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전 조선일보 논설고문은 2월23일 자신의 마지막 칼럼에서 “누구보다 독자 여러분께 제 늙은 몸을 구부려 큰 절을 올립니다”라고 밝혔다.
이규태 전 <조선일보> 논설고문이 25일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73. 고인은 1983년 3월1일 조선일보에 ‘이완용 집의 고목’을 소재로 ‘이규태 코너’를 연재하기 시작해 지난 2월11일 ‘책찜질 이야기’까지 23년 동안 6701회의 기명 칼럼을 썼다. 한국 신문사상 최장기 연재 칼럼이다. 고인은 이날 이후 병세가 악화돼 칼럼 연재를 중단했고, 2월23일 조선일보 1면에 ‘평생 글 쓴 행복한 삶…. 아, 이제는 그만 글을 마쳐야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이규태 코너 마지막회를 싣고 이틀 뒤 생을 달리했다. 마지막회는 고인의 구술을 <스포츠조선> 엔터테인먼트 부장으로 있는 장남 이사부씨가 정리했다. 1933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사범과 연세대 화공과를 다녔고 1959년 조선일보 2기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내디뎠다. 그 뒤 문화부장, 조사부장, 사회부장, 논설실장, 주필, 논설고문 등을 거쳐 2004년 8월 퇴임했다. 조선일보는 자사의 대표 칼럼니스트를 위해 퇴임 뒤에도 지면을 내주었다. 고인의 칼럼은 일상 속의 평범한 소재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내는 힘으로 독자들 눈길을 끌어들였다. 그런 데에는 끊임 없는 자료 수집과 연구가 바탕이 됐다고 후배 언론인들은 입을 모은다. 이한우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는 “이 전 고문은 서재를 가득 채운 1만5천여권의 책과 노트, 스크랩 등을 내용에 따라 분류를 해놓았는데, 이는 최고 수준의 인터넷 검색에 비견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인의 칼럼은 또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고인은 또 <한국인의 의식구조> <서민 한국사> <한국의 인맥> <한국인의 조건> 등 120여권의 저서를 남겨 한국학계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방자씨와 사부, 사로(지질자원연구원 연구원), 사우(미국 유학중) 3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식은 28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4. 안재승 기자 js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