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김승원(오른쪽)씨의 장편소설 <태양의 밀사>(필명 김자현) 출판기념회 때 고 김은숙(가운데)씨와 함께 했다. 김승원씨 제공
많지 않은 친구들 가운데 너마저 훌쩍 떠나고 난 이 세상이 적막하구나! 중·고교를 같이 다녔으니 절친이라고 말해도 좋았으나 어른이 되고 각자 다른 길을 가고부터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8년 전, 2014년 봄 어느 날 난 꿈을 꾸었다. 처음으로 은숙이가 꿈속에 나타났다. 큰 병원 현관 밖이었다. 사람들이 오가고 조금은 복잡한 광경인데 검은 연미복에 흰 셔츠를 입은 브라스 밴드가 3열로 줄을 맞추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그들의 연주를 보며 서 있었는데 은숙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얼굴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듯 조금 까칠하고 엷은 회색 버버리를 입은 모습이었다. 둘이서 밴드를 잠깐 구경하고 있는데 은숙이가 입을 열었다. “실은 나도 저 멤버 중 하나야!” “그럼 들어가서 연주하지 왜 여기 있어?” 하지만 그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대체 이게 무슨 꿈일까. 은숙이의 조금은 수척해진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종종 예지몽을 꾸는 까닭에 해석이 되지 않는 꿈일 때 나는 대단히 마음을 졸인다. 날이 밝아오기가 무섭게 은숙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방암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에 유방암 검사를 했을 때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었는데 아파서 대학병원을 찾았더니 3기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미 치료에 들어갔다는 친구는 아주 담담했다. “지금은 의술이 좋아 별문제 없을 거야.” 친구에게도 위로하고 내게도 암시를 걸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말 다른 친구의 자녀 결혼식에서 은숙이를 만날 수 있었다. 옛친구를 만나면 이리 좋은데 내남직없이 무엇에 묶이어 이렇게 만나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무슨 허상을 찾느라고! 음식을 함께 먹으며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은숙이 하는 말! “내가 죽는 꿈이네!” 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당연한 듯 심상하게 말하는지 꿈 이야기를 괜히 들려주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숙이와 나는 서울여상에서 만났다. 서울여상은 대체로 성적이 우수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교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또래 혹은 그 이전 세대는 더욱 그렇다. 그 친구도 그랬다. 학교가 있던 무악재 꼭대기에 은숙이 집이 있어 가까운 친구들은 툭하면 그 집에서 뭉치곤 했다. 작은 방에서 뒹굴뒹굴하며 만화도 보고 책도 읽고 국수도 말아먹으며 불투명한 앞날을 점치곤 했다.
가난이라는 굴레는 자라나는 이들의 꿈도 결박한다. 우리는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으므로 틈틈이 익힌 문학과 음악을 이야기하며 나름대로 결핍된 인문학을 살찌웠다. 기껏해야 트랜지스터라디오밖에 없는 상황도 감사히 받아들여야 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리고 에프엠(FM)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에 빠져들어 팍팍한 현실에서 도피하곤 했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에 심취했으며, <백치>의 아글라야,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에 빠져 몸살을 앓았으며, <테스>의 엔젤 클레어와 연애를 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초록 양장으로 된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이모네 집에서 모조리 빌려 나르는 일은 내 담당이었다. 어느 해 여름에는 갑자기 찾아온 은숙이와 서해 덕적도 서포리로 단둘이 바캉스를 떠나기도 했다.
그 친구가 지금 있다면 내 말년이 조금은 덜 고독하지 않을까. 가끔 만나서 옛날을 이야기하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좋아하던 영화도 한 편씩 보고 다니면 좋으련만. 이후 나는 그가 병원 침대에 앉아있는 꿈을 또 꾸었다. 그때로부터 몇달 뒤 가을 그는 하늘나라로 갔다. 향년 60. 그를 꼭 닮은 딸 하나 남기고….
내 영혼의 집…, 거기, 거의 모든 문학과 음악 속에서 재생을 거듭하는 나의 친구 은숙아! 지금 안드로메다 어디쯤 가고 있니? 네 딸은 여간 엽엽하지 않으니 염려 놓으시게!! 다시 봄이 올 때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을 닮았던 너의 환한 웃음소리 천지에서 들리는듯해!
서울/김승원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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