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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맨몸 불철주야 대안교육 일군 ‘영원한 현직’ 이젠 편히 쉬소”

등록 2022-08-28 18:54수정 2022-08-29 02:36

[기억합니다] 고 박상래 교장 기리는 ‘벗님’ 김인수 주주의 글
2019년 8월 합천군 대병면 가실골 합천문화대안학교 진입로 시멘트 포장 공사를 손수하고 있던 고 박상래 교장. 김인수 주주 제공
2019년 8월 합천군 대병면 가실골 합천문화대안학교 진입로 시멘트 포장 공사를 손수하고 있던 고 박상래 교장. 김인수 주주 제공

2020년 11월 말 부산 해운대 전통시장에서 정기 간행물 <여백 문학> 발기인 모임이 열렸다. 발행 한경렬·평론 이정균·고문 김정식·출판 성종규·감사 박상래·편집 김인수. 우리의 첫 기획안은 “당신의 생애를 책으로 만들어 드립니다”이었다.

‘이 세상을 살다 가는 그 누구도 자신의 생애를 책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스스로 책을 쓸 수 없다면 누군가가 큰 부담 없이 그를 도와 책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빈부귀천·성별·학벌·종교 그 무엇도 가를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므로….’

고 박상래 ‘벗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초 경남 고성 철성고등학교 교무실이었다. 우린 대학을 갓 졸업하여 꿈은 많고 겁이 없던 신임교사였다. 대학에서 배운 바람직한 교육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교육 현장의 모습들, 부조리와 불합리와 비민주에 물들지 않으려 발버둥치던 숱한 밤들.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제대로 전하겠다는 국어 교사로서의 소박한 꿈과 제대로 국어 수업을 하려는 몸부림…. 그러나 촌지니 부교재 채택료니 모의고사 떡고물이니 하는 푼돈 다툼으로 철저히 이율배반적인 몇몇 교사들의 작태에 완전히 손을 들고 말았다. 결국 벗님은 ‘오냐 그렇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돈을 벌자’라며 제도권 교단을 떠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어느 여름날 손전화에 찍힌 낯선 번호, 계속 걸려 오는 같은 번호의 전화를 망설이다 받았더니 반가운 벗님 목소리였다. 학원을 관두고 지금은 대안학교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고, 조만간 교장까지 맡게 될 것 같다고, 아주 시골인데 한번 놀러 오라고 그랬다.

2019년 5월 경주시 감포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박상래 교장 부부(오른쪽 두 명)와 필자 부부(왼쪽 두명). 김인수 주주 제공
2019년 5월 경주시 감포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박상래 교장 부부(오른쪽 두 명)와 필자 부부(왼쪽 두명). 김인수 주주 제공

지난 2019년 5월 경북 동해안의 감포 횟집 앞에서 우연히 기적처럼 벗님 부부를 만났다. 처가의 상을 치르고 피로도 풀 겸 왔다고 했다. 경주 여행길이었던 우리 부부와 어떻게 그렇게 만날 수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합천군 대병면 가실골에 터를 마련해서 새로운 대안학교 ‘합천문화대안학교’를 준비하고 있다는 벗님은 내게도 ‘시 창작 강사’로 초빙할 테니 이사오라고 권했다.

그무렵 벗님은, 지리산중학교 교장을 거쳐 합천문화대안학교 교장, 우리문화센터 함안지부장, ‘더 함안 신문’ 논설위원 겸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이룡의 전설’(더 함안 신문), ‘박상래 인문학 칼럼’(함안인터넷신문), ‘황매산 사람들’(합천신문)을 연재 중이었다. 또 <재래방식 천연염색> <속담의 사회적 공인> <대입 고어사전> 등 책과 <붉은 잉크로 시를 쓰고 싶다> 시집도 출간했다.

2019년 8월 내가 합천군 대병면 가실골 합천문화학교를 처음 방문했을 때, 벗님은 그날따라 학교 진입로에 시멘트 포장 공사를 손수 하고 있었다. 오롯이 혼자 만의 힘으로 대안학교를 만들고 제대로 된 교육을 실천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땀을 비오듯 쏟고 있었다.

2021년 3월 11일 뜻밖의 소식이 왔다. 다달이 보낸 이사회비를 잘 받았고 소중하게 쓰겠다며, 합천문화학교의 방갈로가 80% 완성됐다는 ‘카톡’ 문자를 받은 지 일주일 만이었다. 가실골 진입로 현장에서 혼자 일하다 쓰러져 뇌사 상태라니, 어이할꼬 오호통재라. ‘8글자, 9행, 72자’ 시로 슬픔 표하노니, ‘사십여년 지기지우/ 또 한놈이 영면하네/ 바람직한 교육 위해/ 합천문화대안학교/ 맨손맨몸 불철주야/ 꽃봉오리 필락말락/ 원과 한이 서리맺혀/ 역병지절 통곡하오/ 하늘 가선 편히 쉬소.’

2021년 3월 14일 끝내 전해온 벗님의 부고, 코로나19 창궐로 문상 자제를 부탁한 상주는 더 놀라운 사연을 들려줬다. 다시한번 72자 시로 애도하노니, ‘쓸만한 몸 모두 기증/ 정말정말 맨손맨몸/ 떠나가는 박상래님/ 역병창궐 상황에도/ 구름같이 모인 조문/ 바람직한 삶의 증명/ 벗님네들 다들 주목/ 어찌살지 주저 말고/ 이분 삶을 영원 기억.’

2020년 12월 말 <여백 문학> 편집출판 밴드에 올렸던 벗님의 글을 다시 읽는다. ‘외아들 절에 팔려고/ 어머니는 나를 손잡고 두세 시간 비포장 길을 걸어/ 장춘사에 갔던 기억이 나서/ 50년 만에 법당에서 삼 배 올리고 부처님께/ ‘우리 어머니 아시지요?’ 하니 / 말씀은 안 하셔도 분명히 아는 눈치였다.’

부천/김인수 주주

원고료를 드립니다 - <한겨레>가 어언 35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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