

등록 2021-07-08 20:05수정 2021-07-09 09:22

지원금 잔액 45억 환수도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ABC협회에 권고한 제도개선 조치사항에 대해 최종 이해 여부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ABC협회에 권고한 제도개선 조치사항에 대해 최종 이해 여부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력 신문사들의 입김 아래 종이신문 판매 부수를 부풀린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한국에이비시(ABC)협회가 결국 철퇴를 맞았다. 정부는 앞으로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정부 광고를 집행할 때 에이비시 부수공사(조사) 결과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09년 정부가 에이비시에 참여한 언론에 대해서만 정부 광고나 지역신문발전기금 등을 집행하기로 제도화한 지 11년 만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8일 이런 내용을 담은 ‘한국에이비시협회 사무검사 조치 권고사항 이행 점검결과 및 향후 정부광고제도 개편계획(안)’을 발표했다. 한국에이비시협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종이신문과 잡지 등의 발행·유료 부수를 공식 인증해주는 민법상 법인으로, 정부가 협회에 행정·재정적 개입을 할 수는 없다. 문체부는 지난해 협회 내부고발자가 제기한 ‘부수 부풀리기’ 관련 진정서를 접수한 뒤 민법에 근거한 사무검사를 벌여 의혹 일부를 사실로 확인하고, 지난 3월 제도 개선 조치 17건을 ‘권고’한 바 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권고 조치 이행 시한인 6월30일 협회가 제출한 최종 보고를 토대로 이행 여부를 점검한 결과, 권고사항 총 17건 중 불이행 10건, 이행 부진 5건, 이행 2건이었다”며 “제도 개선을 위해 실질적인 이행 결과나 의지가 미진해 종합적으로 조치 권고를 불이행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문체부 점검결과를 보면, 협회는 표본지국 제3자 참관 및 공사원 무작위 배치 등 공사방식의 근본적 개선 권고에 대해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매체사·지국 등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답변해 ‘불이행’ 판단을 받았다.

문체부는 점검결과에 따라, 에이비시 부수공사의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고 대체 지표를 마련해 2022년부터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2009년부터 정부 광고 및 각종 지원금을 받으려는 언론사에 대해 에이비시 참여를 ‘최소 자격요건’처럼 제시했는데, 앞으로는 에이비시에 참여하지 않는 언론사도 정부 광고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기준 정부 광고 총액은 1조893억원 규모이며, 이 가운데 신문 등 인쇄매체에 집행한 정부 광고는 2452억원에 달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우송지원(16억원), 소외계층 구독료 지원(18억원) 등의 사업에서도 집행 기준으로 활용했다. 지역언론발전기금도 에이비시 참여를 지원 조건으로 뒀다. 문체부는 또 과거 에이비시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한국에이비시협회에 지원했던 공적자금 80억원 가운데 잔액 약 45억원 환수를 추진한다.

문체부는 ‘구독자 조사’ 등을 통한 대체 지표를 만들어 활용할 계획이다. 구독자 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전국 5만명을 대상으로 열독률(지난 1주일 동안 열람한 신문), 구독률 등을 대면조사로 알아본다. 문체부는 “구독자 조사,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 및 자율심의 결과 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 이행’과 관련한 항목을 핵심지표로 삼고, 참고지표로 포털 제휴, 정상 발행 여부, 인력 현황 등 복수의 지표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올해 말까지 이러한 내용의 시행령·법률 개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은 10월까지 완료하고, 법률 개정은 의원들과 협의해 12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또한 올해 실시할 구독자 조사 때, 피시(PC)·모바일 열람을 포함한 ‘결합열독률’ 조사 방식 도입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가 에이비시 부수공사 결과를 공적 지표에서 퇴출하는 안을 공식화함에 따라, 에이비시협회에 가입한 언론사들의 탈퇴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1989년 창립한 한국에이비시협회는, 2008년까지 가입 언론사가 287곳에 불과했지만, 정부 광고와 연동된 이후 가입 언론사가 1591곳(2021년 3월 기준)으로 늘었다.

에이비시협회는 이날 문체부 결과 발표 뒤 입장문을 내어 “협회는 지난 4월 문체부에 상반기 부수공사 때 병행조사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문체부는 협회의 병행조사 제안이 문체부 공동조사단의 구성 및 활동에 대한 비협조로 판단된다며 거절했다”면서 “올해 하반기에 문체부, 학계 등 제3자가 모든 부수공사 절차를 검증하는 안도 6월30일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체부는 “표면적인 이행 약속과 달리, 협회 본연의 업무인 부수공사 제도를 정상화하기 위한 구체적·적극적인 이행 노력이나 의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평가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에이비시 부수인증제의 신뢰도 추락 문제에 대해 “협회와 유력 신문사들이 ‘자초’한 것”이라며, “정부로서도 신뢰도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 에이비시를 더는 공적자금 집행 지표로 사용하지 않는 게 마땅하다”고 입을 모았다. 언론 보도와 정치권의 문제 제기를 통해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신문이 해외로 수출돼 과일 포장지로 쓰이는 등 협회가 발표한 판매 부수 현황과 동떨어진 정황이 꾸준히 공론화됐지만, 협회와 유력 신문사들은 침묵해왔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현행 에이비시제도는 제도 자체의 결함보다는 불투명한 운영이 문제”라며, “제도를 어떻게 고치든 언론사들이 전반적인 신뢰도 제고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정부 광고를 둘러싼 문제는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심 겸임교수는 또한 일각에서 정부 조치에 따른 ‘언론자유 위축 효과’를 제기하는 것과 관련해, “정부가 민간 광고시장이 아닌, 공적자금 집행 지표로 쓰는 걸 직접 관리·감독하겠다는 취지라서 언론자유와는 무관하다”며 “언론자유 침해가 우려되는 언론사는 정부 광고를 받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문체부가 발표한 에이비시의 대체 지표 가운데 ‘언론의 사회적 책임’ 항목에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 건수를 포함시킨다는 계획과 관련해, 기자회견에서는 “언론사가 광고 수주 불이익을 고려해 중재를 거부하고 소송을 선택하는 등 언론중재제도 취지에 어긋나는 결과를 나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황희 장관은 “직권조정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저희 지표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면서도 “추후 언론인, 언론단체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지표를 보완하겠다”고 답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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