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방송>(KBS) 사옥. 한국방송 제공
대통령실과 여당이 티브이(TV) 수신료 분리 징수 방안에 관한 국민제안 의견 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방송>(KBS)을 압박하고 나서자, 미디어 전문가를 중심으로 공영방송의 공적 기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신료 납부 회피와 공영방송에 대한 재정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분리 징수 논의를 정치권이 꺼낸 것부터 ‘공영방송 길들이기’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강명현 한국방송학회장(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은 지난 3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기요금과 통합 징수하는 현행 수신료 징수 방식을 바꾸게 되면, 이는 수신료 징수율 하락이나 공영방송 재원 구조 악화 등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공영방송의 재원 구조에 관한 논의만큼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대통령실이나 여당이 이런 논의의 중심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누리집을 통해 ‘티브이 수신료 징수 방식 개선’에 관한 의견 수렴에 나서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찬반 집계 현황을 거론하며 한국방송을 ‘좌편향 방송’이라고 몰아붙였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지난달 14일 당 회의에서 “대통령실 국민제안에서 케이비에스(KBS) 수신료 징수 방식에 대해 국민 의견을 수렴 중인데 현황을 보면 단 6일만에 7001명이 참여해 추천 6835건 비추천 166건, 추천 97.63%로 분리 징수 찬성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며 “(케이비에스가) 지금 당장 내부에서 혁신하지 않는다면 수신료 분리 징수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공영방송의 취약한 재원 구조에 대한 대안 제시 없이 국민제안 누리집을 찾는 ‘자발적 응답자’를 대상으로 수신료 분리 징수에 관한 찬반 의견을 묻게 되면, 편향된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일부 보수 유튜버 등이 “대통령실 국민제안 토론에서 승리하고 수신료 폐지 이뤄내자” 등 제목의 영상으로 국민제안 응답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 등 보수 정치인도 “국민 여론 동원해서라도 한국방송공사(KBS) 수신료 분리 징수안이 통과돼야 한다”며 거들었다. 여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4일 오전 당 페이스북에 수신료 관련 국민제안 누리집의 주소 링크를 올리며 이를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진, 당협위원장 등에게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냈다.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전체 미디어 산업이나 공영방송이 갖는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서의 역할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 없이 단순히 수신료 분리 징수 찬반을 묻는다면, 평소 케이비에스나 수신료 납부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응답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낮다고 내려오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공영방송 수신료 징수 방식을 바꾸는 문제도 정책적 고민과 합당한 공론 절차 없이 온라인 조사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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