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21일까지 6차례 보도한 ‘나의선거, 나의공약’ 기획에는 18명 기자가 취재에 투입됐다. 취재부서 기자 8~9명 중 1명 꼴로 참여한 셈이다. 시민 139명의 인터뷰 내용만 원고지 6335장이다. 매회 7꼭지 기사에 4개 이상 지면을 할애했을뿐 아니라 디지털도 ‘단독’에 준하는 기준으로 출근시간대 홈페이지 톱과 네이버 모바일 채널에 걸었다.
<한국방송>(KBS)의 ‘당신의 약속, 우리의 미래’는 전문가 110명에게 물어 뽑은 36개 의제를 국민 설문조사를 거쳐 10개로 압축한 뒤 전문가와 함께 각 후보 공약을 검증한다. 지금까지 6개 의제가 나갔는데 방송사 메인뉴스에선 보기드물게 10분 넘는 리포트도 있었다. 역시 디지털 ‘핫픽’ 코너에 이 기사를 배치했다.
언론재단과 한국언론학회 등이 지난 8일 연
‘제20대 대선보도 점검’ 세미나에서 박영흠 협성대 교수와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정책보도가 실종된 이번 대선에서 주목할 노력사례로 공히 이 기획들을 꼽았다. “유권자에서 출발”한 관점이란 점에서 여타 공약비교 기사들과도 구분된다. 1·2위 후보의 ‘오차범위 내’ 차이에도 의미를 부여하거나 해외 온라인베팅업체의 당선확률까지 전하는 부정확한 여론조사 보도 과잉 속에, 무응답층에 주목한 <경향신문>의 ‘2030 무가당’ 역시 차별성 있는 기획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전체 보도흐름을 바꾸진 못한다. 뉴스소비의 72%가 이뤄지는 포털(<디지털뉴스 리포트 2021>)에서 해당 언론사의 많이 본 뉴스 랭킹에 올라간 경우도 거의 없다.
”포털이 사악해서? 포털 구조 자체의 한계!”
서강대에서 문화연구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언론노조 전문위원으로 활동중인 이준형씨는 매일 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그는 26개 시민단체와 언론단체가 지난달 출범시킨
‘대선미디어감시연대’에서 포털 모니터링팀장을 맡고 있다. 최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포털이 사악하다거나 알고리즘이 보수편향이라는 식의 주장은 늘 제기돼왔지만 별 소득없이 공방으로 끝나곤 했다. 사실 알고리즘은 상당부분 공개돼 있기도 하다. 실제 언론사와 포털, 뉴스소비자가 만나 발생시키는 결과를 보여주고 포털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작업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다시 포털 보도를 모니터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대선미디어감시연대에서 포털 모니터링팀을 맡고 있는 이준형 언론노조 전문위원. 김영희 선임기자
포털팀은 중앙과 지역일간지·방송·통신·인터넷신문 등 50여개사를 대상으로 매일 오전 11시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 톱 5를 추출해 키워드로 대선보도를 추려낸 뒤, 정책정보유형·세부주제·복합적 관점 정도·이해 당사자수·직접 인용취재원·뉴스길이 등의 항목에 따라 코딩한다. 이에 따르면, 지난 1월17일부터 2월20일까지 세부주제가 ‘정책’인 기사는 많이 읽힌 대선기사의 7.2%에 불과했다. 상세한 분석과 정보를 담은 ‘상세정책’ 기사는 그 중 3분의 1도 안된다. 반면 후보 및 후보 부인 등 논란은 많이 읽힌 기사의 44% 이상을 차지한다. 직접 인용취재원이 0인 기사가 82% 이상이라는 통계는 기자회견·유세현장 기사를 포함시킨 것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언론소비자에 전달되는 대선보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이 위원은 “다수 언론사가 동일한 플랫폼에서 경쟁하며 기사를 쏟아내며 전화한번 돌리지 않는 기사들이 양산되고 있다”며 “눈에 띄기 위해 제목이 더 선정적으로 되고 ‘단독’이 과잉사용되는 것도 포털 구조의 특징”이라고 짚었다.
