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은 진리를 규정하고 관리하는 국가 부서 ‘진리부 기록국’에 근무한다. 그는 서적, 정기간행물, 영화, 녹음기록물, 만화, 사진, 포스터, 전단, 리플릿은 물론 문학과 모든 기록물을 검열하여 빅브라더의 예언과 대조해 모순되는 내용은 없애고, 교체하고, 수정하는 일을 한다. 진리부의 이런 작업은 일사불란하게 행해지므로 “허위가 개입되어 있다고 증명할 길은 전혀 없다.” 국가는 그저 오탈자 수정, 인용상의 실수를 바로잡는 형태로 명령을 내릴 뿐, 위조나 거짓말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진리 규정 방식은 단순하다. 예컨대 ‘2+2=5’는 참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2+2=4’라는 진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개인은 국가의 진리 수용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
<1984>의 섬뜩한 예언은 선전 미디어로 활용된 방송의 역사와 관련 깊다. 오웰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영국 <비비시>(BBC)에서 적국의 전체주의 선전 방송에 대응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시기 각국의 선전 방송은 실시간 모니터링되었고, 매주 전쟁 방송 논평을 쓰던 오웰도 적국과 자국의 선전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비비시> 방송은 정부의 보도 목적과 방침에 따라 이루어졌다. 자국 정보부의 방송 검열과 지침을 수용하기 어려웠던 오웰은 2년여 만에 방송을 그만둔다. 우여곡절 끝에 2017년 런던 <비비시> 건물 구석 벽에 조지 오웰 동상이 세워지던 날,
오웰재단 이사진 중 한명인 시턴 교수는 “오웰은 <비비시>와 일하면서 거대한 관료주의 감각을 알게 되었다. 위험을 감수하며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에게 잔인한 방송 규율을 적용한다는 것도 알았다. 편집과 컷이 만들어지는 것과 ‘선전’(프로파간다)의 본질을 배웠다”고 밝혔다.
방송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전체주의를 알려 대항하고자 했던 오웰은 실시간 방송 미디어가 감정을 쉽게 고조시키고, 증오 배양 도구로 악용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저널리스트로서 오웰은 1946년 한 기고 글에서 “피가 쏟아지는 전쟁터보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거짓과 독선이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특히 “약자를 괴롭히려는 욕구가 어쩌다 현시대 인간의 주된 행동 동기가 되었는지”를 비판했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심지어 “자유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걸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라는 그의 글이 우리 사회와 언론에서 맥락 없이 호명되곤 한다. 이런 ‘자유’는 악용의 여지가 많다. ‘10·29 참사 피해자 명단 공개=패륜’, ‘세월호=정쟁으로 소비’, ‘유족협의체=시민단체 횡령 수단으로 악용’ 등과 같은 여당 지도부와 여당 인사의 발언이 그렇다. 패륜 망언을 따옴표로 인용해 기사로 줄 세우는 언론과 포털은 ‘2+2=5’로 세뇌하는 인상마저 든다. 인간 존엄성을 짓밟고, 진실 규명을 촉구하며 절규하는 약자를 괴롭히는 이 오만함은 결코 ‘말할 자유와 권리’를 의미할 수 없다.
오웰은 ‘진실’에 희망을 걸었다. 그는 “진실은 내가 필요할 때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러한 생각이 살아남을 거라는 희망을 지지했다. 누군가 잔혹하게 진실을 규정하고 기록할 때, 객관적 사실은 더 잘게 부서진 모순으로 남는다. 더디더라도 조각조각 흩어진 채 모욕당하는 저 가엾은 ‘진실’을 맞춰갈 용기를 내야 한다. ‘진실이 역사로 기록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