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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빅뱅 시대…‘통합 라디오 플랫폼’ 논의 어디까지 왔나

등록 2023-03-08 07:00수정 2023-03-08 08:24

각 라디오 방송사업자가 내놓은 다양한 라디오 앱. 한국방송협회를 중심으로 통합 라디오 플랫폼 구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방송협회 제공
각 라디오 방송사업자가 내놓은 다양한 라디오 앱. 한국방송협회를 중심으로 통합 라디오 플랫폼 구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방송협회 제공

스마트 기기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유형의 온라인 오디오 서비스와 유튜브의 등장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전통 매체 중 하나는 라디오다. ‘라디오 수신기’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동안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방송사와 한국방송협회,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중심으로 스마트폰과 스마트스피커, 커넥티드 카(외부 통신망과 연결된 차량)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합 라디오 플랫폼 구축을 꾀하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모인다.

7일 최상훈 한국방송협회 정책협력부장은 <한겨레>와 한 전화 통화에서 “미디어 빅뱅 이후 공급 및 이용의 측면에서 라디오 방송이 상당히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여론 형성과 지역 문화 및 다양성 창출 등에 라디오가 기여하는 공적 역할은 매우 크다”며 “음성 미디어에 대한 청취자의 수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닌 만큼 스마트폰이나 커넥티드 카, 스마트스피커 등을 통해서도 편리하게 라디오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공공 차원의 통합 플랫폼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매체의 폭발적 성장 속에서 방송망에 의존하는 기존 라디오 방송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니, 공공 부문이 투자하는 ‘온라인 라디오 유통 인프라’를 구축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통합 라디오 플랫폼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5년 전 방통위가 꾸린 지상파라디오진흥자문위원회는 2020년 7월 ‘라디오 방송 진흥을 위한 정책 건의서’를 내면서 이미 ‘스마트폰 및 커넥티드 카의 스마트 기기를 통한 라디오 직접 수신(하이브리드 라디오) 활성화’와 함께 ‘청취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라디오 통합 앱 및 포털 운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요하게 짚었다. 당시 자문위가 처음 제안한 라디오 통합 앱 및 포털이 지금의 ‘통합 라디오 플랫폼’ 개념으로 확대·발전한 것이다.

자문위의 제안은 라디오가 처한 두개의 상반된 현실 인식에서 출발했다. 하나는 누구나 쉽게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라디오가 갖는 공익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더욱 강조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11월 통신사 케이티(KT) 아현지사 화재 당시 휴대전화와 인터넷 등 각종 통신망이 끊겨 상당수 시민이 라디오를 통해 사고 상황을 인지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라디오는 재난방송 매체로서도 일정한 역할 수행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미디어 및 스마트 기기의 보편화와 함께 전통적 방식의 라디오 이용률이 해마다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실제로 방통위의 방송 매체 이용행태 조사(2022년 12월)를 보면, 주 5일 이상 라디오 이용률은 2010년 16.2%에서 2022년 6.6%로 추락했다. 스마트폰은 90.1%, 티브이(TV)는 75.5%였다. 차량용을 뺀 일반 라디오 수신기 보유율은 같은 기간 51.5%에서 10.7%로 더 많이 떨어졌다. 그 대신 스마트 기기 앱을 통해 라디오를 듣는 비율이 2010년 3%에서 2021년 12.8%로 4배 이상 늘었다.(방통위 2021년도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

이에 각 라디오방송 사업자는 자체적으로 라디오 앱 출시 등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에 일부 나서고 있으나 여기에는 몇 가지 한계가 존재한다. 사업자가 많은 돈을 들여 자체 앱을 내놓는다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선 자기가 듣고 싶은 라디오 앱을 하나하나 내려받아서 별도로 실행해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지역·중소방송 사업자한테는 앱 개발마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앱을 만드는 사이에도, 음성비서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스피커와 커넥티드 카 등 라디오가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플랫폼은 계속 등장한다는 점이다.

미국 애플사가 출시 예정인 차세대 자동차용 운영체제 ‘카플레이’의 이미지. 기존 완성차 회사가 라디오 수신기와 버튼을 ‘알아서’ 제공해준 것과 달리 라디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애플 누리집 갈무리
미국 애플사가 출시 예정인 차세대 자동차용 운영체제 ‘카플레이’의 이미지. 기존 완성차 회사가 라디오 수신기와 버튼을 ‘알아서’ 제공해준 것과 달리 라디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애플 누리집 갈무리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등 지상파 3개사를 포함한 전국 37개 라디오방송 사업자가 2021년 5월 ‘(통합) 라디오 플랫폼 구축을 위한 공동협력 양해각서’를 맺고 라디오의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자고 나선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라디오는 기본적으로 공익적 가치를 지닌 매체이기에 통합적 대응을 모색해보자고 해서 모였는데, 누가 얼마를 투자하고 성과를 또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등에 관한 논의 단계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방송협회를 중심으로 통합 라디오 플랫폼 구축 요구가 나오는 이유는 이런 배경 때문이다. 협회는 지난 1월 방통위에 제출한 관련 보고서에서 “라디오는 사회적, 공익적 가치가 매우 큰 대표적 공공 미디어이나, 최근 미디어 시장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급격히 산업기반이 붕괴되고 있다”며 “사업자의 영세성, 기존 플랫폼의 파편화와 비표준화 등의 이유로 공공 온라인 유통 인프라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짚었다.

방통위에서도 재작년에 이어 지난해 5월 말 정보화 전략계획(ISP)의 하나로 ‘통합 라디오 플랫폼’ 개발 지원 예산(7억5100만원)을 재차 신청했으나, 재정 당국이 이를 전액 삭감했다. 이에 대해 최상훈 방송협회 정책협력부장은 “사회적 가치가 높은 청취형 매체의 접근성을 혁신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라디오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절실한데, 이를 위한 예산 확보 과정에서 수년째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며 “정부가 미디어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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