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빅벙커’. 부산 문화방송(MBC) 화면 갈무리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매체가 많아졌다고 지역 정보도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 정보가 유통되는 플랫폼은 넘쳐나지만 정작 중요한 지역 정보는 오히려 줄어들거나 그대로다. 지역의 거대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저널리즘 기능은 오히려 위태로울 정도로 감소했다.
미디어 생태계가 급변해도 신문과 방송 같은 전통 언론의 중요성이 여전히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장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자극적인 내용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역 권력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균형을 위해 레거시 미디어가 다양한 지역 권력의 견제 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방송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아무리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방송사 내부 구성원은 물론 외부에서도 지역 방송의 마지막 보루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뉴스와 시사보도를 말하는 것에서도 이들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시사프로그램은 1분30초~3분 안팎의 짧은 뉴스 보도에 모두 담을 수 없는 사건의 전후 맥락이나 구조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데 효과적이어서 지역 방송의 사회적 책무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손꼽히는 장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시사프로그램의 당위성과 중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면서도 실제로 시사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 방송은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광고와 협찬 같은 자본의 힘을 앞세운 지역 권력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환영받으며 촬영에 임할 수 있는 다른 콘텐츠와 달리 시사 장르는 품도 많이 들고 소송의 위험도 도사리기 때문에 3디(D) 분야라는 방송사 내부의 자조 섞인 평가 또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부산 문화방송(MBC)과 대구 문화방송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빅벙커>는 천연기념물 같은 프로그램이다. 예산을 추적하고 감시한다는 뚜렷한 프로그램 콘셉트도 흔하지 않지만 부산 문화방송과 대구 문화방송이 협업을 통해 공동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지역 언론의 견제기능을 무력화시키는 핵심 주범으로 일컬어지는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예산 집행과 정책을 견제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반갑고 놀랍고 대견하기까지 한 프로그램이다.
<빅벙커>는 지난해 연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아 다른 지역 방송의 귀감이 되기를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근 소식 하나를 접했다. 지방선거 직전 방영된 ‘부산·대구 시장 공약이행 점검’ 2부작에 대해 부산시가 지난 6월 언론중재위원회 제소에 이어 법원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였다. 다시보기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중재위에 제소했던 신청서도 읽어 보았다.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방송은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편향적인 시각이 드러나지 않았다. 순간 깊은 한숨이 나왔다.
부산시는 자유로운 대화 방식으로 진행되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대화 내용 17건에 대해 반론과 정정을 요구했다. 사회자를 비롯해 스튜디오에 나온 패널 전원, 그리고 영상 인터뷰에 응했던 2명의 발언이 대상이었다. 이쯤 되면 방송 내용 전체를 문제 삼은 것이나 다름없다. 또 방송사 쪽에서 제안한 ‘후속 프로그램 출연을 통한 반론 제시’ 방법을 거절했다. 대신 하루 500만원씩 부과되는 소송을 결정했다.
노동자들의 파업 권리를 손해배상이나 가압류 등으로 겁박하고 언론의 저널리즘 기능을 무지막지한 소송으로 재갈 물리는 것이 이 시대의 공정법인가 보다.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