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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이태원 참사, 잊지 말아야 할 보도윤리

등록 2022-11-02 07:00수정 2022-11-02 07:35

[한선의 미디어전망대]
한 시민이 1일 오전 ‘이태원 사고’ 현장 인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 시민이 1일 오전 ‘이태원 사고’ 현장 인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날씨는 잔인할 정도로 맑고 푸르렀다. 어느 생명인들 안타깝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 생명들의 황망한 비보 소식이라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어이없는 안전사고 소식을 접한 뒤 잠시 잊고 있던 젊은 세대들의 에스엔에스(SNS) 이용 문화에 관한 단상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의 핼러윈은 미국으로 이주해 간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에 의해 소개됐다. 이후 영미권에서는 주로 어린아이들이 악마나 괴물 분장을 한 뒤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사탕 등을 받아오거나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 식사하는 가벼운 축제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핼러윈이 상업적으로 변질돼 20대 젊은이들이 즐기는 이벤트성 축제로 자리잡았다. 일본 특유의 코스튬 문화와 인정욕구로 가득한 에스엔에스 소비문화도 한국의 핼러윈이 젊은이들의 유흥 축제로 정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어느 문화나 해당 지역의 특성에 맞는 형태로 지역화하기 나름이니 물 건너온 핼러윈이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축제로 정착한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에스엔에스 이용이나 상업성에 관해서는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의 핼러윈 축제가 지금처럼 젊은 세대라면 으레 동참해야 할 동료 문화로 정착한 과정에는 에스엔에스의 역할이 컸다. 젊은이들에게 핼러윈 축제는 기발하고 깜짝 놀랄 만한 의상을 차려입은 뒤 길거리로 나와 이목을 끌거나 인증샷을 찍어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이벤트 중 하나다. 괴상하거나 자극적인 차림일수록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쉽고, 모르는 사람과 인증샷을 많이 찍을수록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핼러윈 축제 참가자들의 관심은 에스엔에스나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에 집중된다. 또는 특이한 참가자를 구경하고 재미 삼아 품평하는 관음에 모아진다.

연구에 따르면 에스엔에스 공간은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에 매료됐던 신화 속 나르시시스트와 달리 타인의 눈에 의해 자기애가 충족되는 역설적인 공간이다. 상대로부터 인정받을 때 자기애가 충족되다 보니 자칫 자극적인 목표만 남기 쉬운 공간이기도 하고, 모두가 행복하고 사랑받거나 즐거운 인생을 보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공간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일에만 신경 쓰다 보면 객관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거나 성찰적으로 사고할 여지가 사라지기 쉬운 공간이기도 하다. 타인은 물론 자신에 대해서조차 그러하다. 사고 피해자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별생각 없이 올리거나 공유하고, 섣불리 혐오나 조롱을 내뱉고, 더 나쁘게는 이를 악용하여 조회수를 늘리는 행태도 같은 맥락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목표나 놀이만 있기에 상대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아니라 포스팅 소재로 대상화되는 것이다.

보통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재난 상황이 되면 언론사나 플랫폼에서는 보도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윤리 가이드라인을 작동시킨다. 이른바 재난보도준칙인데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 이름은 물론, 해당 기사의 게이트키핑을 실시한 데스크의 이름까지 공개된 바이라인 서명을 보게 됐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질타받는 언론사도 존재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이런 작은 노력들을 실천하는 언론사가 생겨난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도가 됐다.

보도윤리를 지키는 작업은 언론사나 플랫폼만이 아니라 게시물을 생산하고, 찾아보고, 공유하고, 전송하는 모든 에스엔에스 이용자가 동일하게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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