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한잘알> 운영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23일 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유튜브를 하지 않았다면 저 자신에게 불만스러워할 것 같았어요. 인간에게 언어와 문자 생활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김언종(69)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는 꼭 2년 전에 유튜브 채널 <한잘알>을 열었다. ‘한자를 잘 알려드립니다’ 준말로 구독자는 현재 5700여 명이다. 곽상도·나훈아 같은 뉴스 인물이나 무운·요소수·지옥·화천대유처럼 시의성 있는 뉴스 키워드를 골라 그 한자의 어원이나 처음 쓰인 용례 등을 알려준다. 지난해 추석 이후 올린 ‘나훈아가 ‘가황’이 된 사연을 아시나요’ 편은 15만이 넘는 조회수를 올렸다. 지난 3월부터는 매주 2시간 ‘한잘알의 횡설수설 사서삼경’이라는 이름으로 <논어> 실시간 강의도 한다.
국립대만사범대에서 정약용의 논어 주해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2003년부터 꼬박 17년 동안 고려대 평생교육원에서 동양 고전인 사서삼경 강의를 무료로 해왔다. 수강생이 150명 가까이 됐던 이 인기 강좌가 코로나로 멈추면서 그 대안으로 찾은 게 <한잘알>이다. “유튜브 강의는 코로나가 진정돼도 계속할 것 같아요. 대면 강의는 한번 하면 그만이지만 유튜브는 영상이 남아 사람들이 두고두고 보더군요.”
지난 23일 서울 왕십리역 근처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의 말이다.
“국어 기초를 닦아주는 한자를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려고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정작 젊은이들은 별로 보지 않아 속상해요. 채널 이름을 지어주고 처음 유튜브 영상 몇 편 올릴 때 도와준 아들도 요즘은 안 보는 것 같아요. 아들이 영상이 길면 안 본다고 3분 이하로 줄이라는데 쉽지 않네요.”
신문 연재물을 바탕으로 <한자의 뿌리>(전 2권, 2001년)라는 책도 낸 김 교수가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때는 1990년대 중반으로 올라간다. “대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국한문 혼용 글귀 안에 있는 幸不幸(행불행)을 두고 ‘행불행’파와 ‘신불신’파로 갈리더군요.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죠.”
한국 유림 본향인 경북 안동에서 난 김 교수는 어려서부터 의성 김씨 25대손으로 유학자로 생을 마친 부친(고 김시박 선생)에게 한자를 배웠다. 경희대 국문학과 시절에는 청명 임창순 선생을 한문 스승으로 모셨고 대만 유학 뒤에는 부친의 친구인 벽사 이우성 선생에게 20년 이상 경학과 한문을 배웠다. 4·19 뒤 무소속으로 경북도의회 부의장을 지낸 부친은 박정희가 쿠데타로 도의회를 해산하고 1967년에 정치를 함께하자고 회유했을 때 불의한 세력과 손잡을 수 없다며 뿌리치고 여생을 주경야독의 삶을 살았다. 8남2녀 중 다섯째 아들인 김 교수는 2012년에 동생 김승종 연성대 교수와 함께 부친 유고를 모아 <만포 김시박 전집>(전 3권)도 냈다.
‘한국에서 한자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김 교수는 한자를 알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최남선 기미 독립선언서를 순 한글로 써놓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몰라요. 하지만 한자를 알면 한글로 써놓아도 뜻을 알 수 있어요. 지금은 노비가 절반이나 됐던 조선 시대와 달리 모든 생명이 다 귀하고 평등한 시대잖아요. 한자를 배워 모두 교양인이나 지식인이 돼야죠. 한자를 알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말한 ‘무운을 빈다’에서 무운을 ‘운이 없다’로 풀지 않았겠죠.” 그는 “한자 학습은 가성비가 엄청 좋다”고도 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힘들어도 사회에 나오면 정보나 지식 습득이나 활용에서 무진장 쓸데가 많아요. 국어 어휘의 약 70%가 한자 낱말이라 우선 단어 외우기가 쉽죠. 이름도 한자를 알면 금방 외우잖아요. 한자는 또 한·중·일 공통분모여서 세 나라 사람들의 상호 이해에 도움을 주죠. 한자를 알면 오른손과 왼손에 한글과 한자 쌍칼을 드는 것과 같아요. 일본이 바보여서 중·고교에서 한자 1800자를 가르치겠어요.” 그는 스승인 청명 선생도 한글전용론자였다며 “한자를 한글 병기 없이 그대로 쓰는 국한문혼용은 바라지 않는다. 다만 아리송한 우리말에 한자를 병기하는 국한문병용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자 알려주는 ‘한잘알’ 채널 3년째
‘가황 나훈아’ 편 조회수 15만 ‘대박’
뉴스 인물·키워드로 어원·용례 설명
3월 이후 ‘사서삼경 논어’ 강의도
“국어 기초 닦으려면 한자 알아야
만민평등·대동세상 공자 정신 더 절실”
한자 공부로 세상과 사람에 대해 배운 게 있는지 물었다. “한자 자체가 윤리 도덕적 성격이 있어요. 두 사람을 표현한 어질 인(仁)을 보세요.
