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0일 <한국방송>(KBS)의 호반건설 ‘일감 몰아주기 의혹’ 관련 보도에 대해 호반건설이 한국방송과 기자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호반건설이 자사에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사와 기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연이어 청구하고 나섰다. 보도 당사자인 기자에게는 월급 가압류도 걸었다. 한국기자협회 등은 호반건설이 비판 언론에 대한 법적 대응을 본보기 삼아 후속 보도를 막으려는 것이라며 비판 성명을 냈다. 호반건설(호반그룹)은 지난해 <서울신문>과 <전자신문>, <이비뉴스>(EBN) 등 언론사를 인수하며 미디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한 건설사다.
31일 <한국방송>(KBS)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호반건설은 자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방침을 보도한 한국방송과 취재 기자를 상대로 정정 보도와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4월1일 서울남부지법에 냈다.
앞서 한국방송 <뉴스9>은 지난 3월 말 “공정위, 호반건설 2세 ‘일감 몰아주기 의혹’ 곧 제재” 제목의 기사에서 “재계 순위 37위인 호반건설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을 조사해온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제재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호반건설을 창업한 김상열 전 회장의 장남 김대헌 호반건설 기획부문 사장이 호반건설의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기업 승계 목적의 부당 지원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있고, 공정위가 곧 이에 대한 제재에 나설 것이라는 내용이다.
<뉴스9> 보도가 나오자 호반건설이 즉각 반응했다. <뉴스9>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각각 정정 보도를 신청하는 조정신청과 방송 심의 민원을 낸 것은 물론 법원에 손배소 등을 제기했다. 호반건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취재 기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금액에 대한 월급 가압류까지 걸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재계 순위 30위권의 기업이 언론사만이 아니라 기자 개인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그 월급에 가압류까지 거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언론중재법을 전공한 한 변호사는 “만약 손해배상 청구 금액을 실제로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기자가 아니라 변제 능력이 충분한 언론사를 상대로 가압류를 거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라며 “기자 월급 가압류는 소송 진행에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취재 기자에게 가장 고통을 줄 수 있는 행위라는 점을 (호반건설 쪽이)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호반건설이 자사에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로 맞선 사례는 또 있다. 한국방송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은 지난 4월 초 ‘누가, 회장님 기사를 지웠나’ 편을 통해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의 대주주가 된 뒤 이 매체에서
호반 관련 비판 기사 50여건이 삭제된 사건을 다뤘다. 호반 쪽은 보도 직전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도 이후엔 “피고들이 허위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원고(호반건설과 김상열 전 회장)들은 사회적 평가 내지 신용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피해를 보았다”며 한국방송과 기자를 상대로 정정 보도 및 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호반건설은 서울신문을 인수하기 전인 2019년 8월 김상열 전 회장 일가의 비리 의혹을 탐사보도한 서울신문의 편집국장 등 7명을 검찰에 특수공갈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한 적도 있다. 당시 호반건설과 서울신문의 갈등은 이듬해 양쪽이 상생협력 양해각서를 맺으며 일단락됐고, 호반 쪽도 고소를 취하했다.
호반건설이 자사에 대한 비판 보도에 강경한 대응으로 일관하자 보도 당사자와 언론 현업단체 등은 이를 ‘전략적 봉쇄 소송’으로 규정하며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호반건설 사옥. 호반건설 제공
호반건설에 대한 공정위 제재 방침을 보도한 정새배 한국방송 기자는 <한겨레>와 한 전화 통화에서 “(호반 쪽의 소 제기 등은) 기자 개인보다는 케이비에스라는 언론사, 더 넓게는 전체 언론을 상대로 ‘호반에 적대적인 보도를 하면 우리는 기자 월급 가압류까지 건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등은 지난 30일 성명을 통해 호반건설의 언론 대응과 관련해 “5억원에서 10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취재 기자를 피고로 삼고, 기자 급여에까지 가압류 신청을 하는 것은 양식을 의심하게 하는 행태”라며 “자사를 향한 언론의 후속 취재를 막아보려는 ‘전략적 봉쇄 소송’의 의도가 다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겨레는 호반건설 쪽에 언론 대응에 관한 논란, 언론 현업단체의 성명에 대한 입장 등을 물었으나, 호반건설 관계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