네이버는 언론사에 편집권을 맡겼다고 하지만, 규격이 정해진 틀에 텍스트 4줄 썸네일 2개로 제한된 표출방식에선 기사의 심층성은 물론 분량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포털의 구조 자체가 언론사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환경 탓만 할순 없다. 최근 출간된 <한국의 정치보도>에서 김창숙 이화여대 연구교수는 2010년 이후 디지털기술 변화에 따라 발품취재가 아니라 ‘손품취재’, 대면취재가 아니라 ‘원격출입기자’가 늘어난 상황을 짚으면서도 “집단 취재문화, 단순중계식 보도, 주요 정치인 중심의 보도 등 근본적 취재방식과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야권 단일화’ 같은 이슈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며 ‘정치 플레이어’가 된 보도사례를 거론하며 “기성언론이 유튜브·에스엔에스·포털에 대해 확증편향, 필터버블을 비판할 자격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털 구조로 인해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게이트키핑이 느슨해진 이슈몰이 기사가 확대생산된다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언론노조 보고서는 알고리즘 자체의 정치적 편향보다 조회수와 체류시간 위주라는 특성 자체, 그리고 언론사의 ‘디지털 인프라’에 따른 포털 대응 양극화와 언론사의 ‘성과압박’이 포털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미디어오늘><한겨레><노컷뉴스><경향신문> 등은 각사 많이 본 뉴스에서 선거기사 비중이 높았지만 전체 많이 본 뉴스의 평균 조회수를 웃돈 기사건수는 적었던 반면, 대규모 독자분석 및 통합CMS 시스템 투자와 디지털인력을 대거 채용한 <조선일보><중앙일보>는 알고리즘의 한계를 파고들어 보도건수와 평균 조회수 상회건수가 일치하는 ‘효율성’을 보였다.
지난 8일 한국언론진흥재단·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대선보도 점검 세미나 현장. 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기자들은 오전부터 발생 스트레이트를 쓰고 취재를 더해 별도 기사를 오후나 저녁 또다시 출고하기도 하지만, ‘즉시성’이 중시되는 디지털에선 이미 이슈가 다 소비되거나 프레임이 정해진 경우가 흔하다. 관련기사가 유기적으로 배치되고 크기에 따라 기사 중요도가 구분되는 지면과 달리, 디지털 세계에선 3000자짜리 심층기사나 600자짜리 단순 스트레이트나 똑같은 하나의 기사일뿐이다. ‘나의선거 나의공약’ 기획을 맡았던 이재훈 기자는 “디지털은 기사가 분절돼 맥락이 전달되지 않는 탓이 가장 큰 것 같다. 이번에 에스엔에스엔 회차별로 모든 기사 주소를 묶고 지면 피디에프 갈무리까지 함께 보여줬는데 이런 경우 조금 더 좋은 반응이 오더라”고 말했다.
언론재단 세미나에서 정준희 교수는 심층성, 지역언론, 팩트체크 같은 기사들에 더 페이버(혜택)를 주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언론사의 ‘유통방식의 전환’ 노력을 더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영흠 교수는 통화에서 “포털 구조에 대해 언론들이 점점 ‘포기 상태’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심층 기획기사는 ‘의무감’, 신랄하게 말하면 좋은 저널리즘을 하고 있다는 ‘알리바이용’으로 간간이 하되 ‘장사되는 기사’와 분리해서 사고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제조업은 물건 하나 출시할 때도 최적의 마케팅을 고민하는데 언론은 그동안 너무 게을렀다. 기획 단계부터 유튜브를 포함한 다양한 각각의 플랫폼에 최적화된 파생 콘텐츠를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0대의 언론독자이기도 한 이준형 위원은 “소비자의 ‘언론 혐오’를 탓하는 경우도 많지만 ‘기레기’로 표상되는 공세는 객관주의 저널리즘과 전문적 언론이 세계를 재현하는 데 있어 갖고 있던 헤게모니를 상실해가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봐야 한다. 엠제트세대는 신문과 방송을 안볼뿐 어느 세대보다 더 많이 뉴스를 각 플랫폼에서 소비하고 있다“며 “포털 구조만이 아니라 더 넓은 시야에서 뉴스 유통구조를 재구조화하는 고민을 할 때”라고 말했다.
김영희 선임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