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어준씨와 신장식 변호사, 주진우씨 등 <티비에스>(TBS) 라디오의 간판급 진행자 세명이 방송 하차를 공식 발표했다. 여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가 출연금 지원을 끊거나 큰 폭으로 줄이겠다며 티비에스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여권과 보수 언론단체는 그동안 김씨 등이 티비에스에서 불공정 방송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만큼, 이들 세명의 동반 하차 이후 티비에스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관심을 모은다.
김씨는 지난 12일 오전 자신이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뉴스공장)에서 “오늘은 뉴스공장 첫 방송 이후 6년2개월15일이 되는 날”이라며 “앞으로 3주 더 뉴스공장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어 티비에스에서 <신장식의 신장개업>(신장개업)을 진행하는 신장식 변호사와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의 진행자 주진우씨도 같은 날 오후 각각 방송을 통해 하차 소식을 알렸다.
이들은 하차 소식을 전하며 자신들의 결정이 티비에스를 둘러싼 여권의 압박, 특히 티비에스 출연금을 압박 수단으로 쓰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장식 변호사는 이날 방송에서 “항의와 연대, 무엇보다 티비에스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볼모로 잡은 작금의 인질극에서 인질을 먼저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주진우씨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겨냥해 “특정인, 특정 프로그램이 밉다고 밥줄을 끊는다. 최악의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15일 티비에스에 대한 서울시 출연금 지원을 2024년부터 중단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여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겉으로는 방송·통신 환경 변화를 조례안 마련의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언론계 안팎에서는 김씨 퇴출을 압박하기 위한 조처로 받아들였다. 서울시 출연기관으로 분류돼 상업광고를 할 수 없을뿐더러 방송통신발전기금도 받지 못하는 티비에스로서는 사실상 문을 닫거나 방송을 제작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티비에스는 500억원 안팎인 한해 예산의 70% 정도를 서울시 출연금에 의존해왔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티비에스의 기능 전환 등을 언급했던 오세훈 시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서울시의회가 티비에스 지원 중단 조례안을 처리한 뒤 티비에스 이사회 등이 나서서 “(해당 조례안이) 언론 자유를 탄압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말살하고 있다”며 오 시장한테 시의회에 조례안 ‘재의’를 요구해달라고 촉구했으나, 그는 재의 요구 기한이 끝나기도 전인 지난 2일 이를 공포했다.
게다가 서울시는 조례안과 별도로 당장 내년도 티비에스 출연금을 올해보다 88억원 줄어든 232억원으로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만약 이 예산안이 확정된다면, 티비에스 출연금은 2021년 375억원에서 올해 320억원, 내년 232억원으로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은 이달 중순 시의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일부 언론은 서울시와 여권이 티비에스 정치 편향 논란의 중심에 있다고 지적해온 김씨 등이 물러난다면, 서울시가 시의회를 설득해 내년도 출연금 예산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오세훈 시장은 지난달 18일 시의회 시정 질문에서 “마지막 기회”라는 표현을 써가며 티비에스 내부의 변화가 있다면, 다시 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 바 있다.
티비에스 내부 구성원들도 여권이 표적으로 삼았던 김씨 등의 방송 하차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티비에스 노동조합(1노조) 관계자는 “그동안 외부에서 김어준씨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정성 논란을 제기해온 만큼, 진행자 세명의 방송 하차가 티비에스를 둘러싼 논란 해소에 도움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티비에스지부에서도 “진행자 본인들이 선택해서 나가는 부분에 대해 노조가 입장을 밝히기는 조심스럽다”면서도 김씨 등의 하차가 티비에스 예산 정상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전했다.
다만 김어준씨 등 여권의 집중 표적이 됐던 진행자가 동반 퇴장한다 해서 티비에스에 대한 서울시나 시의회의 태도가 곧바로 달라질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이강택 전 대표이사 사퇴 이후 서울시와 티비에스는 8일 새 대표이사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한 상태다. 서울시 추천 2명, 서울시의회 추천 3명, 티비에스 이사회 추천 2명 등 총 7명의 위원 구성을 볼 때 내년 1월 오세훈 시장이 임명하게 될 신임 대표이사는 친정부 성향 인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로서는 급할 게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김씨 등의 하차 이후 티비에스 문제에 대해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최원석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은 김씨 등 진행자 3인이 퇴장을 알린 만큼 내년도 티비에스 출연금 예산이 복원될 수 있느냐는 <한겨레>의 질의에 “우리가 특정 프로그램을 갖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편성에 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 안 한다 해서 지원을 늘린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다”며 “아울러 내년도 예산안은 이미 편성해서 시의회에 제출한 것이고, 삭감 등 결정권은 시의회에서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선영 티비에스 이사장은 “언론을 대하는 현 정부와 여권의 태도에 비춰볼 때 김씨 등의 방송 하차가 ‘티비에스 문제’의 끝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방송 공정성 문제와 관련해선 사내 구성원의 참여로 꾸린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논의를 진행 중이었는데, 결과가 나오기 전에 주요 진행자가 하차하여 제작·편성 자율성을 시험할 기회를 놓쳐 안타깝다”며 “또한 김어준씨와 신장식 변호사가 진행을 맡아온 뉴스공장과 신장개업은 협찬 수익이 가장 많은 두 프로그램으로 경영적 측면에서는 두 사람의 공백이 엄청난 재정 압박 요인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전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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