상대방과 사랑, 믿음을 공유한다는 뜻이잖아요. 왜 속일 인이라고 하지 않고 어질 인이라고 했겠어요. 믿을 신(
信)도 나눠 보면 ‘사람의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믿음이란 뜻을 담았어요. 사람의 말은 믿음직해야 한다는 거죠.”
유학 시조인 중국 고대 사상가 공자를 가장 존경한다는 김 교수는 “유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좋은 약”이라고도 했다. “최근 한 기사를 보니 한국이 물질 추구에서 세계 1위라고 해요. 물질 문명을 정신 아래에 두는 유학과는 완전히 어긋나죠. 공자는 만민평등을 말하며 ‘대문 밖에 나가면 모두 다 귀빈으로 대우하라’고 했어요.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서’(恕) 사상도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조선 500년 동안 사서삼경을 달달 외운 지식인은 많았으나 공자 정신을 또렷이 실천한 사람은 거의 없어요. 다산도 만민평등을 말하지는 못했어요. 노비의 존재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죠.” 그는 “공자의 언행이 담긴 <논어>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대동사회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좋은 지혜가 담겼다”며 “기독교, 이슬람, 불교를 믿는 분들도 다 읽어야 한다”고도 했다. “공자를 안 사람들은 공자와 한 시대를 살았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고 공자의 죽음을 모두 슬퍼했어요. 모든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죠.”
그는 자신의 <한잘알> 사서삼경 강의를 두고 “공자가 말한 원뜻을 정확히 밝혀 공자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 수업”이라고 소개했다. “유학을 집대성한 주자 사후 800년 동안 지하출토 유물은 물론 훈고학 쪽에서 위대한 학자들이 많이 나와 공자가 처음 말한 본래 뜻을 두고 새로 밝힌 게 많아요. 제가 평생 공부한 분야죠.”
1989년 공자 탄신 2540년 기념 학술대회장에서 김언종(왼쪽) 교수와 부친 고 김시박 선생(오른쪽)이 사진을 찍었다. 가운데는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쉬웬허 교수. 김언종 교수 제공
김 교수의 유튜브 강의는 여느 고전 강의와 달리 웃음과 활력이 넘친다. “한때 코미디언을 꿈꿨죠. 그 쪽으로 갔다면 임하룡 같은 인기 코미디언이 되었을 겁니다. 하하.” ‘유튜브 수입’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유튜브 쪽에서 구독자가 천 명 되면 광고 수익을 신청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하지 않았어요. 구독자가 10만이 되도 안 하려고요. 제가 유튜브 덕분에 유학의 정수를 널리 알리고 있으니까요.” 그가 18년 전 무료강의에 나선 데도 사연이 있다. “2002년 미국 스토니브룩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김수곤, 임원기 선생 등 한인 정신과 의사들이 한국학 전공 운영에 쓰라고 대학에 거액을 내놓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나는 남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귀국 이듬해 무료강의를 시작했죠.”
한자를 잘 아는 김 교수에게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리송한 한자 낱말이 꽤 된다. 죽음을 일컫는 소천(召天)이 대표적이다. “하늘을 부른다는 뜻인데 왜 죽다가 되는지 알 수 없어요. 주로 기독교도들이 쓰는데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정년퇴직에 들어가는 머무를 정(停)도 맘에 들지 않는단다. “머무를 정은 말은 되는 데 기분은 안 좋아요.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잖아요. 정할 정(定)을 쓰는 게 낫지 않겠어요.”
가장 좋아하는 한자는 마땅할 의(冝)란다. “제사상에 2층으로 고기를 올리는 형상이죠. 제사를 지내니 부끄러움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요즘은 제사 말고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조상을 추모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하자 그는 “공자도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고 사치보다 검소가 낫다고 했다”고 받았다.
그는 대만 유학 8년 만인 1986년에 다산의 <논어고금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왜 다산 경학이었을까? “주자학의 핵심인 사서삼경을 아시아에서 주자와 가장 다르게 해석한 분이 다산입니다. 주자 해석을 두고 질문을 가장 많이 했고 이의 제기와 반박도 가장 많이 했죠. 주자와의 해석 전쟁이죠. 그러니 살펴보면 얼마나 재밌겠어요. 예컨대 주자는 <논어>의 핵심인 인이 마음 속에 있다고 했지만 다산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측은지심이고 이게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가 인이라고 봤어요. 일본 유학자 이토 진사이도 앞서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우연의 일치죠.”
그가 대만 유학을 간 것도 청대 학술사에서 다산이 어느 정도 위치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가서 보니 중국 학자들은 다산을 잘 인정하지 않더군요. 도도히 흘러가는 주자학의 큰 물살에서 가벼운 물살 정도로 치부해요. 주자학을 부정했던 청나라 초기 학자 모기령의 아류 쯤으로 보더군요.”
적지 않은 나이에 신문물 유튜브를 배워 공자의 만민평등과 대동세계 사상을 설파하는 게 유학의 현실 참여 정신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김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유학의 정신은 현실과 부딪히는 것입니다. 유가는 해도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는 사람들이라고 노자 쪽 사람들이 비판하자 공자가 이렇게 말했죠. 난 짐승과 사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산다고요. 대동사회로 한발짝이라도 나아가려면 세상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행동이 필요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